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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홍은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삶의 무게
지은이가 자전거를 타고 떠날 때의 짐무게는 40킬로그램에 육박했다고 한다. 짐싸기로 보는 성격테스트에 의해 과단성 없는 성격으로 판명되었다는 은택씨, 그의 대단한 짐 리스트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나를 보는 것 같아 손뼉을 칠 뻔했다. 1박2일 짐싸기에도 얼마나 많은 짐들을 가져가곤 했었는지, 구겨넣고, 쑤셔박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도무지 떼놓지 못하는 것들, 두고 가믄 아쉬움 때문에 잠이 안 올 것들, 분명, 필요할 것만 같은 것들 등등이 짐싸기의 어려움 아니 여행의 어려움을 배가시켜준다.
지은이는 그것을 삶의 무게에 비유하고 있다. 저마다 짊어지고 사는 삶의 무게. 집착이 많을수록 무거운 삶을 살며, 짐의 무게는 그 사람 집착의 무게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아예 떠나지 못하는 그 무겁디 무거운 집착의 무게.
공감을 하며 희희낙락하다 금새 허탈하고 무거운 마음에 젖는다. 그래서 떠나지 못했구나.
이놈의 짐, 아니 집착 때문에!!!
지은이는 그 사실을 새삼 깨달으면서 무겁지만 힘들게 떠나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이 짐들의 상당부분은 주변인들의 충고로 생각보다 빨리 떨어져 나가게 된다)
여행, 어딘가로 떠난다는 기대와 희망보다는 지금 있는 이 곳을 떠난다는 압박감에 항상 짐짓 포기하곤 했던 내게는 너무 버거운 행위였다. 그러면서도 여행이란 무언가를 잊거나 떨쳐버리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어야 하며, 언젠가 순수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을 때가 되면 뜨리라 아니 떠나리라 고 마음속으로 호기를 부리곤 했었다.
그의 여행, 그것도 자전거 여행, 그것도 아메리카 횡단 자전거여행은 게으른데다 짐싸기에 매번 실패하며 집착덩어리인 나에게 아주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활자로나마 그의 여행을 엿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켰다.
2. 여행은 단지 그의 기록, 수치뿐만이 아니다.
정확히는 80일간의 여행(최근까지도 78일로 착각했었다고 한다),
6400km,
펑크 11번,
추격해온 개 100마리,
열개 주,
대륙분기선 열네번 통과,
페달은 한 150만번쯤?
몸무게 3kg 감량
등등
대략 기억나는 이 기록들은 입이 쩍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수치이기도 하고 분투를 느낄 수 있는 처절한 에피소드들이 연상되면서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놀라운 흔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얻음’은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은 수치를 해낸 ‘몸의 발견’과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가운데 또 다른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3. 삶을 유희하는 자의 태도, 호모 루덴스
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던 지은이 은택씨, 살아있음을 실감하기 위해서 놀고 싶다는 희망, 놀면서 뜻하지 않게 자신을 알게 되었다는 지은이의 말은 내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달리면서 세상과 나의 간극을 좁히고 끊임없는 충돌과 화해의 접점을 찾는 그의 모험과 도전은 단 한번도 제대로 떠나 본적이 없었던 나 자신에 더할 나위 없는 매혹과 자극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도 ‘언젠가는’이라는 희망을 감히 품게 되었고(비록 아메리카 횡단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강 끝에서 끝을 내달리고 싶다는 욕망으로 며칠 동안 미친 듯이 자전거 가격비교검색을 하는 즉흥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마음껏 달리고 또 달리면서 놀았던 은택씨에게 질투와 부러움은 곧 즐거운 자극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세상을 긍정하는 그의 태도와 군더더기없는 시선, 유쾌한 유머로 인해 더욱 즐거운 책읽기가 되었음을 역시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한 지나가고 머무르면서 찍은 귀한 사진들과 길 가운데 만났던 이들의 짧지만 굵은 삶의 한자락을 엿볼 수 있었던 것도 내내 큰 기쁨이었다. (세심하게 신경쓴 듯한 책속 디자인과 배치들은 그의 자전거여행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고 함께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은택씨, 계속 달려요!!!
* 요가선생인 라이더 앨리슨이 남긴 쪽지 중
‘굴복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또한 ‘그것이 힘들면 그들을 미워하거나 경멸하기에 앞서 피하라’는 충고.
그리고 ‘상상의 것으로 스스로 괴롭히지 말라’는 이야기.
언제나 타인과 마주치고 부딪혀야 하는 우리에게 쌉쌀한 알약 같은 충고였으며 지은이 못지 않게 짜증범벅된 상상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힌 내게도 필요한 전언.이었다.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왠지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