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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평점 :
Indignez-Vous! Resistance! Engagement! 앵디녜부! 레지스탕스! 앙가주망! 이들는 불어인데, 풀이하자면 "분노하라! 저항하라! 참여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번역 상으로 레지스탕스와 앙가주망은 명사형이지만 맥락상 저렇게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최근 나는 레지스탕스 출신의, 현재는 93세인 프랑스의 노투사(老鬪士)인 스테판 에셀이라는 사람이 쓴 '분노하라'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레지스탕스란 독일이 프랑스를 강점(强占)하던 시기에 독일과 비시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을 가리킨다. 쉽게 말하면 프랑스의 독립운동가인 것이다. 하지만 레지스탕스는 넓은 의미로 파시즘, 나치즘 등으로 대변되는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을 뜻하기도 한다. 이처럼 글쓴이는 항상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는 편에 서서 분노하고 그를 통해 저항하고 참여하는 삶을 살아왔고, 현재의 젊은이들에게도 이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그는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선포된 세계인권선언문을 작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이 선언문의 의의는 인간의 인권을 세계인의 보편적인 인권으로 진일보 시킨 데에 있다. 그는 책에서 직접 자신의 노고나 고통을 피력하고 있지 않지만, 그의 '분노하는 삶' 그 삶 자체가 평탄치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국의 젊은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봤다. '스펙' 쌓기에만 연연하고, 쉽게 소비하며, 약자의 고통을 단순히 그들의 잘못으로만 생각하고, 경쟁으로만 삶을 채워 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청년들에게 스테판 에셀은 주위를 둘러보고 부조리한 현실이 있다면 분노하고 저항하고 참여하라고 한다. 침묵은 가장 큰 죄악이며 무관심은 최악을 태도라고 우리를 꼬집는다. 93세의 노인이, 인생의 황혼기이며, 외교관 출신으로 경제적인 삶도 궁핍하지 않은, 그냥 편하게 삶을 영위하다가 삶을 마무리하면 녹록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나도 지금을 살고 있는 청년으로서, 더욱 부단히 사회의 부조리들을 개선하려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토마스 제퍼슨의 격언처럼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기본권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닌 누군가의 처절한 투쟁의 결과이다. 또한 책에서 스테판 에셀은 저항의 방법론으로 평화적 봉기를 주장한다. 그는 학교 선배였던 사르트르의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이든, 폭력이란 일단 실패라는 사실을 수긍한다."라고 했던 말을 인용해가며, 비폭력적 방법을 주장한다. 넬슨 만델라나, 마틴 루터킹을 예로 든다. 어떤 형태로든 폭력은 잘못된 형태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목적이 훌륭하다면 수단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하나의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정의를 위한 폭력은 형용모순이 아닐까하는 생각이었다. 또한 글쓴이는 유태인임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의 인권을 옹호한다. 에셀은 자신이 가진 어떤 스탠스가 아닌 원리와 원칙으로 신념을 세워나갔다. 이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면서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들을 해내는 것이 삶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항상 불의에 저항하고 행동하고 분노했던 프랑스의 노투사 스테판 에셀은 90이 넘은 나이에도 정의를 위해 싸우며 행복하다. 그것은 그가 사랑하는 신념과 행동의 조화에서 나오는 행복일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