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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라는 남자 - 다가가면 갈수록 어려운 그 남자
마스다 미리 지음, 안소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빠라는 남자
마스다 미리 │ 소담출판사 │ 2011.12.23 │ p.134
아빠, 아빠, 입에서 동글동글 굴러가는 발음에 어느사이 기분이 좋아집니다. 사실 나는 아빠와 특별히 깊은 정이 없어서 오히려 그 존재로의 열망에 더욱 그립고 애닯은지도 모르지요.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해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혼자 서울에 왔고, 그렇게 그렇게 흐른 시간이 벌써 10년이 넘어 아빠와의 거리는 그 세월만큼 멀찌감치 이제는 안타까움조차 문드려져 그렇게 멀어졌습니다. 그녀의 이야기 속 아빠를 만나며 내내 마음 한 켠 어딘가가 몽글몽글 움직거립니다. 다르지만 너무 다르지만 닮아 있네요. 아빠의 모습.
우리 아빠 이야기를 조금만 해볼까 합니다. (나는 이글을 몇 번이나 지우고 씁니다. 마음의 눈물 그릇에 '아빠'라는 돌맹이가 툭 던져져서 몇 번이나 위태롭게 눈물이 넘칠 듯 찰랑거립니다. 넘칠 듯 말듯 한 그 위태로움과 안심의 어딘가.) 60년 쥐띠, 올해 오십하고 셋. 내 나이가 벌써 서른이니 스물넷 그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된거네요. 내가 그 나이를 지나고보니 그것이 얼마나 큰 결심이었을지 나는 모두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 무거웠을 아빠의 어깨가 나는 문득 쿡, 쑤셔 옵니다. 하지만 그 희생 덕분에 어릴 적 나는 젊은 아빠, 엄마가 언제나 득의양양했지요.
하지만 반찬투정하는 걸 싫어해서 눈물이 쏙 빠지게 나를 혼내던 아빠, 술을 드시면 무한반복 버튼이 고장난 듯 했던 얘길 하고 또 하는 아빠, 성격이 급해서 빨리 대답을 못하면 버럭 성질을 내는 아빠, 무언가 좋아해 그것에 빠지면 앞·뒤 가리지 않는 아빠 (예를 들면 겨울이면 취미로 사냥을 하시던 아빠는 사냥개가 좋다고 사냥개 농장을 덜컥 사버린다든가 그 사냥개들과 멧돼지 사냥을 갔다가 새끼 멧돼지를 건드려 어미 멧돼지와 1:1 대치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하든가 결국 잡아 온 멧돼지로 동네 잔치를 벌이고 나에게 박카스를 섞은 피를 억지로 기어코 먹인다든가 기꺼이 어미를 잃은 새끼 멧돼지의 어미가 된다든가 그렇게 집은 점점 부엉이, 노루, 멧돼지 등의 박제로 흡사 정글처럼 변해가다가 그런데 결국은 사냥개 전부를 도둑 맞는다는가 하는. 아! 한 번은 경상도에도 잃어버린 사냥개가 일주일만에 집으로 찾아오기도 했었고.), 어릴 적 나에게 아빠는 아빠라기보다는 말썽꾸러기 큰오빠 같았지요. 그래도,
방학 때마다 만들기 숙제를 대신해 주던 아빠, 손재주가 좋아 책꽂이며 책상 등은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우리 아빠, (지금 쓰고 있는 화장대도 아빠가 만들어주셨어요), 크리스마스엔 카드를 잊지 않고 써주던 아빠, 시험을 잘보면 어찌 알고 통닭을 사주던 아빠 (물론 엄마라는 통신원 덕분이었겠지만, 늘 우연을 가장했던), 핸드폰이 처음 생겼던 17살 생일엔 생일축하 이모티콘을 있는대로 퍼부어주던 아빠 (대신 아빠가 쓰신 문구는 하나도 없어 하물며 내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예를 들어 이름을 넣어야 할 OO은 쿨하게 OO으로 보냈던).
핸드폰에 내 이름은 '서지영'으로 저장해 놓은 아빠 ('애정돋는딸님♥'으로 수정해 놨어요.), 이젠 내가 싫어하는 반찬 따위는 멀찌감치 밀어두는 아빠, 가뭄에 콩 나듯 전화해서 (알코올의 기운을 빌리고) 불만을 구십구마디 털어 놓는 아빠에게 구십구마디 잔소리로 대응하면 능글능글 껄껄껄껄 웃고는 마지막엔 사랑한다고 백 마디를 채우고 나의 백 마디 사랑해는 대꾸도 않고 툭 끊는 아빠 아빠 아빠 우리 아빠.
아빠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하나씩 기억을 더듬어 세월을 짚어 가면서 그녀는 새로운 아빠를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아빠를. 나도 그랬거든요. 엄마는 늘 말씀 하셨죠. "아빠가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어릴 때 넌 땅에 발이 닿는 날이 없었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나는 기억할 수 없지만 아빠는 기억하고 있겠지요? '다가가면 갈수록 어려운 그 남자'라는 부제처럼 이 얇은 한 권의 책으로 아빠를 전부 이해하는 것은 어렵겠지요. 어쩌면 어느 날이 된다 하여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해를 필요로 하는 사이가 아니니까요. 그가 나의 아빠임은, 내가 그의 하나뿐인 딸임은.
종이책읽기를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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