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그의 단편집 작가 후기에 걸린 문구와 같은  "담배같은 소설" 아홉편.

그의 바램만큼 매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바램대로 아홉개피의 단편을 피워본다.

조금 쌀쌀한날, 나는 읽고,

글을 태우니 흰연기가 시선을 공기중으로 잡아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피어오르다 스며들며 비밀스럽게 사라지는 아홉편의 단편.  뭐 조금 그런 느낌.

담배를 피며 내뱉는 수다 뒤의 속내처럼, 천천히 가시는 담배의 뒷맛같은 궁금증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 아침부터 이상하고 뒤틀렸던날,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

책에 실린 단편중에 가장 뒷맛이 남는 단편은 [바람이 분다]이다.

   
 

LP의 추억따위를 읊조리는 인간들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LP의 음은 따뜻했다고, 바늘이 먼지를 긁을 대마다 내는 잡음이 정겨웠다고 말하는 인간들 말이다. 그런 이들은 잡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잡음에 묻어 있을 자신의 추억을 사랑하는 것이고, 추억을 사랑했던 자들은 추억이 없는 자들에 대해 폭력적이다. -p86. 바람이 분다.

 
   

막힌 사무실. 무미건조한 세계. 게임과 채팅, 밥벌이인 불법복제. 바쁘지도 않게, 힘들지도 않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늘어지고 반복되는 이 어두컴컴한 지하, 디지털 세계에 여자가 찾아온다.

   
  일자리를 구해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요. 워드를 조금 치고 컴퓨터  통신은 채팅만 잘해요.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몰라요. 잘 웃고 아주 가끔 우울해요. 종교도 없고 친구도 없어요. 야근 할수있지만 토요일은 일하고 싶지 않아요. 영화를 좋아하고 소설을 싫어해요. 바흐와 너바나를 좋아해요. 일터가 조용한 곳이면 좋겠어요. 호출기로 연락 주세요. p.78  
   

그리고 외로움도 없는 진공상태의 건조한 디지털 문장들 사이로 바람이 불고, 그들은 여행을 계획한다.

바람이 부는 아날로그의 세계는 냉정하고 선명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표범이 왜 킬리만자로 만년설 정상에까지 올라가서 죽는지 알것 같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사방이 꽉 막힌 지하실인데도 바람이 분다.

그녀가 오지 않더라도 그는 아마 떠나지 않을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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