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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평점 :
좋은 소설이라고 해서 반드시 재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재미있다고 해서 꼭 좋은 소설이라고 보기도 힘들겠지요. <영혼의 집>은 좋은 소설이면서도, 읽기에 편한 책입니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군부의 쿠데타와 군사독재 이야기가 나오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떠올렸습니다. 칠레와 한국은 참 비슷한 역사를 겪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제3세계 국가들이라면 대부분 근대화 과정에서 칠레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정치적 혼란을 다 겪었을 것 같습니다. 말하는 자유조차 억압하는 정부의 내용을 읽으면서, 군사독재 시기에 언론이 탄압당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대부분 중산층이나 하위계층 출신인 군부 세력이 오히려 더 악랄한 방식으로 민중을 탄압하는 것은, 세계 어디에나 통하는 법칙인 것 같습니다.
저는 특별히 이 책을 읽으면서 남자 주인공에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그를 통하여 보수층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어르신들을 보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아무 상관 없을 듯한) 칠레의 소설을 통하여, 보수적인 분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땅이나 재산에 대한 집착, 화목한 가족에 대한 환상, 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분위기...칠레의 보수층이나 한국의 보수층 모두 통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공산주의를 싫어하고 사회변혁을 싫어하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자기 이익에 집착하는 측면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귀함에 대한 사랑(민중의 '천박함'에 대비되어)이 그들의 머리 속에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종종 엘리트주의로 나타나곤 하지요. 또한 그 분들은 자기의 사업에 대한 강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농장주인인 주인공이 자기 농장의 발전이 대부분의 소작인들의 고된 노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인정하지 못한 채, 모두 자신의 '헌신적인' 노력이라고 여기는 부분은,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의 경제를 모두 일으켜 놓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많이 일치하는 듯 보였습니다. 대통령 밑에서 수많은 민중들이 땀흘린 노동의 열매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소설 구성도 무척 특이했습니다. 맨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같습니다. 마치 윤회한다고 할까요? 이것은 소설의 주제와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죄는 죄를 낳을 뿐이지요. 누군가에게 가한 해는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지요.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용서와 화해'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