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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계획생육, 인구 통제가 바로 위대한 이치입니다. 악당 역할을 하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언제나 악당 역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죽어 지옥에나 가라고 절 욕하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공산당은 이런 걸 믿지 않습니다. 철저한 유물론자들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설사 정말 지옥이 있다 해도 난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습니까! 철사 줄을 풀어 사오상춘 대문에 걸어요! (p.222)
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가장 신성한 목소리와 부름을 들었습니다 .인류의 가장 장엄한 감정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에 비하면 다른 사랑들은 하나같이 모두 평범하고 저속합니다. 선생님, 제 영혼이 엄숙한 세례를 받은 것 같습니다. 과거 모든 죄악에 대한 속죄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어떤 사연으로 저에게 왔건, 아이로 인해 어떤 일이 생기건 개의치 않고 저는 두 팔을 활짝 열어 하늘이 주신 제 아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p. 423)
인형을 받쳐 든 고모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인형을 요리조리 살펴보았습니다. 고모의 얼굴이 한껏 포근해졌습니다. 그래요, 바로 이 모습이에요. 그 애에요. 고모는 갑자기 말투를 바꾸어 인형에 대고 말했습니다. 바로 너야, 꼬마 요정! 빚 받아 가야지! 이 고모할머니가 저세상으로 보낸 2800명 아이 중에 네 녀석이 빠졌어. 이제 너까지 모였으니 모두 모인 셈이구나! (p. 429)
잠정적으로 개구리라는 뜨의 ‘와’라고 했어요. 물론 여와의 ‘와(媧)’를 쓸 수도 있어요. 여와가 사람을 만들었고, 개구리 와(蛙) 역시 다산의 상징이잖아요. 개구리는 우리 가오미 둥베이 향의 토템이에요. 개구리 점토인형이나 설날 실내에 붙이는 민화에 개구리가 들어간 걸 보면 알 수 있죠. (p. 483)
저는 5남매의 장남이고, 제가 어렸을 때에도-지금은 더더욱 그렇지만-자식 다섯 있는 집은 귀했습니다. 이에 대한 당시의 저의 소감은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교 사회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제가 5남매인 것을 알고 나서 ‘너의 부모는 야만인’이라는 발언을 했던 것은 확실히 기억합니다. 맬서스의 인구론에 경도된 정부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며 펼쳤던 산아제한 정책이 다자녀 가족을 ‘사회적 야만’으로 규정한 것이죠.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도 ‘계획생육’이라는 이름으로 산아제한 정책이 펼쳐졌습니다. 중국은 한술 더 떠 1982년에 아예 한번에 이를 명시해버렸을 정도죠. 우리나라보다 인구 팽창에 따른 문제가 더욱 심각했던 중국은 수 십년간 ‘계획생육’ 정책을 폭력적으로 유지해왔고, 이 과정에서 개인의 고통과 희생은 묵살되었습니다. ‘핏물이 강을 이룰지라도 초과 출산은 허락할 수 없다’라는 과격한 구호 하에, 국가의 특명을 받은 지방의 관리들은 무자비한 강제 집행을 했습니다. 이 피비린내 나는 현장의 최일선에서 활약했던 사람들이 소설의 화자의 주인공인 고모 ‘완신’과 같은 산부인과 의사들이었습니다.
당시에 드문 교육받은 신여성이었던 그녀는 어린 나이에 의사가 되어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조산을 하던 늙은 노파들을 경멸하며 임산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산모가 건강하게 아이를 낳게 해 주었고, 점차 지역에서의 영향력이 커져갔습니다. ‘계획생육’의 기수가 될 당시의 완신은 이미 수천명의 아이를 받은 ‘베테랑’이었죠. 그녀는 이를 사명으로 여기고 과도한 ‘생육지표’ 달성을 위해 마을 남자들의 정관을 꿰매고 여자들을 낙태시켰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다산과 남아를 선호하고 먹고 살기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농촌 지역에서의 저항은 극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화자와 고모 완신의 주위 사람들이 희생당하자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였으며, 고모는 ‘살아 있는 염라대왕’이라는 별명과 엄청난 비난과 저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모옌은 그러나 계획생육을 비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무자비한 정책의 최전선에서 자신이 받았던 생명의 수 이상의 태아의 목숨을 앗았던 고모를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풍랑에 휩쓸린 한낱 인간이라는 관점인 것이며, 이는 소설 결말부에서의 고모의 진심어린 참회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은 위대한 건축물을 볼 때’ 이를 완성시키기 위해 동원되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백골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인간은 역사라는 결과의 ‘수단’이었을 뿐이라는 것이죠. 50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압도적으로 몰아붙이는 서사와 모옌의 문장력 때문에 술술 읽히는 ‘개구리’를 읽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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