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관한 책은 여행지의 정보보다는 여행자의 지식과 식견을 읽는 재미가 있다. 특히 이 책은 더욱더 그렇다. 김경한 작가는 음악, 연극 등 예술에 식견이 넓고, 많은 독서량을 가진 분인 것 같다. 작가는 리버풀에서 비틀즈, 코츠월드에서 모리스의 책, 더블린에서 사무엘 베케트를 떠올린다. 예술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찾은 건지 방문한 여행지마다 저절로 유명한 예술 작품이 생각난 건지 모를 정도이다.
독자인 나도 이 책을 보면서 더블린을 가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을 보고 싶고, 금각사를 가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금각사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나도 언제쯤이면 작가처럼 남한산성에서 인조 왕을 떠올리고, 월정사에서 법정 스님을 생각하고, 서도역에서 최명희 소설가의 혼불을 떠올리게 될까?
작가는 일본 교토에서 철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를 떠올렸고 교토 학파까지 생각을 확장했다. 나는 지금부터 20년 전, 작가처럼 철학자의 길을 혼자 걸었던 기억이 났다. 그 당시 나는 신입사원이었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여행이기도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나로부터 알을 깨고 나와 편안해졌는지 생각하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