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유령 - W. G. 제발트 인터뷰 & 에세이
W. G. 제발트 지음, 린 섀런 슈워츠 엮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제발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도서관에서 발견한 ‘토성의 고리’라는(언뜻 제가 좋아하는 SF 장르 소설의 제목 같은) 흥미로운 제목의 소설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작품은 SF 소설이 아닌 ‘독일’ 작가의 소설이었고, 독일 문학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저는 책장을 바로 덮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왠지 모르게도 유령처럼 계속 제 마음 속을 떠돌았고, 결국 다음 번 도서관 방문 시에는 대여해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이후 인스타 피드에 ‘기억의 유령’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의 게시물이 떴는데, 설마 하는 마음에 보니 바로 그 ‘제발트’의 인터뷰와 에세이를 엮은 책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우연이 겹치면 운명이라는데, 마침 그날이 도서관 대여 만기일이었습니다. 점심을 거르고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이 책을 빌려와 읽었습니다.

 

양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 남부의 작은 시골 마을인 베르타흐에서 태어난 제발트는 ‘가해국 전후세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해국 전후세대가 전쟁의 부채의식을 적극적으로 청산하려 노력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의 전쟁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소극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자신들이 (최소한 소극적으로라도) 전범의 자손임을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죠. 제발트는 이들의 혐오스러운 양태를 몸소 체험했습니다. 전쟁에 대해 침묵하는 부모, ‘나치가 아닌 체하는’ 교수들, 나아가 국가적인 ‘집단 기억 상실’과 ‘모의된 침묵’을 말이죠.

 

영국의 대학의 독일어문학 교수로 삶을 살아오며 이 주제에 관한 오랜 곱씹음 끝에, 그는 작가로서는 매우 늦은 나이인 40대 중반의 이후의 나이에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잇달아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픽션과 논픽션을 교묘하게 결합한 ‘산문 픽션(prose fiction)’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식과 ‘역사적’ 버지니아 울프로부터 시작된 의식의 흐름 기법의 현대화, ‘다른 무엇보다 박해의 역사, 소수 집단에 대한 비방, 거의 성공했던 민족 멸살 시도’에 대한 성공적인 글쓰기라는,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 있어서의 완결성을 확보한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걸작이 되었고 그가 2001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문학계는 비탄에 빠졌습니다.

 

이 책은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의 약 5년간 진행한 중요 인터뷰와 평론가들의 에세이를 엄선한 것으로, 그의 세계관과 문학관, 그가 집필한 소설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의 소설에 대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평론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그가 평생토록 천작한 ‘전쟁의 부채의식’의 근원과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인 글쓰기 방식, 무거운 그의 소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유머 감각과 재치가 넘치는 그의 즉흥 발언 등은 제발트의 소설을 기꺼이 읽을 용의가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예습서가 될 것입니다.

 

제가 본 책은 구판으로 이미 절판되었고, 최근 그의 중요한 글쓰기 어록을 추가한 개정증보판이 출시되었으니 읽으실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인스타그램/네이버 블로그/알라딘 서재에서 ‘도란군’ 계정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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