미술품 위조 사건 - 20세기 미술계를 뒤흔든 충격적인 범죄 논픽션
래니 샐리스베리.앨리 수조 지음, 이근애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미술품 위조 사건래니 샐리스베리, 앨리 수조│소담출판사│2012.04.05│p.416

 

 

 

 

벚꽃팝콘이 그득했던 봄날의 기억을 차마 어쩌지도 못했는데 묵직한 봄비에 벌써 엔딩, 짧아지는 봄날으로의 아득한 아쉬움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날들입니다. 이렇게 몽글거리는 요즘처럼, 내 삶의 봄날들도 부유하며 책으로의 시간 또한 그렇게 아쉬움으로만 여물어 갑니다. 봄 때문이라고, 서른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멋쩍을 만큼 길어진 텍스트로의 난독(亂讀, 책의 내용이나 수준 따위를 가리지 아니하고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마구 읽음) 때문에의 난독(難讀,읽기 어렵다) . 이 책은 감히 상상치도 못했던 미술품 위조에 대한 논픽션을 다루고 있습니다. 무지(無知)는 강한 믿음을 만들고 그 무모한 믿음의 발원은 너무도 손쉽게 뿌리 채 흔들거립니다.

 

1990년대 초 주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미술품이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매매차익의 수익에 교양인이라는 이미지까지 덤으로 얻게 되니 미술품은 투자자들의 눈을 현혹하는 투자 상품으로 전락하고, 예술가는 상품성 있는 미술품의 제작자가 됩니다. p. 316 위조의 동기는 수백 년 동안 발전해온 위조의 유형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인 연료는 항상 인간의 탐욕이었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위조범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미술품 위조 사건>에서는 미술계의 실태 뿐만이 아니라 결국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잃고 말았던 거짓된 인생으로 점철된 존 드류와 가난 때문에 양심을 저버려야 했던 뛰어난 화가 존 마이어트, 허세와 욕망의 구렁에 빠진 피해자들의 심리를 아주 가까이에서 면밀히 이야기합니다.

 

아동발달심리학을 배우고 있는 요즘이라서 등장인물들의 심리변화를 따라가며 안타까움이 깊어집니다. 희대의 사기극을 펼친 똑똑했던 존 드류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그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에 아쉬움을 쓸어내립니다. 또한 촉망받던 미술 천재 마이어트, 드류의 속셈을 알면서도 자신을 필요로 하고 인정해주는 드류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혼돈하는 그의 결핍 또한 나는 온전히 그의 몫으로 모른척 할 수 없어 뭉클합니다.

 

 

 p.324

 

 햅번과 그의 동료들은, 속임수는 접어두고, 미술품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기본적인 질문들을 던졌다. 그림이 훌륭하다면 그 그림이 사람들이 추정했던 그 화가의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본질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정말 속 끓이게 하는 질문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토머스 호빙이 인용한 바 있는 미술품 감정가 얼라인 사리넨이 이렇게 말했다. "가짜 그림이 너무도 뛰어나서 신뢰할 수 있는 철저한 검사 후에도 작품의 진위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 경우, 마치 그 그림이 명백한 진품인 것처럼 이 미술품이 만족스러울까, 아니면 그렇지 않을까?"

 사리넨이 피카소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그 대답은 아마 '만족스럽다'였을 것이다. "위조한 작품이 충분히 훌륭하다면, 나는 기뻐할 것이다." 피카소는 한때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미 존 드류의 사기행각임을 알고 따라가는 이야기의 긴장감이 생각보다 느슨하여 중반부터 존 드류의 사기행각을 눈치 챈 이들의 추적의 행보 또한 맹맹합니다. 긴장이 결여된 추적의 틈새 사이로 어쩌구니 없는 핑계들로 보란듯이 빠져 나가는 드류의 행적을 보며 가슴 언저리 체증이 더해집니다. 그것은 아마 논픽션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구요.

 

지난 해까지 사당에 살았는데, 계획없이 예술의 전당이나 시립미술관을 찾곤 했었습니다. 동네에 무료로 운영되는 시립미술관도 있어서 퇴근길 참새방앗간처럼 휙 둘러보곤 했었는데 어쩌면 그것 또한 탐욕, 존 드류의 표적이 된 그들의 모습을 닮아 있음을 엿보았습니다. 전시품의 예술적 가치보다 내가 그 안에 있음이 좋았으니까요. 합의된 침묵과 조심스러움, 결여된 움직임과 정지된 듯 흐르는 시간, 낮게 깔리는 조도까지 모든 것이. 책장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또 삶의 다른 부분을 마주하며 생각하게 해주었던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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