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 개정판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에 아이들 부탁으로 사줬던 정보라 작가의 단편소설집인 ‘저주토끼’를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본서와 최근 SF 권위의 문학상인 필립 K. 딕상에 한국인이 쓴 한국어 소설 최초로 최종 후보가 되며(현재 진행중) 유명해졌지만, 러시아/폴란드 문학 박사와 대학 강사, ‘아무튼 데모’란 책을 냈을 정도로 데모에 진심인 행동가, 러시아어 소설 번역 활동과 더불어 SF와 환타지, 호러 등의 장르 소설을 꾸준히 발표한 다재다능하고 이색적인 경력의 중견 작가입니다. 제가 그녀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현대문학 스타니스와프 렘 단편선, 을유문화사 고리키의 어머니, 민음사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따 등의 번역작을 통해서 였으니 저는 한참 전부터 그녀와 나름의 인연이 있었던 셈이죠.

이 소설집은 ‘환상과 호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보라는 자신의 일상과 경험, 문학적 전문성의 근원인 러시아권 동화 등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장르의 문법으로 풀어냅니다. 저주 용품을 만드는 집안의 할아버지가 단 한 번의 예외로 만든 저주 토끼를 개인적으로 사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저주 토끼), 누군가의 배설물로 만들어진 머리가 그의 삶을 침식하는 이야기(머리), 차량 사고로 암흑의 습지에서 손가락의 촉각만 느낄 수 있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탈출하는 이야기(차가운 손가락), 자신이 놓은 덫에 걸린 여우의 몸에서 나오는 피가 황금으로 변하자 탐욕에 빠지는 이야기(덫), 괴물의 제물이 되어 오랜 세월 고통받은 한 소년이 괴물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보이는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 되며 벌어지는 비극(흉터) 등 정말로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언뜻 달라 보이는 이야기 속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슬픔’입니다. 이야기 속 모든 인물들에게 주어지는 잠깐의 행복은 고독하고, 버림받고,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운, 그들이 겪는 온갖 부정의 감정의 비참함을 오히려 자극할 뿐입니다. 이들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존재에게 복수를 꿈꾸고 성공하지만, 늘 그렇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작가 본인은 이 책에 대해 ‘전달하려는 특별한 교훈이나 메시지는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읽음으로서 기기묘묘한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과 더불어 현실의 우리는 이런 극단의 상황에 놓이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복수의 덧없음을 실감하고 주위 사람들과 증오가 아닌 이해를, 슬픔이 아닌 위로를 나누는 것이 나은 일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주토끼 #저주토끼정보라 #정보라 #래빗홀 #장르소설 #장르문학 #책 #책리뷰 #책읽기 #독서 #독서리뷰 #서평 #내돈내산 #도란군 #도란군의서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