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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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리아는 한숨을 쉬고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천천히 떨어졌다. 이 사람들이 괴동물들만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그를 이해하는 일에 괴동물들보다 관심이 적다는 것이다.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아요.” 오필리아는 강조하는 뜻으로 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들은 어차피 자기들 마음대로 결론을 내릴 거고, 오필리아는 거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터였다.  (p .419)

오필리아는 걱정하지 않았다. 가끔 30년 뒤 머나먼 곳에서 로사라와 바르토가 극저온 수면에서 깨어났을 때, 그에 관한 어떤 비전의 이야기를 듣게 될지 궁금해하기는 했다. 수송 중에 죽었다고 듣게 될까….. 아니면 이곳에 남아 유명해졌다고 알게 될까? 어느 쪽이든 유쾌한 농담이었다. 그는 한때 계획했던 대로 혼자 죽지는 못했지만, 웃음 지으며 죽었다. (p. 493)

오필리아는 근미래의 인류 기업이 우주 이곳저곳에 개발한 콜로니 중 하나에 젊었을 때 이주하였고, 행복하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 남편과 자식의 상실을 버티고, 남은 자식을 헌신적으로 키워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소박하지만 평생을 살아 정이 든 집과 정원을 관리하며 평온한 죽음을 맞을 당연한 권리가-사랑하지만 무능력하고 밉살맞은 아들과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확실한 며느리와 함께라고는 하지만-있었습니다. 콜로니 관리 기업이 사업권을 잃게 되어 새로운 행성으로의 이주 계획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젊지 않고, 남성이 아니며 출산을 하지 못하는 자신은 이주할 때 오히려 비용을 내야 하며, 늙었기 때문에 이주 중에 들어가야 하는 극저온 탱크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아주 조금은 자식-어머니를 사랑하지만 함께 이주하기 위한 비용 부담을 걱정하는-을 위해, 대부분은 자기 자신을 위해 기꺼이 잔류 인구가 되어 평생을 살았던 콜로니에서 생을 마감하겠다고 마음먹고, 이 계획을 실행하게 됩니다. 그는 혼자 누리기에 충분한 자원과 시설과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복하게 삶을 즐깁니다. 외롭고 무서울 법도 한데 말이죠. 그런데, 오로지 자신만 사는 것으로 알고 있던 콜로니는 사실 이전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지성체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 자생종은 인류가 떠난 것을 확인하자마자 오필리아가 홀로 살고 있는 콜로니로 접근합니다.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죽음을 맞기로 결심한 오필리아에게 찾아온 뜻밖의 손님을 맞게 된 오필리아. 그녀의 잔류인생은 과연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요?

소설을 만들고자 하는 이에게 ‘SF’는 정말이지 훌륭한 도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전개나 상황 등을 통해 서사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켜 주거든요. 예를 들면 현실에서는 기껏해야 몇 십년 사이의 이별 또는 재회만이 가능하지만, SF에서는 이 간극을 수천년, 아니 수십만 년까지 벌릴 수 있습니다. 요지는 비극은 더 슬프게, 희극은 더 기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만약 주인공이 현실 지구의 오필리아라면 그의 자유를 향한 강한 의지는 정말로 큰 울림을 주지 못했을 겁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이란 고작해야 가출 후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사는 것뿐이었을 테니까요. 그마저도 같은 인간이 살고 있는 장소에서 말이죠. 그러나 잔류 인구의 오필리아는 진정하게 홀로, 자유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정도 스토리만 되도 진취적인 여성상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데, 거기에 지성을 가진 외계 종족과의 만남도 모자라, 그들과 진정으로 교감하여 인류의 성공적인 퍼스트 컨택트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는 영광까지 누라다니. 이게 바로 진정한 페미니즘이자 남성들까지도 우러러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진정한 히로인이죠.

또다른 위대한 SF 작가, 모두가 SF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면 그 첫번째가 될 것이라 말한 어슐러 K. 르 귄이 오필리아를 ‘SF 소설계가 이제껏 알고 있던 여성 히로인 가운데 가장 그럴듯하다라고 극찬했다는 말로 이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큰 공로를 세운 ‘70대 여성 노인의 일대기, 어서 만나보시죠.

* 이 글은 도란군의 서재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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