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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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에서 집과 가족을 모두 잃는 비극을 겪고 희망을 찾아 아메키라 대륙의 북부도 발걸음을 옮겼던 로런은, 자신과 뜻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과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자신이 만들어낸 종교 '지구종'을 토대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 북부에 연인이 가지고 있던 땅과 주택을 기반으로 작은 공동체를 일구게 된다. 평화와 신앙을 모토로 시작된 이 공동체는 고통받고 갈 곳 없는 소수자 집단의 피난처가 되어 준다는 소문이 나며 인원과 규모가 커지게 된다. 늘어나는 노동력을 기반으로 경제력이 커져가는 공동체의 위상에 고무된 로런과 공동체의 창립 멤버들은 지구종의 전파와 평화로운 삶이라는 희망을 꿈꾸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백인을 중심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주장하는 극단적 보수주의자 종교인 후보인 재럿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 그는 소수자와 비주류 집단을 좌시할 생각이 없었고 규모와 그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로런의 공동체는 공포와 통제를 수단으로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대통령의 공개적인 표적이 된다. 지구의 인류를 변화시켜 우주로 진출하고자 하는 로런의 숙원은 무사히 지켜질 수 있을 것인지...

거의 30년 전에 쓰인 이 소설이 최근에 주목받은 이유는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빌런인 미국의 대통령과 누군가의 유사성 때문이다. 나는 그 누군가가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사람뿐만이 아니라, 위계의 정점에서 잘못된 권력을 휘두르는 모든 인간들이라고 생각한다. 버틀러는 이런 위계에서 비롯되는 인류의 권력욕의 본성에 큰 흥미를 가졌고, 이를 경계하고자 했다. 인류 사회의 대부분의 부작용이 이 '위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본 것이다. 이를 타파하고자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버틀러는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비관적이고 음울한 미래를 보여주며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그 꼴이 날 거라고 말이다. 로런이 멸망 직전의 지구에서 생존하기도 바쁜 인류에게 우주로 나아가 인류의 씨앗을 뿌리자는 종교를 전파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류의 발전에 있어 '변화'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로런은 이 변화의 과실을 인류의 우주 진출로 정의했다.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인원이 수용 가능한 성간 우주선을 만들 수 있는 발달한 과학 기술과, 전지구적인 자원과 노력을 하나의 목표에 쏟을 수 있는 인류 집단의 결속이 필요하다. 신앙의 충만과 기술과 문명의 발전! 이 얼마나 실용적인가.

그러나 버틀러는 로런의 삶을 긍정적으로만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로런은 고난의 시절에 낳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딸을 키울 소중한 기회를 남동생의 훼방으로 상실해버렸다. 남동생이 이런 행동을 한 데에는 여러 복잡한 이유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로런의 종교에 대한 남동생의 불신 때문이었다. 로런의 딸은 무사히 자라나 결국 지구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거대 종교로 성장한 지구종의 교주인 어머니를 만나게 되지만, 그녀는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의 불행과 고통이 엄마의 종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면서 동시에 딸의 어머니를 이해하고자 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소설은 로런은 결국 지구종이 목표를 이루어내는 것을 보지 못하며 마무리되었지만, 그녀의 딸과 손자와 자손들이 인류의 우주 진출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혜택은 결국 로런과 같은 선구자들의 혜안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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