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자의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더욱 큰 자극과 성취감을 위해 결국에는 매니아의 영역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게 취미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독서'라는 취미에 있어서는 '장르 문학'이 그렇다고 할 수 있고, 본서와 같은 추리/미스터리의 경우는 장르 문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SF에 비해 소수파이니 더욱 그러하다. 전체 시장으로 보면 이렇지만 일본의 추리/미스터리 장르문학은 그 역사와 저변이 깊은 만큼 국내외에 많은 독자층이 존재하고 있다. 추리소설계의 탑 오브 공장장 오브 공장장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매년 쏟아내는 작품을 다 소화하고 있는 현상이 그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나는 장르문학을 좋아함에도 아직까지 그의 소설을 한 편도 읽지 못했다. 도대체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작품 수 때문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그의 팬이 있다면 세 작품만 추천해 달라.히가시노 게이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명망 있는 일본의 추리/미스터리 작가인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을 읽었다. 예전부터 꼭 읽고 싶었지만 도서관에서는 항상 대출 중에 알라딘 중고서점 재고 역시 항상 없었기 때문이었다.(나는 처음 읽게 되는 작가의 책은 대여나 중고서적으로 구매하고 마음에 들면 그 작가의 책을 사서 보는 편이다.) 이 소설은 웹소설식 제목으로 짓는다면 '미남 영어 선생님이 알고 보니 사이코패스 살인귀였던 건에 대하여'라는 정도의 내용인데, 잘생기고 능력 있고 친절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실제로는 자살이나 실종으로 위장하여 주변인을 지속적으로 살인했던 사이코패스였는데 선생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을 교묘하게 제거해 나가던 그의 범행이 들통나게 될 위기에 처하자 결국 자신의 반 학생 전원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사이코패스물 장르소설은 생각보다 흔하며, 나름의 장점이 있다. 사이코패스가 범인이라면 구구절절한 사연 따위는 없을 것이 분명하고, 독자는 잔혹하고 엽기적인 살인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의 살인 트릭이 일반인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기괴하고 예측 불가능함에서 오는 수사의 어려움도 소설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좋은 요소가 된다. 주인공 하스미 세이지는 사회화된 사이코패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그는 사이코패스의 특성 중 하나인 뛰어난 지능을 활용하여 유년 시절의 여럿의 살인을 경험한 이후로 '일반인의 감정'을 연구하여 레벨업시킨다. 양의 탈을 쓴 식인 늑대가 되어 일반인의 사회에 완벽하게 녹아들게 된 것.그는 정상인의 생활을 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여 자신이 소속된 사회에서 원하는 대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람들을 교묘히 조종하며, 조종이 불가능할 경우는 살인을 통해 제거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직의 숨은 지배자로 군림한다. 그는 소설의 배경인 신코 마치다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런 그의 완벽했던 권력의 철옹성에 생긴 조그만 금이 생기게 된다. 별것 아닌 살인 사건을 소수의 학생들이 의심하기 시작한 것. 사이코패스답게 의심을 덮고자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르던 하스미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한두 명을 죽이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될 정도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 그는 결심한다. 아예 모두를 몰살시키고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자신의 학생들이 다음 날 학교 행사 준비를 위해 학교에서 밤을 새우고 있던 날, 하스미는 학교를 폐쇄하고 전화선을 끊은 후 미리 준비해두었던 샷건으로 반 아이들을 졸업시키기 시작한다. 존경하고 사랑하던 선생님에게 영문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학생들. 과연 하스미는 자신의 반 전원을 졸업시킬 수 있을까.사이코패스물 장르소설에서 교훈 따위를 찾으면 곤란하다. 이 소설은 사이코패스의 심리와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잔혹한 연쇄 살인극이라는 동시상영극을 관음하는 재미로 읽어야 한다. 인간의 악의 본성을 극단적으로 파헤치는 이 소설, 관심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악의교전 #기시유스케 #사이코패스 #서평 #도란군의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