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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3년 1월
평점 :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는 일제강점기를 모티프로 삼은 가상의 국가 ‘화국(=조선)’과 화국을 식민 지배하는 ‘라잔 제국(=일본)’을 배경으로 합니다. 주인공 화국인 ‘제비’는 먹고 살기 위해 라잔식 이름으로 개명(=창씨개명)을 하고 라잔 예술성(=조선총독부 기관)에서 화가(=친일파)로 활동하기를 꿈꾸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시험에 낙방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라잔의 군인에게 남편을 잃은 언니 ‘봉숭아’(=독립군)에게도 절연 당해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라잔 방위성의 장관 대리 ‘하판덴’(일본군 장성)의 권유로, 라잔이 비밀리에 개발중인 기계 용 ‘아라지’에 생명을 부여하는 마법 문양을 그려 넣어 전쟁 병기로 이용하려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그러나 제비에 의해 깨어난 아라지는 평화주의자였으며 아라지와의 교감을 통해 절친이 된 제비는 아라지를 구출하려는 계획을 품게 됩니다. 한편, 제비는 전쟁 중에 언니의 남편을 죽인, 자신의 감시자이자 방위성 소속 결투관 베이와 친해지며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본서는 박경리의 ‘토지’ 등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일제강점기를 다룬 기존의 소설들과는 결이 다른, 허구의 세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유명 작품이자 한국 장르소설에 한 획을 그은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실패해 일제강점기가 지속’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라면 이 소설은 SF/환타지 장르소설의 문법으로 만들어진 ‘완전한’ 허구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토지’와 ‘비명을 찾아서’의 경우는 그 내용과 결말이 이미 벌어졌던 역사적 과거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 소설은 우리 민족이 나아갈 수 있는 더 좋은(또는 더 못한) 미래를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접근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윤하 작가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이 주제는 독자에게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를, 타국에 사는 한국 출신 사람이 몸소 실천한다는 것은, 소위 말해 ‘국뽕’이 차오로고 주모를 찾는 정도의 기쁨인 것이죠.
작품 속에는 구미호, 자동인형, 마법 문양 등 동양적 요소들이 SF와 판타지 장르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독특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특히 주인공 제비와 라잔 방위성 소속 결투관 ‘베이’의 관계는 동성애적 요소를 품고 있으면서도 섬세하고 진솔하게 그려져,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두 인물 간의 관계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격랑의 시대 속에서 지배국과 피지배국인 원수지간 개인이 정체성과 사랑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는지를 묻는 서사로 이어집니다. 화국 출신 제비와 라잔 출신(이곳에서 제작되었으니) 아라지의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유머 담당 티키타카도 작품의 재미에 한몫 하구요.
이윤하는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으면서도, 가상의 세계를 통해 그 시기를 특별하게 재조명합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과 디아스포라의 감수성이 섬세하게 녹아 있는 세계는 독자에게 익숙함과 현실감을 제공합니다. 그는 아픈 역사를 가상의 세계로 단순히 그려내는 것이 아닌,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상상력을 통해 새롭고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 민족의 독창적인 정서와 감각으로 빚어진 이 특별한 SF소설은 독자 여러분께 잊지 못할 독서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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