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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 걸작선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37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이동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0월
평점 :
* 이 글은 을유문화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한 글입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스티븐 킹, 조지 R. R. 마틴, H. R. 기거, 이토 준지, 스튜어트 고든…
SF나 환타지, 코스믹 호러 등의 서브컬처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다양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러브크래프티안(또는 러브크래프션)(Lovecraftian)’들이라는 것입니다. ‘Lovecraft’에 접미사 ‘-tian’을 붙인 이 단어는 말 그대로 H. P. 러브크래프트를 경배하고 그의 창조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크툴루(-후) 신화’로 대표되는 그의 저작들은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아왔을 뿐 아니라, 지금 현재도 주로 게임과 애니메이션 문화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인용되고 재창조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보다가 인간형 이족 보행 형태에 수많은 촉수가 달려 있는 두족류의 머리를 닮은 빌런이나 몬스터를 발견했다면, 그것이 바로 크툴루 신화의 유산입니다.
그러나 이런 러브크래프트의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국내에서의 인기와 번역서는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 단권의 단편선집이나 2차 저작물 코믹스 등을 제외한 러브크래프트 전집은 동서문화사의 러브크래프트 코드와 황금가지의 러브크래프트 전집의 두 가지가 유일합니다. 그 이유를 개인적으로 추측해 보면, 그의 크툴루 신화를 기반으로 한 창작물이 국내 서브컬처 전반에 걸쳐 깊이 침투해 있고 유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원작이 이 그늘에 가려져 있다는 점과 이 원작이 난해하며, 독서 난이도가 꽤 높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쉽게 말해 재미가 좀 떨어진다는 것이죠. 당대의 ‘펄프 픽션’의 공식에 충실한 정형화된 스토리 전개와 주석을 보지 않고서는 알 도리가 없는 정체불명의 고유명사들, 어두운 작중 분위기, 절망적인 상황을 향해 치닫지만 분명하지 않게 끝나는 열린 결말 등 요즘의 스타일은 아닌 것이 러브크래프트 작품의 특징입니다.
그럼에도 ‘왜 러브크래프트를 읽어야 하나?’라는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현대의 대중문화, 특히 게임과 영화 분야는 모두다 러브크래프트에게 큰 빚을 졌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대중’ 문화를 향유하는 우리 ‘대중’은 마땅히 러브크래프트를 읽을 의무가 있습니다. ‘빛의 톨킨, 어둠의 러브크래프트’라는 말도 있듯이, 그는 톨킨에 비견될 정도로 위대한 작가인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톨킨보다 러브크래프트가 ‘재미’는 확실히 더 있습니다. 러브크래프트를 읽는다면 지적 허영심도 충족하면서 재미도 챙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죠.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출간한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은 ‘러브크래프트 입문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을 선정하였기 때문에, 그의 글을 처음 접하는 분들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유명한 작품인 ‘광기의 산맥’과 러브크래프트의 스타일에 가장 충실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인스머스의 그림자’가 빠진 것이 아쉽습니다만 이 단편선집에 포함된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러브크래프트에게 관심을 가질 만한 동기는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흐물거리는-두족류의-모호한-끔찍한-어둠의-공포의 존재 크툴루’의 매력에 빠져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