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에서도 빈번히 언급되곤 했던 에셔의 그림은 <러시라이프>에서 적절히 인용됨을 넘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거대한 축을 담당한다.
알라딘에서 보내준 소중한 책은 하루 이틀 만에 쉼 없이 읽어내려 갔건만 책을 읽고 난 후 에셔의 그림들을 몇날 몇일 몇번이고 들여다보게 되었고 머리에 쥐가 날 것만 같았다. 끊임없는 반복, 도무지 끊어질 것 같지 않은 연쇄고리들, 뫼비우스의 띠 같은 모호함의 연속등의 이미지들이 산뜻하게 읽었던 책에 비해 계속해서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것은 삶이라는 것의 속성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의 불가해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새삼 자각했기 때문일거다.
이야기는 5명을 중심으로 마치 회전목마가 회전하는 듯 말에 탄 인물들을 차례대로 보여준다. 물론 그 순서가 차례대로 되돌아 오는 것도 아니다. 어느 순간 인물들은 말을 바꿔 타고 있을 수도 있고, 돌고 도는 회전목마가 현재의 회전목마가 아니라 과거의 그것일 수도 있다. 회전목마의 속도는 급격히 빨라졌다 늦춰지기도 하며 회전 속에서도 오르락내리락 하며 끊임없이 운동을 하는 말들이 있다. 인물이 회전목마에서 하나씩 내려올 때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조금씩 짐작하게 될 뿐이다.
툭툭 내던져지듯이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맥락을 쉽게 짐작치 못하더라도 처음부터 빨려 들어가게 만들었고 부정과 불안 속에서 끝내 긍정을 건져 올리는 유머와 낙관성, 무엇보다도 잘 짜여진 이야기의 쾌감이 있었다.
돈에 팔려와 부의 풍만함을 자랑하는 거부 도다와 마주앉은 화가 시나코, 살인모의를 하는 교코, 회사에서 짤리고 번번히 재취업에 실패하는 실업자 도요타,대담한 빈집털이 구로사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지닌 가와라자키등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듯 하면서 어떤 사슬에 의해서인지,운명에 의해서인지 서로의 삶에 본의 아니게 끼어들기 시작한다. 제각각 전혀 다른 인물들이지만 연쇄살인,신흥종교, 실업자문제등 일본의 ‘현재’속에서 캐릭터들은 생생하고 재기발랄하게 표현되어진다.
사실 시공간을 이리저리 섞고 재배치하는 구성에 대해 새삼스럽게 새롭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의 재배치보다는 그 사이에 있는 미묘한 틈들이 이 구성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살짝 비껴나는 타이밍, 어긋나는 의도로 의한 작은 균열들, 그것에 의한 파장들,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작은 설정들-역전의 백인여성과 등장인물의 시선을 한번씩은 잡아끄는 현수막,마치 누군가 환생한듯한 늙은 개, 빨간축구모자, 에셔 전시회,돌고 도는 복권등- 을 보여주는 작가의 솜씨는 꽤나 노련하다.
마지막 장, 순식간에 휘몰아치는 이야기 끝의 주제는 무척 소박하다. 나와 당신이 생각하는 풍요로운 삶, 어떤 이에게는 돈으로는 무엇이든 살수 있는 풍족한 삶이겠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 있는 삶일 것이다. 또 누군가는 낄낄거리며 주정뱅이의 자포자기 인생이라며 그까이꺼,하며 쾌활한 웃음을 날릴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조율할 줄 아는 작가의 작품을 보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읽는 내내 즐거웠고 말미에 도착해 다시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 조각조각들을 맞추는 기분도 쏠쏠했다. 그의 다른 작품을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얼마만인가.
우리의 지루하고 평안치 않은 삶 속에 작은 틈과 미묘한 어긋남으로 인해 어떤 특별한 무엇인가가 피어난다면 그것은 단지 ‘행운’이 아니라 ‘희망’ 이라는 이름이길 바란다. 그래서 매일매일 ‘잇츠 올롸잇'하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것 아니겠는가.
* 가장 흥미롭고 읽는 순간 내내 즐거웠던 인물은 빈집털이 구로사와였다. 오래된 친구와의 추억담인 스탠리큐브릭 얘기에 낄낄거렸고 그가 교코에게 끈질기게 전화를 했었던 예비상담자였다는 걸 눈치채게 되었을 땐 자못 짜릿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