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심리학책이 한권 나왔다. 제대로 된? 적합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요 몇년 나오는 심리학책들을 살펴봤을때 서로 비슷비슷한 내용들을 사례만 조금씩 바꿔 출판하는 심리학자들의 얄팍한 요령에 화도 났던 경험이 있던적을 볼때 이번 하지현 교수의 새책 " 도시 심리학"에는 간만에 답답한 가슴을 뚫어주는 똘똘한 심리학 서적이란 칭찬을 아낌없이 줄 수 있다. 현대 사회..특히 한국 도시 사회의 특징을 하나 하나 짚어 그 내재된 심리현상을 풀어주는 그의 내공은 독자인 내가 절로 무릎을 치게 할만큼 시원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스타벅스나 커피빈의 커피 가격이 밥값보다 비쌈에도 왜 성황인지에 대해 각종 신문과 매스미디어들이 개인의 특성과 자율의 중시, 그리고 뉴요커에 대한 동경이라는 비슷비슷한 분석을 내놓은것을 다들 한두번씩은 읽고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교수는 그 성황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만의 이면인 커피 믹스의 절대적 시장위치를 함께 분석한다. 비싼 맞춤형 커피와 싸구려 커피 믹스의 위치는 절대 갈등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새롭고 놀랍다. 오히려 하나의 소비가 증가할때 나머지 하나 역시 따라 증가한다는 것은 곧 "개인성"과 "우리성"이란 상반된 두 욕구를 동시에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책의 다른 사례들에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현대인이자 도시인으로서 누리고 싶어하는 자유.개인의 독창성. 하지만 또한 조직인이자 한국인이기에 벗어나면 불안한 우리성(단체주의.무리주의). 이 두 가지 인간의 욕망이 얽히고 섥혀서 때론 너무나 모순되는 결합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을 날카롭고 센스있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역시 단체생활을 하느라 그렇겠지만 한국 회식문화의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장단점을 느끼던 폭탄주 돌림. 노래방. 와인공부 열풍 등등을 묘사한 장면들은 어찌나 내가 경험한 것들과 똑같은지..때로 웃음을 참으며 그 심리를 읽다보면 "아..나 역시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겠다고 헉헉거리며 몰려다니는 도시인이었구나.." 고개를 절로 끄덕거리게 된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예전 회사에 갑자기 임시직으로 한 올드미스 여직원이 파견을 받아 함께 근무하게 된일이 있었다. 그런데 나이는 많지만 가장 박봉일 그녀가 사무실의 커피믹스들은 입맛에 맞지 않다며 늘 비싼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매일 사서 들고다니며 마시는 모습이 좀 한심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짖궂은 직원들은 그녀를 된장녀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그녀 나름대로 자신의 위치가 낮을수 밖에 없는 새로운 환경에서 주눅들지 않고 개성과 고유성을 강조하기 위한 몸짓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건 이 책으로 얻은 이해덕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