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
찰스 S. 코켈 지음, 이충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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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만약 모든 종이 이렇게 행동한다면 페르미 역설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다. 이 모든 편집증적 종들은 소리를 내면 재앙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렇게 되면 아무도 접촉을 시도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진짜 재앙이 된다. 심지어 접촉할 능력이 있는 종조차도 접촉을 시도하지 않아 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두려움 때문에 고독을 선택하게 된다. 설령 이것이 진짜 역설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비극적인 아이러니이다.’ (p.183, ‘제9장 우리는 외계인 동물원의 전시 동물인가?’)

‘따라서 사회에 끔찍한 독재자가 나타나면, 용감한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거나 혁명을 모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배 집단이 공기 자체를 통제하면, 저항할 능력을 사실상 잃게 된다. 산소의 통제권을 무기로 억압적 정치를 펼치는 지배 집단에 시민이 저항하면, 지배 집단은 형식적인 사과와 함께 저항하는 사람에게 달 표면에서 1~2초간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밀폐된 문을 열어 주겠다고 제안할 수 있다.’ (p.260, ‘제13장 우주에는 독재 사회가 넘쳐날까, 자유 사회가 넘쳐날까?’)

‘그 진실이란, 다른 생명체가 아무리 맹목적인 삶을 영위하더라도, 그런 삶을 지속할 권리가 있다는 신념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의 선천적 겸손이 빛을 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설령 미생물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화성의 생물권 전체를 파괴하는 것은 매우 나쁜 인간성의 표출이며, 우리 자신에게서 보고 싶지 않은 잔인한 본성이 반영된 행동이다.’ (p. 288, ‘제14장 미생물도 보호할 가치가 있을까?’)

세기말의 과거로 가봅시다. 이공계 대학생인 당신은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초여름 한낮의 에어컨도 없는 유난히 더운 강의실, 그날따라 유독 느릿한, 눌변에 가까운 교수님의 말씀, 아침을 굶어 폭식한 탓에 꽉 찬 당신의 위장, 너무나도 어려운 전공 강의 등은 당신의 의식에 무자비한 연속 타격을 꽂아 넣습니다. 필사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눈은 자꾸 감기고 고개는 위아래로 끄덕거리다, 결국 얼굴을 책상에 완전히 밀착시키는 것으로 졸음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려는 찰나, 교수님의 일갈에 정신이 번쩍 트이고 난 후 속으로 이렇게 되뇌입니다. ‘재미있게 강의하는 교수님을 원해…’

독자가 전공 교양 서적을 읽는 이유는 (나를 만족시키는) 지적 성취감 또는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한)지적 허영을 위함이므로, 가독성은 이런 류의 책의 필수 덕목입니다.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유발 하라리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저자들의 공통점이기도 한 이 덕목은 학자-이자 대부분 교수이기도 한-들이 갖추기 매우 힘든 것 중 하나입니다. 서두의 세기말의 이공계 대학생이 겪었던 교수와 같은 이들이 대부분이죠. 그런데 오늘 소개할 책을 쓴, 무려 애든버러 대학의 ‘우주 생물학’을 가르치는 이 교수님은 과학 분야 교양 서적을 즐겨 읽는 제가 감히 보증하는, 이 ‘덕목’을 갖춘 사람입니다. 거기에 주제가 ‘우주와 외계인’이라니, 치트키 아닙니까?

우주 생물학자인 찰스 S. 코켈 교수는 어느날 택시 기사에게 ‘외계인 택시 기사가 있을까?’라는 엉뚱하고 사소한 질문을 받게 됩니다. 우주 연구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그는 이 질문을 한 택시 기사와 대화를 주고 받다 전문가인 자신조차 이런 의문을 가져 본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평범한 사람들의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책을 쓰기로 결심합니다. 일반 대중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여정의 전문 가이드를 자처한 것이죠. ‘외계인 택시 기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주 어딘가에 외계인이 존재해야 하며, 이들의 과학 기술, 문화, 가치관, 체제 등의 ‘문명’ 수준은 적어도 인류 이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주의 규모에 비추어 본다면 어딘가에는 ‘가-ㄷ툣그-ㅇ’을 운전하는 ‘즛틍-ㅎ쬻콰-ㅅ’이라는 이름의 ‘햭-ㅅ-약ㄷ툣그-ㅇ’이 존재할 수 있겠죠. 어떤 형태로든 말입니다. 이 질문에 답한 저자는 내친 김에 다른 질문에도 답하기로 합니다. ‘외계인의 침공’, ‘화성 여행’, ‘화성 테라포밍’, ‘생명 기원’과 같이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궁금했던 것에 대해서 말이죠.

이 책이 과학 교양서로써 훌륭한 점 중 하나는 ‘점진적인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의 수준이 ‘초보적’이기 때문에, 답변의 시작도 ‘초보적’일 수 밖에 없는데, 저자는 노련한 글솜씨로 답변의 수준을 점진적으로 끌어 올림으로서 독자들의 이해력을 높은 수준으로 제고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친하게 지냈던 농담 따먹기 좋아하는 삼촌’ 모드로 펼쳐지는 명망 높은 과학자의 최고 수준의 강의는 여러분을 우주와 생명이라는 지적인 바다 탐험의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우주 어딘가에 틀림없이, 당신처럼 외계인 ‘인류’의 존재를 궁금히 여기는 외계인과 이 외계인을 위해 책-‘쿟갸’ 또는 ‘췩-ㄱ’, ‘븃’ 등등으로 불리는’을 쓴 외계인 과학자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확신과 함께 서평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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