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쌉쌀하고 고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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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na - Ultimate Santana
산타나 (Santana)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7년 10월
16,000원 → 13,400원(16%할인) / 마일리지 140원(1% 적립)
2010년 02월 1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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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Ghost Tropic
Secretly Canadian / 2005년 1월
19,500원 → 16,900원(13%할인) / 마일리지 170원(1% 적립)
2010년 02월 1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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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ien Rice - O & B-side
데미안 라이스 (Damien Rice) 노래 / 워너뮤직(WEA) / 2005년 2월
16,000원 → 13,400원(16%할인) / 마일리지 140원(1% 적립)
2010년 02월 1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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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감독
에비사와 야스히사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사실 야구를 무지하게 싫어하던 내가 서평단에 신청한 건 ‘그래 어디 한번 나에게 야구의 재미를 납득시켜봐’라는 다소 치졸한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어릴 적에 리틀 어린이 야구단에도 가입했었던 기억도 있지만(아마도 선물에 현혹되었을 듯),하여간 나는 누가 뭐래도 야구가 재미없었고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도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야구를 왜 좋아하냐는 나의 질문에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어서.라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댔고, 또 누군가는 야구는 머리로 하는 게임이라며 야구가 얼마나 지적인 게임인지를 장시간 설파해서 나를 질리게 했으며 어떤 이는 단순히 ‘치어걸’때문에..라는 한심한?대답을 하기도 했다.
야구관객의 광기?(축구관객의 광기는 이해하면서)가 싫었고, 소주팩을 먹고 얼굴이 벌개진 채 응원하는 아저씨들도 싫었고 응원가도 마음에 안 들었고 야구선수의 뚱뚱한 몸매가 싫었으며(이쯤 되면 거의 증오?)
어쩔 수 없이 따라갔던 야구장의 풍경엔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야구장에서 파는 간식을 먹고 나면(유일한 즐거움) 금방 찾아오는 지루함의 연속에 ‘대체 왜 야구는 9회까지나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미친 듯이 되풀이해서 했던 것 같다. 암튼 그만큼 야구(의 재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꽤 두터웠다. (인정!)

이 심심한 제목 ‘야구감독’이라니. 어라 그런데 이상하다. 실화인지 픽션인지 헷갈리는 시작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첫 장을 읽기 전 작가의 방어적인 코멘트-이 이야기의 등장하는 인물과 조직은 전부 허구이며 현존하는, 혹은 과거의 인물 및 조직과 비슷해 보이는 것들 또한 완전한 우연이다- 가 소설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주석과 묘한 경계선을 그으면서 아아 이 작가 참 영리하면서(뻔뻔하고) 책 속에 담긴 야구에 대한 놀라운 지식과 애정이 담긴 식견이 경탄스럽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리 수월치 않았다. 내용이 재미없어서 술술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꽤 많이 등장하는 주요이름들과 (게다가 일본사람들 이름은 정말 헷갈린다)묘사되어있는 야구의, 야구장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리며 내 딴엔 일일히 이해하고 넘어가느라 다른 책을 읽는 것보단 곱절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그러나 그 과정은 사실 재미있었음을 고백하는 바 - 머릿 속에서 야구선수 9명과 감독과 코치가 뛰어 놀게 될 줄이야!
이 책의 재미는 그러니깐 지옥에서 돌아온, 딸랑 9명의 선수의 극한을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감정의 에네르기를 발산하는.. 그런 것에 있지 않다. (사실 후보 한 명 없이 9명이서 전게임 출장을 하는 게 말이 되냐 말이다)
난 네가 원하는 일이라면 - 무조건 다 해 줄 수 있는 단순무식?한 게 야구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정말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대중적인 작품들이 어떤 전문적인 세계를 묘사함에 있어서의 목적은 그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 세계의 진정성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구에 대한 애정과 그 애정이 밑바탕된 놀라운 식견, 그리고 그것을 인간사에 녹여내어 직조하는 작가의 능력이 없었더라면 <야구감독>이 보여주는 야구와 인간의 세계에 쉽게 빠져들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의 문체는 의외로 건조하고 덤덤하다. 거리감을 둔 문체는 객관적으로 그 풍경을 즐길 수 있게 해주며 야구가 얼마나 멋진 운동이며 재미난 것인지 뜨겁게 말하지 않는데도 감동을 준다. 약간의 심드렁한 태도 밑에 숨겨진 열정에는 유머러스함과 여유가 깔려있다. 야구라는 ‘소우주’를 보여주는 작가의 노련함과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삶에 대한 긍정’의 통찰이 배어나오는 작가의 시선은 무척이나 담백하다.
긴장감에 책을 잡은 손을 몇 번이나 오므렸다 폈다 하게 하는 짜릿한 순간들을 침 튀기며 소개하고 싶지만,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참아야 할 것 같다. 단 하나 말한다면, 정신 못 차리던 맹물팀 ‘엔젤스’가 개막전에서 자이언츠에게 2연승을 거뒀을 때는 (젠장)울 뻔했다. 승리의감동보다는 그 순간을 묘사하는 작가의 시선이 좋았다. 감독 히로오코와 엔젤스가 몇 번의 기쁨과 반복되는 시련을 어떻게 통과해 나가는지의 과정이 무척이나 즐거울 것이라고 장담한다. 야구를 좋아한다면 기쁨,즐거움 두배겠지만, 야구에 심드렁한 상태라도 (조직)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상황과 이야기들에서도 충분히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던 <야구감독>이라는 제목은 책장을 덮으면서 묵직허니 새롭게 다가온다. 왠지 섭섭함마저 느껴져서 쉽게 책장을 덮지 못하고 마지막 몇 장을 되풀이했다. 책을 읽고 난 후 그 속에 쓰여져 있던 말처럼 ‘야구는 결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다’라는 것을..그래, 인정하겠다. (원래 편견이나 선입견은 잘 모르니까 생기는 거다.라는 수줍은 항변) 야구를 싫어했던 증오?의 즐거움은 사라졌다. 앞으로도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될지 확실히 장담할 순 없지만.(사람이 또 그렇게 쉽게 변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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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19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프로야구 개막 카운트다운에 해가 뜨고 지는 2월입니다!
야구 관련 도서를 즐겨 읽으시는 분들을 찾아다니다 들어왔습니다.:)
찌질하고 부조리한 삶은 이제 모두 삼진 아웃! 국내최초의 문인야구단 구인회에서 우익수로 뛰고 있는 박상 작가가 야구장편소설 <말이 되냐>로 야구무한애정선언을 시도합니다.
야구 소설도 읽고, 야구 경기도 보고, 소설가가 시구까지 하는 야빠 대동단결 이벤트에 참여해 보세요.
인터넷 교보와 알라딘, 인터파크, yes24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증오가 사라지셨다니..^^;; 다행입니다.
 
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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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이런 이야기, 뉴스를 접할 때면 항상 생각하곤 한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범죄를 저지르기 전, 그 혹은 그녀가 흉기를 들기 전, 그런 생각을 하기 전, 다른 계기가 있어 그들을 막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가 그 일을 막을 수만 있다면...나 혼자 수없이 필름을 되돌리곤 한다.
사건이 마무리되어도 범인이 잡혀도 먹먹하게 남아있는 마음.  이런 사건은 비일비재할 뿐이지만
맞닥뜨리게 될 때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하고 몇 번을 생각하고야 만다..

이 이야기는 생계형 범죄, 하지만 용서받을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고야 만 한 살인자의 남겨진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단지 이야기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고통이 담겨져 있는 한 인간의 전투 같은 삶이다.
그러나 작가는 쓰디 쓴 고통을 절절하게 내뱉으며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극히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로 살인범 형을 둔 동생이 극복할 수 없는 높은 벽들과 마주하며 어떻게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고립되어 가는지, 작은 희망과 커다란 절망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어떻게 한 인간으로서 바로 서고자 하는지 차분하게 담아낸다.
동생 나오키가 노래실력을 인정받고 혹여나 데뷔할지도 모르는 대목에선 진심으로 기뻤지만 우리 모두 인생이,삶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풀리진 않을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후 이야기는 젊은이의 양지처럼, 청춘의 덫처럼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누군가를 이용해 일어서려는 비루한 욕망을 담아낸다. 사실 이 부분에선 작가가 대체 뭘 말하려고 이러나 싶기도 했지만, 드라마틱함은 ‘살인자 형을 둔 동생’ 거기까지였던 걸 주인공 나오키도 깨닫고 난 시점부터 진짜 냉정한 현실은 시작된다.
범죄는 '사회성의 죽음'이라는 명쾌한 정의 앞에 나오키는 할 말을 잃는다. 처벌은 단지 형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었다. 범죄에 대한 이리도 지독한 경고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오키의 절망과 고통은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사실 감방에 있는 형과 아우의 눈물나는 감동신파스토리가 아닐까 하는 오해를 했지만 범죄와 사회,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아우르는 폭넓은 시선에 조금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했던 ‘편지’에 어쩌면 정답은 없을 지도 모른다. 허나 얄팍한 동정에 기대지 않으면서 인간을 들여다보려 했던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고 그것은 한 두줄의 간단한 뉴스에서 알아차릴 수 없고 상당부분 우리가 많이 놓쳤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어쩌면 애써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이면.

마지막에 나오키는 과연 형 쯔요시를 받아들인 건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형 앞에서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장면에서 그가 얼마나 형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 편지에 전하지 못했던 말들을.

구원과 용서는 인간이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쉽게 비난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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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홍은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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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의 무게

지은이가 자전거를 타고 떠날 때의 짐무게는 40킬로그램에 육박했다고 한다. 짐싸기로 보는 성격테스트에 의해 과단성 없는 성격으로 판명되었다는 은택씨, 그의 대단한 짐 리스트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나를 보는 것 같아 손뼉을 칠 뻔했다. 12일 짐싸기에도 얼마나 많은 짐들을 가져가곤 했었는지, 구겨넣고, 쑤셔박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도무지 떼놓지 못하는 것들, 두고 가믄 아쉬움 때문에 잠이 안 올 것들, 분명, 필요할 것만 같은 것들 등등이 짐싸기의 어려움 아니 여행의 어려움을 배가시켜준다.

지은이는 그것을 삶의 무게에 비유하고 있다. 저마다 짊어지고 사는 삶의 무게. 집착이 많을수록 무거운 삶을 살며, 짐의 무게는 그 사람 집착의 무게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아예 떠나지 못하는 그 무겁디 무거운 집착의 무게.

공감을 하며 희희낙락하다 금새 허탈하고 무거운 마음에 젖는다. 그래서 떠나지 못했구나.

이놈의 짐, 아니 집착 때문에!!!

지은이는 그 사실을 새삼 깨달으면서 무겁지만 힘들게 떠나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이 짐들의 상당부분은 주변인들의 충고로 생각보다 빨리 떨어져 나가게 된다)

여행, 어딘가로 떠난다는 기대와 희망보다는 지금 있는 이 곳을 떠난다는 압박감에 항상 짐짓 포기하곤 했던 내게는 너무 버거운 행위였다. 그러면서도 여행이란 무언가를 잊거나 떨쳐버리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어야 하며, 언젠가 순수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을 때가 되면 뜨리라 아니 떠나리라 고 마음속으로 호기를 부리곤 했었다.

그의 여행, 그것도 자전거 여행, 그것도 아메리카 횡단 자전거여행은 게으른데다 짐싸기에 매번 실패하며 집착덩어리인 나에게 아주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활자로나마 그의 여행을 엿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켰다.

 

2. 여행은 단지 그의 기록, 수치뿐만이 아니다.

정확히는 80일간의 여행(최근까지도 78일로 착각했었다고 한다),

6400km,

펑크 11,

추격해온 개 100마리,

열개 주,

대륙분기선 열네번 통과,

페달은 한 150만번쯤?

몸무게 3kg 감량

등등

 

대략 기억나는 이 기록들은 입이 쩍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수치이기도 하고 분투를 느낄 수 있는 처절한 에피소드들이 연상되면서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놀라운 흔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얻음은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은 수치를 해낸 몸의 발견과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가운데 또 다른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3. 삶을 유희하는 자의 태도, 호모 루덴스

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던 지은이 은택씨, 살아있음을 실감하기 위해서 놀고 싶다는 희망, 놀면서 뜻하지 않게 자신을 알게 되었다는 지은이의 말은 내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달리면서 세상과 나의 간극을 좁히고 끊임없는 충돌과 화해의 접점을 찾는 그의 모험과 도전은 단 한번도 제대로 떠나 본적이 없었던 나 자신에 더할 나위 없는 매혹과 자극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도 언젠가는이라는 희망을 감히 품게 되었고(비록 아메리카 횡단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강 끝에서 끝을 내달리고 싶다는 욕망으로 며칠 동안 미친 듯이 자전거 가격비교검색을 하는 즉흥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마음껏 달리고 또 달리면서 놀았던 은택씨에게 질투와 부러움은 곧 즐거운 자극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세상을 긍정하는 그의 태도와  군더더기없는 시선, 유쾌한 유머로 인해 더욱 즐거운 책읽기가 되었음을 역시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한 지나가고 머무르면서 찍은 귀한 사진들과 길 가운데 만났던 이들의 짧지만 굵은 삶의 한자락을 엿볼 수 있었던 것도 내내 큰 기쁨이었다. (세심하게 신경쓴 듯한 책속 디자인과 배치들은 그의 자전거여행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고 함께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은택씨, 계속 달려요!!!

 

* 요가선생인 라이더 앨리슨이 남긴 쪽지 중

굴복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또한 그것이 힘들면 그들을 미워하거나 경멸하기에 앞서 피하라는 충고.

그리고 상상의 것으로 스스로 괴롭히지 말라는 이야기.

언제나 타인과 마주치고 부딪혀야 하는 우리에게 쌉쌀한 알약 같은 충고였으며 지은이 못지 않게 짜증범벅된 상상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힌 내게도 필요한 전언.이었다.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왠지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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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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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에서도 빈번히 언급되곤 했던 에셔의 그림은 <러시라이프>에서 적절히 인용됨을 넘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거대한 축을 담당한다.

알라딘에서 보내준 소중한 책은 하루 이틀 만에 쉼 없이 읽어내려 갔건만 책을 읽고 난 후 에셔의 그림들을 몇날 몇일 몇번이고 들여다보게 되었고 머리에 쥐가 날 것만 같았다. 끊임없는 반복, 도무지 끊어질 것 같지 않은 연쇄고리들, 뫼비우스의 띠 같은 모호함의 연속등의 이미지들이 산뜻하게 읽었던 책에 비해 계속해서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것은 삶이라는 것의 속성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의 불가해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새삼 자각했기 때문일거다.

 

이야기는 5명을 중심으로 마치 회전목마가 회전하는 듯 말에 탄 인물들을 차례대로 보여준다. 물론 그 순서가 차례대로 되돌아 오는 것도 아니다. 어느 순간 인물들은 말을 바꿔 타고 있을 수도 있고, 돌고 도는 회전목마가 현재의 회전목마가 아니라 과거의 그것일 수도 있다. 회전목마의 속도는 급격히 빨라졌다 늦춰지기도 하며 회전 속에서도 오르락내리락 하며 끊임없이 운동을 하는 말들이 있다. 인물이 회전목마에서 하나씩 내려올 때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조금씩 짐작하게 될 뿐이다.

툭툭 내던져지듯이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맥락을 쉽게 짐작치 못하더라도 처음부터 빨려 들어가게 만들었고 부정과 불안 속에서 끝내 긍정을 건져 올리는 유머와 낙관성, 무엇보다도 잘 짜여진 이야기의 쾌감이 있었다.

 

돈에 팔려와 부의 풍만함을 자랑하는 거부 도다와 마주앉은 화가 시나코, 살인모의를 하는 교코, 회사에서 짤리고 번번히 재취업에 실패하는 실업자 도요타,대담한 빈집털이 구로사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지닌 가와라자키등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듯 하면서 어떤 사슬에 의해서인지,운명에 의해서인지 서로의 삶에 본의 아니게 끼어들기 시작한다. 제각각 전혀 다른 인물들이지만 연쇄살인,신흥종교, 실업자문제등 일본의 현재속에서 캐릭터들은 생생하고 재기발랄하게 표현되어진다.

 

사실 시공간을 이리저리 섞고 재배치하는 구성에 대해 새삼스럽게 새롭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의 재배치보다는 그 사이에 있는 미묘한 틈들이 이 구성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살짝 비껴나는 타이밍, 어긋나는 의도로 의한 작은 균열들, 그것에 의한 파장들,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작은 설정들-역전의 백인여성과 등장인물의 시선을 한번씩은 잡아끄는 현수막,마치 누군가 환생한듯한 늙은 개, 빨간축구모자, 에셔 전시회,돌고 도는 복권등- 을 보여주는 작가의 솜씨는 꽤나 노련하다.

 

마지막 장, 순식간에 휘몰아치는 이야기 끝의 주제는 무척 소박하다. 나와 당신이 생각하는 풍요로운 삶, 어떤 이에게는 돈으로는 무엇이든 살수 있는 풍족한 삶이겠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 있는 삶일 것이다. 또 누군가는 낄낄거리며 주정뱅이의 자포자기 인생이라며 그까이꺼,하며 쾌활한 웃음을 날릴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조율할 줄 아는 작가의 작품을 보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읽는 내내 즐거웠고 말미에 도착해 다시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 조각조각들을 맞추는 기분도 쏠쏠했다. 그의 다른 작품을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얼마만인가.

우리의 지루하고 평안치 않은 삶 속에 작은 틈과 미묘한 어긋남으로 인해 어떤 특별한 무엇인가가 피어난다면 그것은 단지 행운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이름이길 바란다. 그래서 매일매일 ‘잇츠 올롸잇'하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것 아니겠는가.

 

* 가장 흥미롭고 읽는 순간 내내 즐거웠던 인물은 빈집털이 구로사와였다. 오래된 친구와의 추억담인 스탠리큐브릭 얘기에 낄낄거렸고 그가 교코에게 끈질기게 전화를 했었던 예비상담자였다는 걸 눈치채게 되었을 땐 자못 짜릿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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