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풍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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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태백산맥은 읽지 않았다. 아니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읽다가 포기했다. 대학시절, 한국인이라면, 특히 지성의 대학생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그 명작을 읽다가 포기했던 건 그 엄청난 방대함에 질려서였다. 등장인물부터 시작하여 배경과 흐름은 얄팍한 의식의 말만 대학생인 내게는 쫒아가기 버거운 것이었고 그 무거운 주제는 개인의 문제에만도 급급한  상황에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태백산맥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어느정도  약간의 미안함과 죄책감, 부끄러움으로도 남아있다. 하지만 당시의 버거움이 워낙 크게 남아있어서일까. 40대로 향하는 지금은 그 전집에 대한 도전 의식이 더 없어졌으니..그런 상황에서 조정래 작가의 단편 소설집을 보게 된것은 망설임속 의 선택이었다.
  엄청난 장편소설의 작가가 쓴 단편집이라..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안그래도 일상에 치어사는 중년의 남자에게 다시 또 지난 시대의 무거움을 얹어놓을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어졌기 때문이다. 읽고나서 그 무거움에 체할 것 같은 소설은 젊을때에나 소화가능한 법이다. 하지만 대작가의 단편들은 어떤 이야기일까 하는 흥미로 집어든 이 책은 너무도 쉽게 술술 읽혀졌다. 그리고 드는 탄식. 역시 조정래.... 대 작가는 그냥 대작가가 아니구나..이런 그의 힘을 왜 몰랐을까....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는 단편도 쓸수 있지만 단편을 쓰는 작가는 장편을 못쓴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긴 호흡과 무게를 풀수 있는 내공과 연륜은 이미 초창기 단편에서부터 싹을 보였던것 같다. 70년대 전후, 못먹고 못사는, 말그대로 미군의 초컬릿과 껌이나 받아먹는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지만 초라해도 비루하지는  않다.

  물론 그 처절한 상황속에 잘못된 사회 시스템(지금이나 그때나...)에 약하고 선한 이들의 몸부림은 너무도 눈물겨워 마음을 먹먹하게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 강한 울림이 남아있다. 읽고 나면 그 아픔들에 지쳐 고개를 돌리고 싶다기보다 이런 이들을 위해. 이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며 앞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은 작가 조정래의 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쉬지 않고 묵묵히 읽게 만드는 강한 서사들..가슴먹먹해지는 얘기들에 마지막 단편은 꿈인듯, 희망인듯 분위기가 다르다. 결말의 모호성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이 시대 박소령같은 이들이 부디 많아지기를 기원해본다. 그리고 다시금 용기를 가지고 조정래 작가의 장편소설들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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