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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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허밍웨이│문학동네│2012.01.20│p.160

 

 

 

친애하는 산티아고 할아버지,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겨울바다에 다녀왔습니다. 바람이 사납던 겨울바다는 위엄 가득 거친 파도를 보란 듯이 뿜어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히 오후 햇살에 느긋이 반짝임을 더합니다. 바다가 갖고 있는 이 여유는 위용(威容), 그 당당함에서 비롯된 것일 테지요. 당신은 내 눈이 닿지 못하는 저 깊은 바다에서 청새치와 힘에 겨운 싸움을 치르고 있습니다. 망망대해(茫茫大海), 의미 없이 읊조리던 단어가 마음에 절절히 닿습니다. 크기를 가늠조차 어려운 두려움과 깊이를 추측조차 할 수 없는 절망 앞에서 당신의 담담함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 한 켠 묵직한 무언가가 비감(悲感)해짐을 느낍니다. 도대체 어떤 세월을 견디고 나면 그런 담담함을 갖을 수 있는 걸까요?

 

 

p.31

노인은 언제나 바라를 '라 마르(la mar)'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바다를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스페인어였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이따금 바다를 나쁘게 말하긴 하지만 그런 때도 항상 바다를 여자처럼 여기며 말했다. 젊은 어부들 가운데, 상어 간으로 한창 벌이가 좋을 때 구입한 모터보트를 타고 다니며, 찌 대신 부표를 낚싯줄에 매달아 사용하는 자들은 바다를 남성인 '엘 마르(el mar)'라고 불렀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자나 투쟁 장소, 심지어 적처럼 여기며 말했다. 하지만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고, 큰 호의를 베풀어주거나 거절하는 어떤 존재로 생각했다. 만약 바다가 사납고 악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바다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었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바다는 달의 영향을 받는다는 게 노인의 생각이었다.

 

p. 67

노인은 뱃머리 판자에 기대어 좀더 편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다가오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물고기는 꾸준히 헤엄쳐 나아갔고 배는 천천히 검푸른 바다 위를 이동했다. 동풍이 불어와 바다가 약간 일렁였다. 정오가 되자 노인의 왼손은 쥐가 풀렸다.

 

 

당신이 끊임없이 그리워했던 사내아이를 당장이라도 곁에 데려다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당신을 지켜보는 일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틀 밤과 낮을 꼬박 물고기와 싸운 끝에 당신이 힘겨운 승리를 거뒀을 때 나는 환호할 수 없었습니다. 물고기의 엄청난 크기를 감당하기에 당신의 배는 너무 작고 당신은 너무 지쳤으니까요. 청새치와의 힘겨웠던 싸움보다 더 혹독한 싸움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테니까요. 나는 두려웠습니다. 혹여 당신이 모든 것을 그만둘까 나는 무서웠습니다. 당신의 방식대로라면 바다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 시간의 바다는 당신께 너무 냉혹했습니다.

 

 

p. 115

"이게 다 꿈이라면, 그래서 내가 저 물고기를 낚은 일이 아예 없었던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미안하구나. 물고기야. 애당초 너를 낚은 게 잘못이었어." 노인은 말을 멈췄다. 그는 이제 물고기를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피가 빠져나가고 파도에 씻긴 물고기는 거울 뒷면 같은 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줄무늬는 아직 그대로 보였다.

"이렇게 멀리까지 나오질 말았어야 했다. 물고기야." 노인은 말했다. "너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나오질 말았어야 했어. 미안하구나. 물고기야."

 

 

당신이 모든 에너지를 바다에 토해내고 육지에 도착했을 때 - 고백하자면 나는 마음 한 켠에서 당신을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돌아와 준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당신께 남은 것은 길이가 5.5미터에 달하는 그러나 이제 뼈와 대가리만 남은 커다란 청새치와 늙고 지친 몸뚱아리 뿐입니다. 아니네요. 바다를 닮은 아이가 잠든 당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끙끙 신음을 앓겠지만 입꼬리는 약간 올라가 얼굴 가득 세월이 깊은 주름을 만들어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잠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을 닮은 사자의 꿈을 꾸면서.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야기는 참 시시합니다. 결국 당신은 86일이나 물고기를 잡지 못한 운이 나쁜 늙은 어부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시시한 이야기가 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까닭인지 산티아고 할아버지, 당신이 속 시원이 말해주세요. 홀로 청새치를 잡을 용기가 몸 어느 구석에서 솟아나는건지, 보이는 것은 바다 뿐인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지친 싸움에서 하나님께 조건을 달며 기도하는 너스레는 어디에 숨겨두었던건지, 오히려 청새치의 처지를 걱정하는 따뜻한 심성은 본디 타고나는 것인지. 결국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당신은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하나님을, 애당초 당신의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았을 청새치를,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잡은 귀한 청새치를 모두 훔쳐 간 상어들을 원망하지 않네요. 오히려 사과를 합니다. 아... 나는 아직 당신의 깊은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살아온 30년이 당신의 이틀에 비해 참 시시해보이는군요. 아! 우리 모두네 삶은 모두 이렇게 시시한가봅니다. 당신은 시시함을 위장하여 명징하게 신산(辛酸)한 삶의 위대함과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참으로 덤덤하게 전합니다. 그 날 내가 마주했던 겨울바다의 여유는 아마 당신을 닮은 모양입니다. 산티아고 할아버지, 당신은 여전히 오늘도 표표히 망망대해 어딘가의 청새치를 찾고 계시겠지요?

 

 

 

p. 122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노인은 생각했다.

행운이란 여러가지 모습으로 찾아오는데 누가 그걸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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