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달의 바다│정한아│문학동네│2007.07.31│p.183

 

 

 

제 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품집, 이라는 타이틀에 잠시 멈짓 합니다. 주옥 같은 심사평들에 - (심사평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작품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우는, 마치 진흙 속의 진주를 갈고 닦아주는 느낌이랄까! 여튼 깨알같은 심사평들에 감탄을 더하고는 그러나 - 한뭉텅이 의심을 손에 쥐고 무겁게 책장을 넘깁니다. 그런데 첫 문장부터 쿵, 나의 마음이 꼬꾸라집니다. p.7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나중엔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 그때부터 나는 온전히 그녀의 이야기에 쥐락펴락 옴짝달싹을 못하는겁니다. 그녀의 흔들림대로.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언론사 입사시험에 번번이 낙방해 백수생활을 면치못하는 은미. 막막한 현실에 자살을 생각했던 날, 할머니가 그녀를 조용히 부릅니다. 15년 전 연락이 끊긴 고모가 사실은 미항공우주국의 우주비행사라는 엄청난 사실을 폭로하며 고모를 만나고 오라는 특명을 전달하지요. 우주비행사인 고모가 할머니에게 보내 온 편지와 배꼽친구 민이와 함께 고모를 만나러 가는 은미의 여정이 머슬머슬하지 않도록 잘 어울려 펼칩집니다.

 

가볍게 뒤통수를 친다던 반전은 사실 어느정도 예상이 되니까 조금 아쉬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구 그녀의 이야기에 매혹되는 이유는 텍스트 자체가 가지는 좌르르르한 윤기(潤氣) 덕분입니다. 문든 떠오른 김애란의 텍스트가 높푸른 가을 하늘의 탱탱한 탄성을 가졌다면 정한아의 텍스트는 봄 공기늘의 싱그러움, 겨울을 견디어 낸 푸름이 지닌 여유가 묻어납니다. p. 160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저 바라볼 뿐이죠. 하지만 이 세계가 오해 속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떠올려보면 분명히 신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분을 향해서 큰 소리로 노래라도 불러드리고 싶어요. 지구를 벗어나면 우주, 또 우주를 벗어나면 무엇이 있을지 저는 상상조차 할 수 없거든요. 김애란의 텍스트가 단어 하나하나에 마음을 기울여 보기에 좋지만 문어체의 느낌이 다소 강하다면 정한아의 텍스트는 유유히 흘러 입술에 편안히 닿습니다.

 

텍스트의 너그러움은 고스란히 이야기에 녹아들었습니다. 번번히 취업의 쓴잔을 마시고 자살의 방법을 궁리하는 은미와 정체성의 괴리에서 흔들리는 민이의 모습에서, 폐의 낭종은 부풀어오르고 하루종일 쉴틈없이 샌드위치를 만드는 고모의 모습에서, 슬리퍼를 파는 조엘의 모습에서 우리는 마주하게 됩니다. 과연 내 꿈은 무언인가, 나는 행복이라는 삶을 가꾸고 있는가, 라는 다소 진부하지만 우리 삶의 매 순간 마주하게 되는 본질적인 질문으로의 껄끄러운 대면을 부드럽게 포용합니다.

 

 

 p. 142

 

열기가 다 식은 여름밤이었다. 바람이 목 뒤를 쓸고 지나가자 청량함이 느껴졌다.

"저 아저씨 마음에 들지?" 민이가 물었다.

"그럭저럭"

"뭐, 아주 마음에 쏙 들어놓고는." 나는 입을 내밀었다.

"슬리퍼 장사라는 게, 남자로서 너무 야망이 없는 거 아닌가."

"그게 기쁨일 수도 있잖아." 민이는 까딱까딱 걸으면서 말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차 안에 앉아서 온종일 뜸한 손님을 기다리는 거, 그것만이 저 아저씨의 야망일지 누가 알겠어."

 

p. 147

 

서울로 돌아가면 민이는 '민희'나 '미니'가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생각도 못 했봤던 상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민이가 백화점에 가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탈의실 밖에서 겉옷을 들고 기다려줄 수 있다. 전화를 걸어와서 울기 시작하면 멈출 때까지 들어줄 수도 있다. 그것이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다. 기다려주는 것.

 

 

여행에서 돌아온 은미는 키가 크고 잘생긴 사업가로 조엘을 소개하며 할아버지, 할머니를 안심시키고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컴퓨터 화면을 매일 밤 바라보며 이대갈비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이는 가출을 하고 '민희' 혹은 '미니'가 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고모가 버리고 간 줄 알았던 사촌동생, 의젓했던 찬이는 자주 고함을 지르고 핸드폰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은미의 정수리 부분에 새로 나긴 시작한 솜털같은 머리카락처럼 부드럽고 약하지만 어느 날엔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훌쩍 자라 있겠지요. 마지막 장을 덮으며 크게 기지개를 켜올립니다.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갑니다. <달의 바다>는 그렇게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는 이야기입니다.

 

 

 

p. 145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고모는 부드럽게 웃었다.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네가 나를 보러 와준 것처럼 기대 밖의 좋은 일도 있는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거고.

고모는 그걸 알기 때문에 세상에 빚진 것이 없어."

"그래서?"

"자유지."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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