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능성이다 - 기적의 트럼펫 소년 패트릭 헨리의 열정 행진곡
패트릭 헨리 휴스 외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가능성이다

패트릭 존 휴스, 패트릭 헨리 휴스 │ 문학동네 │ 2009.10.16 │ p.312

 

 

 

쿵쿵쿵쿵. 빨라진 맥박이 제멋대로 자맥질 칩니다. 한 번의 호흡으로 마지막 책장까지 덮고 오랫동안 그렇게 나는 요동치는 맥박이 진정되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가 가진 장애가 버거울수록 그의 드라마는 극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잠시의 순간이 부끄러워 나는 차마 그를 응원할 수도 없었습니다.

 

고백하건데 나는 성공에세이나 이미 사회적인 성공을 거머쥔 이들의 자기계발서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단단히 틈도 없이 겹겹이 나를 둘러 싼 자격지심이 그들의 이야기에 등을 보입니다. 배알이 꼴리다, 딱 그 마음입니다. 내 감정의 얇은 막을 콕콕 쑤셔대는 것에도 나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앞에 점점 작고 초라해지는 나를 마주하는 일이 나는 겁이 났던거지요. 그런 나를 위한 합리화로 그렇게 그들의 성공 뒤에는 마땅히 그럴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그 생각이 동전 뒤집듯 한 번에 뒤집어지지는 않았습니다.)

 

 

p. 118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걸을 수 없나요?”

화가 난 게 아니라 호기심 때문이었다.

“하느님은 우리를 모두 다르게 만드셨단다. 그래서 너도 다르게 만드셨을 뿐이야.”

엄마는 늘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걸을 수 있어도 나처럼 피아노를 잘 치진 못한다는 말도 꼭 덧붙였다. 마치 하느님이 커다란 상자 속에 수많은 능력을 넣어두었다가 사람이 태어날 때마다 하나씩 꺼내 나누어준다는 이야기 같았다.

 나는 부모님의 그런 설명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내게는 더없이 논리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네, 나는 걸을 수 없어요. 그게 뭐 큰일인가요?”라는 식으로 말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간혹 내가 현실에 둔감하거나 현실 도피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나는 현실에 아주 민감하다. 만일 하느님이 지금이라도 “패트릭 헨리, 오늘부터 걸을 수 있게 해줄까?”하고 물으신다면 당장에 “예!” 하고 대답할 테니까.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독립적으로, 온전히 자기 힘으로 살아가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걸을 수 없다는 사실에만 집착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걷지 못한다는 것의 무게를 마음속에서 줄여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큰일에서 별것 아닌 일로 줄이는 것이다.

 

 

여기 이 몇 문장이면 페트릭 헨리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헨리가 태어나는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그리고 헨리의 아버지와 헨리가 그 시간을 더듬어 짚어 오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힘겨웠던 고비 고비들. 인공 안구 삽입을 위해 반복되었던 수술과 앉아 있기 위해 허리에 박은 철심, 하다못해 혼자서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모험인 헨리의 삶 구석구석과 루이빌 대학 마칭밴드에서의 생활, 그리고 진짜 슈퍼맨이 된 그들의 부모님 이야기까지. 헨리의 삶은 모든 순간이 빛나는 기적입니다.

 

만약에 ‘내 아이에게 눈이 없다면...?’ 찰나의 상상에조차 내 마음의 툭, 떨어져 내립니다. p 20.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받아들일 의지가 없는 한, 우리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 뿐이 아니라 평생 걸을 수도 제대로 앉아 있기도 힘들다는데, 헨리와 그의 가족이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겪은 통증은 어떠한 텍스트로도 온전히 채울 수 없었겠지요. 이 책 속의 헨리의 삶은 행복한 이야기로 마무리 짓지만 그의 통증은 end가 아니라 여전히 ing입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가파른 산이, 깊고 아찔한 낭떠러지가 헨리의 걸음을 가로막을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믿음, 헨리는 어줍은 핑계대고 피하거나 멈추지 않으리라는 깊은 믿음이 앞날에 대한 안개 같은 두려움을 깨끗이 거둬줍니다.

 

책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나에게 묻습니다. 헨리의 삶과 지금 내 삶 중에 하나를 선택을 할 수 있다면 - 좀 아니 많이 비겁하긴 하지만 현재의 시점으로 - 누구의 삶을 선택하겠느냐고. 아무리 주관적인 잣대를 들이대도 (비록 그가 신체적인 불편함을 지녔지만) 그가 가진,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이 내 몫보다는 매우, 비교조차 의미없을만큼 그가 이루어 낸 것은 기적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레몬을 집을 용기가 없습니다. 그러고는 나의 레몬을 어루만집니다. 아, 그의 레몬에 비하면 애교스럽기까지 한. 나 뿐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누구라도 선뜻 그의 삶을 탐내지 못하겠지요. 헨리였기에 가능했던 삶.

 

그 가능성이 내게도 묻어나길 바랍니다. 더 이상은 누구도 탓하지 않기, 속단하며 해보지 않고 포기하지 않기, 나를 불신하지 않기, 그리고 어제도 내일도 아니라 온전히 오늘을 살아가기.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헨리처럼.

 

 

 

p. 304

‘오늘’은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로 가득 차 있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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