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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 협동조합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2년 11월
평점 :
‘김동식’과 ‘회색 인간’.
자주 들르던 집 근처 도서관에서 자주 눈에 띄던 작가와 책 제목이었습니다. 너무나도 평범한 이름에 대비되는 범상치 않은 제목, 그리고 우중충한 회색을 배경으로 흰색 천에 묶여 있는 잘린 양쪽 발목의 책 표지 때문에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던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깊은 인상을 주었음에도 이 책을 빌려보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만 해도 국내 작가의 소설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 장르 역시 제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공포, 스릴러’였고요. 그러다 올해 이사를 가 그 도서관에 발길을 끊게 되며 ‘김동식’은 자연스럽게 제 기억에서 잊혀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큰아이의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던 새빨간 색깔의 책에서, ‘김동식’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친구가 선물로 준 책이며 자기가 좋아하는 ‘회색 인간’을 쓴 김동식 작가의 최신작이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더군요. 동생도 이미 봤다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죠. 생각해보니 아이들에게-부모가 아이들이 읽기를 원하는-책을 사주며 독서를 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볼 생각은 그동안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작가에 대한 궁금증에 정보를 찾아보았더니, 김동식 작가는 중학교 중퇴에 주물 공장 근로자로 일하는 틈틈이 ‘오늘의 유머’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큰 인기를 끈 단편 소설을 올렸던, 정식 등단 경력조차 없는 매우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의 글을 눈여겨본 이들에 의해 세상에 나온 ‘회색 인간’을 포함한 3편의 단편집은, 출간 즉시 ‘기발한 상상력’, ‘천재’라는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작가는 현재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청부살인 협동조합’은 동명의 오디오드라마와 동시에 제작된 단편집으로, 오디오드라마의 원작과 신작을 담고 있습니다.
‘김동식’의 글의 특징은 ‘인간 통찰’, ‘긴박감’, ‘극적 반전’의 세 가지 키워드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이들 삼총사의 뛰어난 활약 덕분에 정식으로 글 쓰는 법을 배우지 못한 그의 거친 문체는 그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를 좀처럼 찾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형식의 완결에는 자신이 없으나 내용을 전하는 데에는 진심을 두는 ‘눌변가’라고나 할까요. 김동식은 ‘초단편 소설 쓰기’라는 책을 냈을 정도로 짧은 글을 선호하는 작가입니다. 자신의 한계 또는 장점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글은 문체와 서사의 밀도나 완결성이 아닌 아이디어와 촌철살인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를 문장력이 빼어나지 않은 작가라 폄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인간이 또한 다양한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글 또한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