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잠옷을 입으렴이도우│RHK│2012.02.27│p.464

 

 

 

마지막장을 덮으며 긴 기지개를 켜 올려요. 오랜만에 활자의 리듬을 따르며 천천히 읽어낸 책이었습니다. 책의 표지나 제목에서 기대하게 되는, 책의 첫인상, 책으로의 기대감이랄까. 나는 성장소설을 참 좋아하니까 나의 어딘가 움츠러든 그래서 잊고 살아가던 이젠 내가 된 상처를 찾아내어 봄 햇살에 바짝 말려주길 원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벚꽃비가 날리는 요즘처럼 그렇게 예쁜 이야기로. 그렇게 한껏 부푸른 기대와 함께 찾아 온 <잠옷을 입으렴>은 파스텔빛 이야기는 아니였어요. 몇 번이나 깊은 호흡으로 마음을 다독였고,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이 멋쩍어 괜스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봅니다.

 

돌녕의 잠길을 지켜주던 눈사람을 바라보며 웃던 돌녕의 마음, 눈사람을 만들던 산호의 마음처럼 웃음이 납니다. 깊이 잠들지 못하는 돌녕의 잠길이 안타까워 마음이 아릿하지만 베실 웃음이 납니다. 위안의 웃음, 수고했다는 진심을 담아서 응원을 보내는 조금은 서툴지만 기만하지 않은 웃음이 넘실거립니다. p. 113 “앓고 났더니 마음의 나이를 먹은 것 같아.” 독한 감기를 앓고 일어난 아침의 기재가 같은.

 

 

p. 448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인가 해주어야 한다고,

사랑하니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믿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는 내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닫습니다.

 

 

외가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된 돌녕의 눈을 안심시키는 것은 수안의 낡은 내복입니다. 같은 잠옷을 입게 되었던 날, 두 소녀의 마음이 하나의 줄로 묶이고 소녀들의 성장과 함께 팽팽하게 당겨진 줄은 커다란 눈깔사탕처럼 달큰했던 어린날의 기억을 잠식시킬만큼 불안하고 위태로와집니다. 조마조마하고 두근두근했던. 돌령의 기억을 따라 전해지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더욱 조심스럽고 쓸쓸함은 더욱 깊게 베어납니다. 수안의 목소리로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성장, 이라는 의미가 푸릇푸릇한 자람만이 아니란 것을 서른이 되고서야 어설피 알 것 같습니다. 싱그랍고 보드랍지마는 않은 어린 날의 기억이 가시처럼 박혀 쿡쿡 쑤시던 날들을 견디고 나면 그 가시가 내가 되는거죠. 그 노래가 생각납니다. 커피소년의 <상처는 별이 되죠>. 조금만 꾹 참아요 조금만 더 견뎌요 그대의 그 눈물로 세상 비추죠. 신재언니의 마음을 고스란히 안고 내게 온 책에 언니의 마음 사이사이 내 마음을 담아봅니다. 도닥도닥, 서두르지 않고 조금 느린 듯한 속도로 도닥이며 언니의 마음의 조금 더 편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언니 덕분에 참 예쁜 책을 만났습니다.

 

돌녕과 수안을 만나는 동안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함께 잠옷을 입었던 소중한.

 

 

 

+) 마음이 머문 자리.

 

p. 408

서로가 살갑지는 못했어도 한 번도 싫어한 적은 없었다고. 우리는 설명하는 데 서툴렀고 모든 관계에 서툴렀다. 다정히 다가가 등을 껴안으며 그동안 내 마음은 이러했답니다 고백하기엔, 저마다 진심을 전하는 법을 잘 알지 못했다.

 

p. 138

흘러간 물은 다시 오지 않는다지만, 우리 눈에 비친 냇물은 언제나 똑같아 보이기만 했다.

 

p. 212

“세상엔 나침반 같은 사람과 풍향계 같은 사람이 있어. 나치반 같은 사람은 길을 잃어도 자기가 찾아가야 할 곳을 알게 되지. 어디에 갖다 놓아도 바늘은 정확한 방향을 알려주니까. 목표가 분명한 거야. 반면 풍항계 같은 사람은 바람이 불 때마다 목표를 놓쳐. 그 사람이 기준 삼았던 풍항계는 늘 변하니. 난 여러분 인생에도 나침반이 하나쯤 있었으면 해.”

 

p. 298

누군가 힘들 때 그걸 고쳐주는 일은 쉽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는 걸.

 

p. 319

“전에는 나도 그 말처럼 나침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근데 이젠 아닌 것 같아. 바람 부는 대로 따라가도 안 될 건 없잖아. 더 자유로울지도 모르고.”

 

p. 406

타인이 가진 소외감이나 걱정거리를 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선 내가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소년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무엇인가 달라지고 있었다. 아마 변해가는 건 나였을 것이다.

 

p. 452

세월은 상처를 잊기엔 너무 느리고, 무심했던 이들의 근황을 따라가기엔 너무 빨랐다.

 

462

한때 내 것이었따가 나를 떠난 것도 있고, 내가 버리고 외면한 것도,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도 있다. 다만 한때 몹시 아름다웠던 것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것들은 지금 어디로 달아나서 금빛 먼너지처럼 카를거리며 웃고 있을까. 무엇이 그 아름다운 시절을 데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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