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재구성 - 제28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창비시선 306
안현미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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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의 재구성

안현미 │ 창비 │2000.09.22 │p.101

 

 

 

시인이 말했습니다. 시인이란 저주받은 자들이 아니라 저주를 기꺼이 선택하는 자들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와 나 아닌 것들의 삼투압을 견디며 우리는 서둘러, 미리, 고독하게, 지구의 모퉁이에서 눈물을 흘린다 촛불이 운다 다시 기타를 켠다 # 기타 등등

 

그 저주의 결과물은 역시나 보드랍지마는 않습니다. 순간순간 목에 턱 걸리는 것이 삼키기에 여간 고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내 몸에 좋은지 혹시 해가 되지 않는지는 모르고 먹습니다. 프로이드의 성격 발달 이론에도 생후 1년을 구강기로 정의하고 모든 만족은 구강을 통하여 먹는 1차적 활동에서 쾌락을 느끼지요. 탐색은 입에서 시작합니다. 무조건 입으로 가져가 물고, 빨고, 삼키고 탐색은 오로지 구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생존에 대한 전적인 의존의 시기. 나는 시로의 구강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나도 곧 맛을 알게 되겠지요.

 

 

여자비

 

아마존 사람들은 하루종일 내리는 비를 여자비라고 한다

여자들만이 그렇게 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울지 마 울지 마 하면서

우는 아이보다 더 길게 울던 소리

오래전 동냥젖을 빌어먹던 여자에게서 나던 소리

 

울지 마 울지 마 하면서

젖 먹는 아아비돠 더 길게 우는 소리

오래전 동냥젖을 빌어먹던 여자의 목 메이는 소리

 

 

여자를 말합니다. 울지 마 울지 마, 여자는 더 이상 보호의 대상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냉혹한 현실의 경계 그 날카로운 선에서 마땅히 보호되어야 할 자격을 상실한 채 이제는 그러했던 사실조차 망각한 채 오히려 태연한 얼굴입니다. 시인 손택수는 발문에서 안현미의 시를 "늘 한쪽으로 조금 기우뚱해 있는 사선(/)을 닮았다"며 "현실의 비참을 환상적 기법을 통해 위무하는 것이 그녀의 시가 지닌 매력"이라고 평가했다지요. 기우뚱한 사선, 그러나 그 기우뚱함을 닮으면 수평선을 닮았다 믿게 됩니다.

 

한동안은 이렇게 무작정 삼켜내는 도리 밖에 없을 듯 합니다.

 

 

 

계절병

 

 

고독은 나무처럼 자라는 것입니다 시간은 하나의 커다란 구멍이고 끝끝내 삶은 죽음입니다 거대한 고래처럼 거대한 고독이 두려운 나머지 시간을 밀거래하는 이 도시에서 서로가 서로의 휴일이 되어주는 게 유일한 사랑입니다 병인을 찾을 수 없는 나의 우울과 당신의 골다공증 사이를 자객처럼 왔다 가는 계절 그 그림자를 물고 북반구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의 날개 같은 달력 한 장 가없는 당신 나의 엄마들 왜 모든 짐승들에겐 엄마라는 구멍이 필요한지, 시간조차 그 구멍으로부터 발원하는 발원수 같은 건 아니겠는지 시도 때도 모르고 철없이 핀 꽃처럼 울다가 웃다가 고독은 나무처럼 자라고 계절을 바꾸어 타고 먼먼 바다로 헤엄쳐가는 물고기가 수면 밖으로 제 그림자인 양 쳐다보는 나무는 엄마라는 구멍처럼 고독합니다 가엾은 당신 나의 엄마들 끝끝내 삶은 죽음일 테지만 죽기 위해 제 기원을 찾아 뭍으로 돌아오는 거대한 표유동물처럼 젖이 아픈 계절입니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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