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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7월
평점 :
대부분의 하루키 팬들이 그렇듯, 저도 대학생 시절 ‘상실의 시대’를 읽고 난 후 하루키스트가 되었습니다. 당시 상실의 시대가 저를 매혹시켰던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자유분방한 연애와 섹스로 표현되는 일탈과 배경에 짙게 깔린 냉소와 허무주의였습니다. ‘상실의 시대’라는 구판 제목이야말로 이 소설을 정말로 잘 표현하는 문장이라 생각했었죠. 요즘 말로 정말 ‘힙한’ 이 소설을 몇 번이나 읽으며 와타나베가 되어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나오코와 미도리와의 관능과 열정의 사랑을, 그들 자신은 지루하다 여기겠지만 저에게는 무척이나 자유분방한, 그러나 고독하기도 한 삶을 살아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또 읽고 싶어지네요. 조만간 제 피드에 소설 리뷰가 올라올 것 같습니다.) ‘상실의 시대’는 하루키의 다른 대표작과 달리 비교적 현실에 맞닿아 있는-그러나 진짜 현실에 비하면 또한 비현실적인-이야기였기 때문에 읽기에 마음도 편했습니다. 이렇듯 상실의 시대를 너무나 좋아했고 이후로도 하루키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왔던 제가 어째서 하루키 연애소설 3대장 중 하나인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지는 참 모를 일입니다. 그의 소설 목록이 많다고는 하나, 이십 여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한번쯤은 읽어 봤을 법도 한데 말이죠.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상실의 시대처럼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삼각관계를 그린 연애소설이지만, 그 결은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실의 시대에서의 사랑이 정적이며 현실적이라면 스푸트니크의 그것은 격정적이고 비현실적인데, 이를 상징하는 것이 제목의 ‘스푸트니크’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1957년 10월, 러시아가 미국보다 앞서 세계 최초로 쏘아올렸으며 같은 이름의 2호는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를 태워 최초로 생명체를 우주에 보내는 데도 성공한 인공위성의 이름입니다. K와 스미레, 스미레와 뮤, 뮤와 K 각각의 우연한 만남이 계기가 되어 상대방과 마음을 나누고 이성으로서 강하게 끌렸으나 끝내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은 이미 지나간 궤적을 스쳐 지나가거나, 잠깐의 시간 동안만 나란히 갈 수는 있지만 마주치는 것은 영원히 금지되어 있도록 설계된 위성들의 궤도와도 같습니다. 비단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뿐만 아니라, 깊이 생각해본다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결국 상대방을 결코 온전히 이해하거나 소유하지 못하는 스푸크니트의 후예들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 궤도를 평행하게 바꿀 수 있도록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밖에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본질적으로는 스푸트니크 속에 홀로 남겨진 라이카처럼 고독과 단절과 소외의 시간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은, 창 밖에 보이는 나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또다른 위성 속 라이카와 함께 이 여정을 사랑의 힘으로 완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루키가 의도한 바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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