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론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42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김창성 옮김 / 한길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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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의 사상의 백미(白眉)는 아마도 자연법 사상일 것이다. 당시 범신론적 세계관에서 신의 섭리를 주장한 스토아 학파의 철학에 영향을 받는다. 스토아 학파는 보편적 이성이 자연(自然)이라고 하며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 선한 것이라고 말했다. 키케로는 자연법에 대해 법은 정의와 부정의의 구별이며 만물의 원초적 상태, 자연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기준에 따라 악에는 벌을 주고 선을 지키는 인정법들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키케로는 자연법을 철학적인 사유가 아닌 제도적으로 발현시킨 최초의 정치사상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연법은 이성적 인간에 보편타당한 법률이다. 올바른 이성을 가진 개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이에 반해 자연법을 기반으로 여러 사회에 적용시킨 인정법은 시대와 지역의 제약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자연법은 세계국가의 법의 가능성을 지니고 세계시민으로 살 수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사해동포주의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읽을 수 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폴리스 국가에서의 정치조직에 초점을 맞춘 데에 비해 키케로는 정치학의 외연을 넓혔다고 볼 수 있다.

키케로는 정치학의 지위를 높였다. 키케로는 정치생활이야말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따라서 정치가는 가장 높은 칭찬을 받을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정치가들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인 관습이나 법을 제정하기 때문이다. 정치가는 도덕률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키케로는 정치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이상적인 정치가의 모델을 제시한다. 키케로에 있어서 이상적인 정치가는 윤리적인 판단 능력은 물론이고 정직과 효용의 일치 그리고 신중함까지 갖추어진 지도자를 말한다. 이것은 도덕과 정치를 분리시킨 것이 아니라 둘 간의 조화를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근대의 자연법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키케로는 공화주의를 지지했다. 일단 키케로는 ‘공화’의 개념을 공공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것은 공동체주의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고 또한 자연법 사상에서 당연하게 파생되는 개념이다. 키케로는 공화주의의 본질은 상호성에 있다고 봤다. 이런 까닭에 합의와 공유된 이익에 의해 협력되는 것이 공화정의 특징적 성격이다. 그리고 공화정은 신뢰를 바탕으로 지탱된다. 키케로는 시민의 자유가 어느 누구의 지배에도 종속되지 않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의적인 지배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연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다. 키케로는 공화주의를 개인적인 욕망을 용인하면서 공공선에 대한 추구 또한 강조한다. 이것은 경쟁과 협동의 조화를 의미한다.

키케로는 국가론에서 ‘어떤 형태의 국가가 최선의 상태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키케로는 순수한 형태인 왕정, 귀족정, 민주정 제시하면서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을 설명한다. 키케로는 이런 정치형태를 말하면서 정치의 우연성을 부각시킨다. 시작은 왕정이다. 왕정 국가는 참주정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런 참주정은 귀족이나 인민에 의해 타도된다. 따라서 이후의 정치 체제는 귀족정이나 민주정이 된다. 이렇게 정립된 민주정은 폭민정치나 우민정치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었는데 반해 키케로는 우민정치가 왕정이나 귀족정에서 직접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폴리비오스의 순환론을 수정한 것이다. 키케로는 정치학에 있어서 논리로만 해석하려는 관점에서 탈피하고 정치학의 내재적 불안성에 주목했다. 키케로는 민주정을 가장 불안한 형태의 정치체제로 간주했다. 민주정의 상태에서 개인의 가치는 동등해진다. 그러므로 권위에 의한 복종이 어렵다고 보았다. 이런 상태는 쉽게 폭민정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귀족정에서는 인민이 노예로 전락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그리스의 아테네처럼 과두적인 상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 왕정은 이성이 정신 속에서 기능을 발휘하듯 바람직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데 그것은 관대한 군주라도 한 사람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면 인민이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단점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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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론 동서문화사 월드북 210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추인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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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는 18세에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진리에 대한 열정을 얻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키케로의 사상이 그의 신학사상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마니교에 심취했다. 마니교는 여러 종교가 섞인 복합적 종교 성격을 지닌 종교였다. 이런 성격에 따라 당연히 그 당시에는 이단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마니교도 아우구스티누스의 개종 이후에는 철저한 배척의 대상이 된다. 또한 당시 로마는 불가지론(不可知論)에 젖은 회의주의가 대세로 자리매김 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지적 상황속에서 플라톤주의로 상황을 타파하려고 노력한다. 그의 저서 신국론에는 곳곳에 플라톤 철학이 모든 철학자들의 관점보다 우위에 있음을 피력한다. 이런 아우구스티누스의 플라톤 철학에 대한 애정은 철학뿐 아니라 자연과학이나 윤리학에 대한 평가에서도 이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이원론적 철학을 지적도구로 삼아 자신의 신학을 전개시켜 나간다. 회의주의자들 틈바구니에서 절대적인 진리인 신을 설파해야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차용하여 설명한다. 이데아는 절대 불변한 고정적 가치의 것이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를 설명하기에 효과적인 틀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시의 회의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인식론을 전파했다. 당시 외부의 경험세계에서 인식을 시작하던 회의주의자들과는 달리 그는 내면의 영혼에서 진리를 찾기 시작했다. 또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이성을 통해 확증했다. 또한 영혼의 불멸을 주장하지 않았지만 육체와 영혼의 이원적 관계에서 인간의 존재를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플라톤을 지적도구로 삼은 그였지만 그래도 신학자이기 때문에 플라톤주의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플라톤은 왜 절대적인 신을 인식했음에도 그를 경배하지 않았는가?’, ‘플라톤은 신과의 매개로 정령을 채택하고 정령제사를 주장했지만, 신과 인간 사이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라고 말하며 플라톤과의 차별성을 언급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과 사람의 왕국을 제시하며 이원적인 분석틀로 정치철학을 전개해나간다. 그에게 있어 신의 나라는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에 따라는 나라이다. 이에 반해 지상의 사람의 왕국은 인간의 탐욕에 의해 얼룩져 있는 나라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치적 권위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악한본성을 지녔고 이것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치를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 서술한다. 신을 믿는 선한 사람에게도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의외로 현실주의적 정치의 시각을 대변한다. 그리고 그는 ‘사랑’을 사회적인 측면에서 다루었다. 그리스도교의 가치에서 사랑은 선택이 아닌 의무이다. 그가 말하는 신의 도성에 속한 사람들은 인간의 도성의 사람들도 돌볼 의무가 있으며 사랑의 의무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사회·윤리적 측면에서 국가 구성원의 기본소양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답게 그는 역사는 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고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에게 역사는 신의 구속사(救贖史)이다. 또한 역사는 신의 주권이 미친 신의 가공물이라고 표현한다. 신은 역사를 통해 신의 나라의 도래를 경고하고, 그 영광과 권위를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의 최후목표가 신의 나라의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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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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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사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의 정치철학 플라톤의 정치사상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철학적 지혜’와 다른 실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실천적 지혜’를 제시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개한다. 하지만 그는 현실적 측면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는 플라톤의 주지주의적 철학에 주의주의(voluntarism)적 철학을 덧붙였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과 함께 이상을 실현할 실천적 요소를 함께 고려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스승인 플라톤의 ‘국가’와는 다르게 이론만으로 책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현실 정치체제에의 여러 종류와 그 변형과 발생 과정과 전개 붕괴와 원인이나 보존방법까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에 대한 이해를 주목했다. 기존의 플라톤 철학이 이성을 두드러지게 강조한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에서 설득의 3가지 요소를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로 보는 바와 같이 그는 이성만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감정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핵심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는 감정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 사회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에서 구성되는 감정에 초점을 두었다. 이렇게 정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에 대해 설명하며 정치학의 개연성에 대해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적인 진리에 집착하지 않거나 전문성성이 없어도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조건들로 인해 정치학을 필연적인 법칙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우연의 학문으로 간주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극단적 통일성에 대해 비판한다. 이런 관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는 시대에 앞선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으로의 개인에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좋은 개인이 곧 좋은 시민, 좋은 통치자라고 여겼다. 좋은 사람이란 실천적 지혜인 ‘중용의 덕’을 지닌 사람을 의미한다. 결국 도덕적 성품이 좋은 지도자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통치자의 탁월함도, 개인의 탁월함도 모두 중용이라는 도덕적 성품에서 나오고 통치자는 과부족의 양극단을 경계하고 중용으로서 올바른 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켰던 근대 이후의 정치사상가들의 생각들과는 상이한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체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해왔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올바른 3가지의 정체인 왕정, 귀족정체, ‘혼합정체’(politeia)에 대해 언급하고 이것들이 왜곡된 왕정의 왜곡된 참주정, 귀족정이 왜곡된 과두정, 혼합정체가 왜곡된 민주정체를 구분했다. 이것은 최선의 정체를 찾기 위한 선결조건이었다. 세 가지 올바른 정체 가운데 신적 권위를 가진 정체가 왜곡된 것이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왕정이 왕의 탁월함에 근거하여 통치되지 않는다면 참주제가 최악이고 올바른 정체에서 가장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정체가 좋은 정체일 때 최악인 것은 민주정체이고 모든 정체가 나쁜 정체일 때 최선인 것은 민주정체라는 플라톤의 주장을 계승한 것이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의 전제를 중용이라고 보았다. 가능한 최선의 정체는 중산계급(middleclass)에 결정권이 있는 정체라고 보았다. 따라서 중간계급을 양성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중산계층이 강하면 극단적 민주정체나 극단적 과두정체가 참주정제로 발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에 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는다. 특히 생산을 중요하게 여겼다. 당시에 고리대금업을 강도 높게 비판한 서술이 있다. 고리대금업은 노동이나 생산이 아닌 불로소득에 해당한다고 파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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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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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gnez-Vous! Resistance! Engagement! 앵디녜부! 레지스탕스! 앙가주망! 이들는 불어인데, 풀이하자면 "분노하라! 저항하라! 참여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번역 상으로 레지스탕스와 앙가주망은 명사형이지만 맥락상 저렇게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최근 나는 레지스탕스 출신의, 현재는 93세인 프랑스의 노투사(老鬪士)인 스테판 에셀이라는 사람이 쓴 '분노하라'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레지스탕스란 독일이 프랑스를 강점(强占)하던 시기에 독일과 비시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을 가리킨다. 쉽게 말하면 프랑스의 독립운동가인 것이다. 하지만 레지스탕스는 넓은 의미로 파시즘, 나치즘 등으로 대변되는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을 뜻하기도 한다. 이처럼 글쓴이는 항상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는 편에 서서 분노하고 그를 통해 저항하고 참여하는 삶을 살아왔고, 현재의 젊은이들에게도 이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그는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선포된 세계인권선언문을 작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이 선언문의 의의는 인간의 인권을 세계인의 보편적인 인권으로 진일보 시킨 데에 있다. 그는 책에서 직접 자신의 노고나 고통을 피력하고 있지 않지만, 그의 '분노하는 삶' 그 삶 자체가 평탄치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국의 젊은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봤다. '스펙' 쌓기에만 연연하고, 쉽게 소비하며, 약자의 고통을 단순히 그들의 잘못으로만 생각하고, 경쟁으로만 삶을 채워 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청년들에게 스테판 에셀은 주위를 둘러보고 부조리한 현실이 있다면 분노하고 저항하고 참여하라고 한다. 침묵은 가장 큰 죄악이며 무관심은 최악을 태도라고 우리를 꼬집는다. 93세의 노인이, 인생의 황혼기이며, 외교관 출신으로 경제적인 삶도 궁핍하지 않은, 그냥 편하게 삶을 영위하다가 삶을 마무리하면 녹록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나도 지금을 살고 있는 청년으로서, 더욱 부단히 사회의 부조리들을 개선하려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토마스 제퍼슨의 격언처럼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기본권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닌 누군가의 처절한 투쟁의 결과이다. 또한 책에서 스테판 에셀은 저항의 방법론으로 평화적 봉기를 주장한다. 그는 학교 선배였던 사르트르의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이든, 폭력이란 일단 실패라는 사실을 수긍한다."라고 했던 말을 인용해가며, 비폭력적 방법을 주장한다. 넬슨 만델라나, 마틴 루터킹을 예로 든다. 어떤 형태로든 폭력은 잘못된 형태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목적이 훌륭하다면 수단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하나의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정의를 위한 폭력은 형용모순이 아닐까하는 생각이었다. 또한 글쓴이는 유태인임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의 인권을 옹호한다. 에셀은 자신이 가진 어떤 스탠스가 아닌 원리와 원칙으로 신념을 세워나갔다. 이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면서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들을 해내는 것이 삶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항상 불의에 저항하고 행동하고 분노했던 프랑스의 노투사 스테판 에셀은 90이 넘은 나이에도 정의를 위해 싸우며 행복하다. 그것은 그가 사랑하는 신념과 행동의 조화에서 나오는 행복일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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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 한 오라기의 혁명 - 자연농법 철학
후쿠오카 마사노부 지음, 최성현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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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노부는 책 처음에 짚 한 오라기로 혁명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그것의 방법으로 인간의 지혜와 인위를 모두 거부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도교, 불교, 그리고 유교 등 동양사상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자라게 된 영향 때문인지 이런 마사노부의 접근법은 낯설지 않았을 뿐더러 반가웠다. 글에서 읽은 마사노부의 이력을 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을 피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사노부도 어느 정도 세계대전 이후의 전후인식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사상적 흐름을 보면 양차 세계대전 이후 보통 사람들은 근대성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된다. 중세의 신성에 반한 하나의 이성적 조류와 함께 발생했던 ‘근대’라는 이름은 인류사 최악의 결과를 맞이함으로써 이것에 대한 대안으로 반이성적 사상의 조류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것은 다 서구중심적인 내용이고 이것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는 이런 근대성에 대한 회의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전후인식은 마사노부의 인식과 유불선(儒佛仙)으로 대표되는 동양사상과 일정부분 함께 공유하는 상(像)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공유할 수 있는 가치는 문제의 근본에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사노부는 무위(無爲)의 자연(自然)농법을 주장한다. 인위도 없고 또한 자연이란 낱말의 의미 그대로인 스스로 그러한 농법을 주장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이것이 나에게는 설득력이 있게 느껴진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현대를 생각했을 때 이것은 정말 ‘혁명’에 가까운 인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마사노부는 무위와 방임은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충격적인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마사노부의 주장을 잃으면서 한 가지 생각난 것은 나도 이미 현대에 젖어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대중사회 속 소비주의 세대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났고, 서구화 된 삶을 살며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냥 몇 가지 ‘-주의’들을 적었지만 이것들이 내 삶에 꽤나 구속력 있게 작용할 것 같다. 나는 이런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또한 나의 삶이, 사회가 많은 부분 앞에 나열한 인식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현대를 생각했을 때 이것은 정말 ‘혁명’에 가까운 인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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