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1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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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고 열흘을 보냈다. 아마존 리뷰 3200여 개, 평점 별 넷 반. 내가 과연 어떤 말을 보탤 수 있을까? 하지만 미시시피 주의 잭슨, 그 곳의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안아줄 듯한 너그럽고 지혜로운 아이빌린이, 얄궂게 바른 말을 하지만 전혀 밉지 않은 누구보다 여리고 고운 미니가,  껑충 큰 키에 조금 어리숙해 보이지만 옳음에 흔들림없는 배짱 두둑한 스키터가 내 삶에 아직 그대로 숨쉬고 있어 나는 내 몫의 그 뜨끈뜨끈해진 심장만큼, 의 기록의 남겨 본다.

p.24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가 묻는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미스 스키터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여태껏 그렇게 바보 같은 질문은 처음이다. 조용하고 평화롭던, 삶을 그녀가 흔들고 있다. 흑인 여성들은 백인 가정의 가정부로 일하면서 느끼는 멸시와 천대, 그리고 인간으로서 누구나 누려 마땅할 존엄성마저 누리지 못하지만 그 어글어진 현실은 그렇게 그들의 삶이다. 그들은 억울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토해내는 순간 그들의 삶이 무너질 수 있음을 알기에 그저 순응하고 감내하는 쪽을 선택했다.

p.178

"부탁이에요. 그래도 생각은 해봐줄 거죠?" 

p. 208

"하지만 화를 내며 저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걸 어떻게 믿지요?" 

"그건.....그저 나를......믿어야 한다는 말밖에 못 하겠어요." 

백인의 가정에서 대학교육까지 잘 마친 스키터는 왜, 조용하고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그녀를 위험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애쓰는 것일까? 그것은 작가 캐스린 스토킷 또한 - 물론 시대는 많이 변했을지라도 - 이 불편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p. 354(2권) 우리 식구 중에서 디메트리에게 미시시피에서 흑인으로 살면서 백인 가정을 위해 일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물어본 사람은 단연코 없었을 것이다...나는 오랫동안 내가 그 당시에 디메트리에게 그 질문을 할 만큼 철이 들었더라면, 좀더 사려 깊었더라면 하고 바랐다...그것이 내가 이 소설을 쓴 이유다. 라고 이야기했다. 흑인 가정부에게 누구보다 깊은 사랑을 받고 자란 백인 아이였던 스키터는 그리고 캐스린 스토킷은 조금 늦었지만 그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p.111 콘스탄틴이 자기 엄지를 내 손에 꾹 눌렀다. 나는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살면서 끊임없이 정치에 대해, 유색인데 대해, 여자로 사는 것에 대해 무엇을 믿으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콘스탄틴이 내 손에 자기 엄지를 꾹 누른 그 순간, 내가 무엇을 믿을지는 나 자신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키터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손바닥의 꾸욱 눌러주던 콘스탄틴의 믿음 덕분이였으리라.

아이빌린이 스키터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미니를 설득하며 그들의 작지만 위대한 반란은 시작된다. 그들의 걸음은 늘 조심스럽고 위태로왔다. 그들과 동행하는 나도, 큰 숨을 쉬기 어려울만큼 마음 졸이며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며 그렇게 끝없는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p.114 오, 비밀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짜릿한 일이었다. 그들이 비밀에 나도 같은 편이 된듯한 신나는 기분이다. 아이빌린이 내 응원을 알아줄 것 같은 마음이다. 나쁜 여자의 표본인 힐리 홀브룩과 정말 바보같은 엘리자베스 리폴트, 그리고 본성이 맑은 그러나 강하여 매력적인 미스 셀리아과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는 지루할 틈 없이 진행된다. 흑인과 백인의 인종차별이라는 커다란 이야기 안에 백인 사회안에서도 존재하는 계급, 그리고 여자로 감내해야 했던 차별을 가슴 저미게 때론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을 흘릴 만큼 유쾌하게 때론 콧날 시큰하여 뭉클뭉클 감동스럽게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야기는 1960년대 미국의 이야기이며 또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 그렇게 살아있어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를 끌어들인다.

잭슨에 늘 쓰라린 차별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였다. p. 44(2권) "삼십 년 뒤 미스 마거릿이 부인병으로 숨졌을 때 나도 장례식에 갔어요...미스 마거릿이 쓴 편지가 들어 있더군요. '고마워. 내 아기가 아프지 않게 해줘서. 절대 잊지 않을게.'"칼리는 검은 테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친다. "누구든 백인 여자가 내 이야기를 읽을 때 이걸 알아주면 좋겠어요. 누군가 당신에게 베푼 것을 기억하며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식탁의 긁힌 자국을 내려다본다. "정말 좋은 일이라고." 그것이 우리의 바람보다 훨씬 더딜지라도 그것은 그들에게 이미 존재했던 변화의 작은 가능성이었다. 그들에게 수많은 선이 존재했지만 그보다 먼저,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평등함이 살아 있었음이라.

그들과 동행하는 동안 그 진하고 확고한 믿음이 부러웠다. p.29 는 미니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녀가 씩 웃더니 팔꿈치로 툭 치며 인사를 한다. 그러고는 등을 기대고 편히 앉는다. 내 앞에서는 겉치레할 필요가 없다. p.99 (2권) 미스 스키터는 내 시선을 피하며 메마르게 웃는다. "지나간 일은 마음에 안 둬요." 그녀는 허탈하게 웃는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 누구나 마음에 두기 때문이다. 흑인이나 백인이나 모두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잊지 못한다. 사실 그녀들은 누구보다 약했다. 두려웠다. 망설였다. 그럼에도 그런 모험을 감행할 수 있던 것은 튼튼히 뿌리 내린 진한 믿음 덕분이였을 것이다. 타인으로부터의 믿음과 지지(支持)는 그 어느것보다 강한 힘을 발휘하니까. p.266~267 (2권) 그 순간 목사가 내게 상자 하나를 내민다. 흰 종이로 포장하고 책 표지와 같은 하늘색 리본으로 묶은 것이다. 그가 축복의 의미로 거기에 손을 얹는다. "이건, 그 백인 여성에게 주는 거예요. 그녀에게 우리가 사랑한다고, 우리의 가족처럼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결국 나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p. 290 (2권) 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안다. 그들은 대차고 억척스러운 미니라고, 혼자 충분히 일어설 수 잇는 여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리로이가 나를 두들겨 팰 때 내가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참담해지는지 그들은 모른다. 그를 되받아치지가 겁난다. 내가 그렇게 하면 그가 나를 떠날까 겁난다. 나도 이것이 어처구니없다는 것을 잘 알고, 내가 이렇게 나약하다는 사실에 봅시 화가 난다! 나를 미친 듯이 두들겨 패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나는 왜 바보 같은 술주정뱅이를 사랑하는가? 누구보다 강단(剛斷)있어 보이던 미니의 여림을 마주하면서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지만, 모른척해야 했다. 그녀는 여전히 우리가 대차고 억척스러운 미니로 생각해주길 바랐으니까. 다행히 모두를 지키기 위해 미스 힐리와의 파이 사건을 책에 넣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깊은 두려움에 떨던 속 깊은 미니,는 리로이를 떠날 것을 결심한다. 그녀는 정말 용감하다.  

p. 311 (2권) 정말 가능할까? 나는 처음으로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미니의 말도 옳고 아이빌린의 말도 옳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빼면 이곳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부모님 때문에 남았다가는 오히려 서로 관계만 어그러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선반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간다. 뉴욕으로 간다. 결국 그녀는 뉴욕에서 원하던 일자리를 얻었고, 떠날 용기를 낸다. 일은 그렇게 흘러가야 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듯 p.200~201(2권) "내가 너를 얼마나 똑똑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키웠는지 모른다면 스튜어트가 당장 스테이트 가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상관없어." 어머니가 눈살을 찌푸리고 겨울의 땅을 바라본다. "솔직히 나는 스튜어트가 탐탁지 않구나. 너를 만난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고 있잖니." 그녀는 정말 눈부시다.

p. 343 (2권) 어쩌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내 나이는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생각에 울음과 웃음이 동시에 터진다. 어젯밤만 해도 나는 내 인생에 새로운 것은 전혀 없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자신의 천직으로 여겼던 가정부이길 버리고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하는 아이빌린. 작가 캐스린 스토킷이 <헬프>에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 아니였을까. 전혀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잠든 우리의 삶을 깨우라고. 그래야 한다고. 그것이 삶의 순리라고. 이렇게 미니, 스키터, 아이빌린이 자신의 삶을 찾는 첫 걸음을 내딛으며 <헬프>는 긴 여정을 마친다. 이것은 <헬프>의 마지막이지만 또 다른 용기의 시작이다. 그리고 나는 변함없이 그녀들의 걸음을 응원할 것이다. 
 



 

p.276(2권)

"아직 울 때가 아니예요. 어쩌면 일은 흘러가야 하는 대로 흘러가는 걸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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