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날 회사생활중에 "유적답사회"란 동호회에 가입, 1년여정도 활동했다. 전국의 유적, 사찰등을 당일, 또는 1박 2일로 다니며 공부하는 동호회였는데 공부보다는 아무래도 사교및 오락으로 흐른 면이 없지 않지만 ^^ 무대가 워낙 좋았었기에 남는게 있는것 같다. 여러곳을 다녔지만 특히 선운사와 내소사가 뇌리에 남는다. 선운사는 이른 봄,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후두둑 떨어지는 동백꽃들 속에서 낡고 오래된 역사, 그 자체를 마주치게 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내소사 역시 긴 전나무숲을 지나 나타나는 신비로운 정경으로 함부로 떠들수 없게 만드는 기품과 분위기가 있었다. 그때는 어린 나이라 그저 분위기만 즐기며 기념사진 찍고 휙 둘러보고 나오는게 대부분이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그 느낌이 아직도 선명한 한장의 사진처럼 뇌리에 남아 그곳을 그리워하게 만드는것, 이것이 감동의 사찰이 가지는 힘일런가. 다시 간다면 이제는 뭘좀 알고 찬찬히 흝어보며 음미하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이책은 알고 보려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용 사찰 기행책이다. 우리나라 곳곳 이름난 27곳의 사찰을 작가는 혼자. 또는 가족과 다니며 쓴 기행의 형식으로 소개한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상당히 박식하고 성실한 학자라는 느낌이 들만큼 내용이 실하다.그 스물일곱 어느 사찰을 간다하더라도 이책만 있으면 지리부터 역사, 건축의 의미등 모든것을 알 수 있겠다. 사찰과 관련된 각종 설화와 일화, 그리고 그 사찰을 찾아갈수 있는 교통편과 좀더 편리한 여행을 위한각종 tip까지...어떻게 보면 정보가 너무나 많고 실해서 예전 학창시절 배웠던 수학의 정석과 성문영어가 떠오르기까지 한다. 아는걸 모두 알려주려는 작가의 정신이 대단하고 고맙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차라리 책을 두세권으로 나누어서 칼라사진을 많이 넣고 활자를 크게 해 이미지와 감성면을 보강했다면 요즘 트렌드에 좀더 부합, 더 많은 인기를 끌수 있을텐데 라는 점이다. 어찌보면 그런 요즘 세태에 맞추지 않고 자신이 아는 모든걸 알려주려는 정직함과 학자로서의 자존심마저 느낄 수 있다. 꽉꽉 찬 내용에 비해 술술 읽혀지는 재미에 많은 정보가 버겁지 않다. 어느 사찰을 가게 되든 이책 한권이면 절내 나무기둥의 역사까지 알수 있을것 같아 맘이 든든. 곧 떠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