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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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가제본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그는 죽은 자식을 애도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죽은 부모를 애도하는 자식, 죽은 남편을 애도하는 여자,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이들의 고통이 신체 절단의 후유증과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해 본다. 사라진 다리나 팔은 한때 살아 있는 몸에 붙어 있었고, 사라진 사람은 한때 다른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절단된 일부, 자신의 환상에 속하는 부분이 여전히 깊고 지독한 통증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치료가 가끔 이 증상을 완화해 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 치료법은 없다.(p. 68)

‘이것은 바움가트너에게 인간의 역사에서 벌써 몇 번째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고 어떤 사람도, 심지어 가장 고립된 사람이라 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해 주는 일일 뿐이었다. 로빈슨 크루소도 마찬가지인데, 만일 프라이데이가 나타나 구해 주지 않았다면 그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p.171)’

‘그렇게 해서, 우리의 주인공은 이마의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흐르는 채로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도움을 찾아 길을 떠나고, 첫 번째 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릴 때 S.T. 바움가트너 모험담의 마지막 장이 시작된다.(p.245)’

우연히 떠오른 오랜 기억은 우리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고인을 기리는 추도사는 낭독이 끝남과 동시에 그 애도의 중지를 강요하지만, 우연히 본 물건을 통해 환기되는 반려와의 기억은 하나의 씨앗으로부터 그 생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끝없이 뻗어나가는 나무의 가지와도 같이 우리를 무한한 추억의 정원으로 안내하기 때문입니다. 이 정원은 그 대상의 부재와 상실을 메꾸고 나쁜 기억마저 윤색한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장소입니다. 이 소중한 정원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기 위해서는 물론 나 자신의 어떤 정신적인 수고로움도 있어야겠지만, 무의식의 윤색이 더욱 잘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모범’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 ‘바움가트너’를 읽어야 햘 이유입니다.

어느 날 아침, 노교수 사이 바움가트너는 우연이 빚어낸 한바탕의 소동으로 두번의 신체적 고통과 자신의 집을 청소해주는 부인의 남편의 손가락이 잘렸다는 소식을 경험하고, 통증과 피로로 진이 빠진 채 자신이 망가트린 새카만 냄비를 우연히 쳐다보게 됩니다. 그 순간 그는 그 냄비가 1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 애나와의 우연한 첫 만남 때 구입했던 물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나긴 세월을 함께했던 냄비의 상실이 환기시킨 아내의 기억은 그를 애나의 나무로, 이 나무를 포함한 바움가트너의 추억의 정원으로 안내합니다. 이곳에서 바움가트너는 40년간 함께했던 아내와의 희노애락의 세월과 자신의 다사다난했던 지난 시절, 양장점 주인이라는 범인(凡人)이자 실패한 혁명가인 비범인(非凡人)이고자 했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 등의 꽃이 열린 나무를 관조합니다. 이 내적 사유는 그간 자신이 썼던 글과 가꾸어온 가치관과 번역가이자 시인이었던 애나의 미발표 원고들이라는 덩굴식물과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더욱 풍부해지는데, 이 덕분에 바움가트너는 공과 과가 분명했던 자신의 과거를 두려움이나 기쁨 등의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애나가 없는 남은 삶을 살아갈 용기도 함께.

인간의 삶에 있어 크고 작은 에피소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많은 타인들과의 관계입니다. ‘인간관계’라는 얽히고 설킨 나뭇가지가 있어야만 ‘사건’이라는 잎과 꽃, 열매가 맺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움가트너는 그 성이 의미하는 바(정원사)대로 나무를 관리하고 잎과 꽃 등의 부산물을 정리합니다. 인생을 돌아보는 이 작업은, 폴 오스터의 문장을 통해 더욱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으로 탈바꿈합니다. 죽음을 예감하고 글이기에 어떤 비장미가 느껴지기도 하구요. 평생토록 ‘우연의 미학’을 사유한 거장의 유작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가제본으로 이 소설을 만나게 되었지만, 정식 출판본도 예약 구매하였습니다. 표지가 정말 이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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