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가와 철학 책
이 책은 김형석 교수님 독서 이력의 기록이다. 교수님의 독서 역사를 엿보는 느낌이었다. 한 평생 살아오면서 가르침과 방향이 되었던 책들에 대해 간략한 설명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독자들에게 꼭 읽었으면 하는 책들도 추천해 준다. 이 책에 소개된 책은 교수님 일생 동안 읽었던 책의 아주 일부분 텐데.. 철학이라는 무한한 학문을 연구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나 보다.
철학자로서 철학에 접근하려면 어떤 순서로 철학자와 철학 책을 연구하는 것이 좋은지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나에게 그동안 왜 철학 책이 어려웠는지 금방 이해가 되었다. 한때 철학자를 꿈꿨던 고등학교 시절 집안 두꺼운 문고집 중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틈나는 대로 읽곤 했는데 이제 생각해 보면 시간 낭비였다.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결국 공대를 나와 연구원으로 지금까지 나름 재미있게 일하며 살아왔으니 후회는 없다.
김 교수 님은 올해 101세이니 학창 시절과 젊은 시기를 일제강점기에서 보냈고 바로 한국 전쟁을 겪었다. 조선 시대로 치면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한꺼번에 치른 셈인데 그 시절에도 독서량과 독서에 대한 열정은 대단해 보인다. 교수님도 어릴 적 문학책에 나오는 성적 표현을 호기심에 찾아보고 가슴 설렜다는데 동질감도 느꼈다. 나도 학창 시절 때 최인호, 이문열 소설에 나오는 그런 장면만 넘겨가며 찾아보곤 했으니.. 엄청난 동영상이 난무하는 이 시대를 사는 청소년들에게는 기가 찰 노릇일 것이다.
나는 매년 읽었던 책을 에버노트에 기록해둔다. 보통 책 한 권을 읽는 시간이 영화 한 편보다 두 배 정도 걸린다. 퇴직한 올해 이 책을 읽음으로써 60권을 읽었다. 나는 영화를 안 보기도 하고 책 읽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 이 정도인데 작년까지 직장 생활할 때는 1년에 30권 읽기도 쉽지는 않았다. 책 내용 중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김 교수님의 아쉬움 섞인 문장들이 많이 보인다. 또한 탁월한 학자나 사상가도 배출하지 못하고 정신적인 빈곤에 있다는 말에 동감한다.
책은 이 구절로 끝을 맺는다.
' 책을 읽는 개인이 지도자가 되며, 독서하는 민족이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