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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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사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의 정치철학 플라톤의 정치사상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철학적 지혜’와 다른 실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실천적 지혜’를 제시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개한다. 하지만 그는 현실적 측면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는 플라톤의 주지주의적 철학에 주의주의(voluntarism)적 철학을 덧붙였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과 함께 이상을 실현할 실천적 요소를 함께 고려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스승인 플라톤의 ‘국가’와는 다르게 이론만으로 책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현실 정치체제에의 여러 종류와 그 변형과 발생 과정과 전개 붕괴와 원인이나 보존방법까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에 대한 이해를 주목했다. 기존의 플라톤 철학이 이성을 두드러지게 강조한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에서 설득의 3가지 요소를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로 보는 바와 같이 그는 이성만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감정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핵심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는 감정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 사회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에서 구성되는 감정에 초점을 두었다. 이렇게 정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에 대해 설명하며 정치학의 개연성에 대해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적인 진리에 집착하지 않거나 전문성성이 없어도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조건들로 인해 정치학을 필연적인 법칙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우연의 학문으로 간주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극단적 통일성에 대해 비판한다. 이런 관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는 시대에 앞선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으로의 개인에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좋은 개인이 곧 좋은 시민, 좋은 통치자라고 여겼다. 좋은 사람이란 실천적 지혜인 ‘중용의 덕’을 지닌 사람을 의미한다. 결국 도덕적 성품이 좋은 지도자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통치자의 탁월함도, 개인의 탁월함도 모두 중용이라는 도덕적 성품에서 나오고 통치자는 과부족의 양극단을 경계하고 중용으로서 올바른 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켰던 근대 이후의 정치사상가들의 생각들과는 상이한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체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해왔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올바른 3가지의 정체인 왕정, 귀족정체, ‘혼합정체’(politeia)에 대해 언급하고 이것들이 왜곡된 왕정의 왜곡된 참주정, 귀족정이 왜곡된 과두정, 혼합정체가 왜곡된 민주정체를 구분했다. 이것은 최선의 정체를 찾기 위한 선결조건이었다. 세 가지 올바른 정체 가운데 신적 권위를 가진 정체가 왜곡된 것이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왕정이 왕의 탁월함에 근거하여 통치되지 않는다면 참주제가 최악이고 올바른 정체에서 가장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정체가 좋은 정체일 때 최악인 것은 민주정체이고 모든 정체가 나쁜 정체일 때 최선인 것은 민주정체라는 플라톤의 주장을 계승한 것이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의 전제를 중용이라고 보았다. 가능한 최선의 정체는 중산계급(middleclass)에 결정권이 있는 정체라고 보았다. 따라서 중간계급을 양성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중산계층이 강하면 극단적 민주정체나 극단적 과두정체가 참주정제로 발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에 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는다. 특히 생산을 중요하게 여겼다. 당시에 고리대금업을 강도 높게 비판한 서술이 있다. 고리대금업은 노동이나 생산이 아닌 불로소득에 해당한다고 파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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