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 헤드_시라이 도모유키_구수영 역_내친구의서재_레알 악마놈이 쓴 소설_484쪽]

엘리펀트 헤드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0월

정신과 의사 기사야마 세이타로. 본인은 전문직으로서 확고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고, 아내는 전성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중인 미모의 배우인 아내와 얼굴 없는 가수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큰딸과 지병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작은딸까지. 그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불안해합니다. 어린시절의 과거에 큰 트라우마를 겪었던 그는 이 행복이 사소한 균열 하나로도 무참히 박살 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습니다. 결국 그의 두려움은 어느 날 벌어진 사건 하나로 현실이 되어버리고, 가족이 해체되고 그는 가족에게 버림받습니다. 절망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그에게 문득 떠오른, 마약 딜러로부터 입수한 ‘시스마’라는 정체불명의 마약성 약물. 그는 마지막 쾌락을 위해 시스마를 사용하는데…

‘특수설정 미스터리’는 일본 추리 소설의 한 장르로, SF, 환타지 장르 등의 비현실적인 설정을 전제로 한 사건을 추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시라이 도모유키는 이 특수설정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가로 직접 창조한 독창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정밀하고 논리적인 추리를 폭력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묘사로 전개하는,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추리/미스터리 작가입니다. 일본 소설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스타 피드에 계속 올라오는 극찬(악마가 쓴 소설, 너무 재미있는데 남들에게 추천 불가, 작가가 도라이 등등)의 유혹에 굴복하여 구매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리뷰를 쓰는데 고민이 많았습니다. 배경과 설정, 작품의 주요 키워드인 마약 시스마, 제목인 ‘엘리펀트 헤드’의 함의, 구체적인 줄거리 등을 언급하면 할수록 추리 소설의 백미인 ‘누가 범인’인지 알아내는 스릴을 망칠 수밖에 없으므로 리뷰를 쓰는데 한계가 매우 큽니다. 심지어 이 소설은 ‘누가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지’도 결말까지 알 수가 없습니다. 초반부의 주인공 가족의 행복한 일상에 대한 묘사가 다소 지루하게-특수설정 미스터리 장르 소설로서-전개되고, 주인공이 폭주하기 시작하는 중반부터는 엽기적이고 잔혹한 사건이 연속되며 독자를 충격에 빠트리는데,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피상적인 자극만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싸구려 펄프픽션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 고비를 견뎌낸다면, 결말부의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과정에서 모든 복선이 회수되고 스토리 전체가 완벽하게 이해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잔인한 살인 사건의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 변태적으로 느껴지는 집요한 추리의 전개가 매우 인상적인 이 작품은, 여러분을 특수설정 미스터리라는 이색적인 장르의 세계에 중독되는 마약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미 중독이 된 것으로 보이며, 작가의 다른 작품과 또다른 특수설정 미스터리 소설을 찾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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