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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계약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36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평점 :
* 이 글은 을유문화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한 글입니다.
발자크는 플로베르, 졸라와 더불어 근현대 문학사의 주요 사조였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활동 시기 및 사조의 발전 흐름에 있어서 발자크가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라 할 수 있죠. 국내의 일반 독자에게는 졸라와 플로베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는 편인데, 저는 이런 이유가 그의 그 유명한 ‘인간극’ 시리즈의 방대함에 비해 국내 번역작이 아직도 적은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졸라와 플로베르 역시 모든 작품이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발자크에 비해 작품 수가 적으며 주요작은 대부분 국내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인 즉슨, (원서를 읽을 수 없는)국내 독자들 중 누구도 ‘나 발자크 좀 읽어봤소!’라고 선언하는게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볼 때, 을유문화사에서 발자크의 ‘인간극’ 시리즈를 꾸준히 번역해주고 있는 점은 애서가로서 상당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주요 세계문학전집의 발자크 작품 목록을 확인해보니, 을유문화사가 5권으로 제일 많네요.(문학동네 3권, 민음사 3권, 열린책들 1권).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5번째 발자크 작품 ‘결혼 계약’을 출간하여 서평단에 선정된 인연으로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발자크의 ‘인간극’은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귀족부터 빈민까지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애소설부터 비평문까지 문학의 모든 장르가 망라된 대규모의 군상극으로 그에게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라라는 칭호를 부여한 총서입니다. 19세기문학계의 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고 할 수 있죠. 그 규모만 해도 약 90여편, 등장인물만 2천여 명에 이르며 주요 인물들은 서로 다른 작품에 두 번 이상 등장하는 기법을 최초로 활용하였습니다. 그전까지 저속하다는 이유로 문학계에서 무시당하던 ‘현실성’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하나의 사조를 이루어 냈으며, 플로베르와 졸라 등에 의해 계승됩니다.
이 책은 ‘결혼 계약’과 ‘금치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작품 모두 법과 돈, 구체적으로는 결혼과 상속에 관한 법률과 계약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발자크는 돈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욕망과 절망, 탐욕과 야심을 그의 전매특허인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까지 다방면의 지식과 장황함에 가까울 정도의 만연체를 바탕으로 한 사실주의 문체로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두 소설의 간략한 스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결혼 계약’은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 청년과 그와 마찬가지이나 세상 물정을 아주 잘 아는 어머니를 둔 귀족 처녀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시대와 비슷할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결혼 계약의 체결을 위해 양쪽 가문을 대리하는 공증인들이 계약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논박과, 사랑에 눈이 멀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려는 예비 신랑과 선대부터 봉사하여 가문의 재산에 애착이 있는 정직하고 노련한 공증인과의 갈등, 사치스런 생활로 전 남편의 재산을 탕진하여 한탕을 노리는 예비 장모의 교묘한 술책, 역시 사치스러우며 백치에 가까울 정도로 순진 무구한 아름다운 예비 신부의 철없는 행동 등이 어우러지며 이 결혼 계약의 결과는 미궁 속에 빠지게 되는데…
‘금치산자’는 한 후작부인이 남편에 대해 청구한 소송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망명 높은 귀족인 남편이 가문의 부가 과거에 한 가족으로부터 부당하게 몰수한 토지로부터 축적되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껴 그들의 후손에게 재산을 돌려주었는데, 아내는 남편의 명예로운 행위를 알고도 자신과 무관한 자에게 가문의 재산을 퍼주는 미친 자로 몰아 재산을 빼앗고자 금치산 선고를 청구합니다. 사건을 담당한 공명정대하기로 소문난 판사가 소송의 청구자와 대상자 모두를 심문하게 되는데…
두 작품은 19세기 프랑스판 ‘사랑과 전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작금의 세태와 놀랄 만큼 닮아 있습니다. 물론 이는 당대의 현실을 ‘리얼’하게 반영하고자 한 발자크의 의지와 박학다식함, 문장력이 더해진 결과이겠지요.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는 유명한 밈이 되어버린 한 ‘돈에 관심없다는 사람을 경계하라, 그 사람은 돈에 미친 사람이다’라는 한 유명 강사의 말이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