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풍경 을유세계문학전집 135
E.T.A. 호프만 지음, 권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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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을유문화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한 글입니다.]


독일문학의 대표 작가라 할 수 있는 토머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하루’,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난 후의 저의 감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독일문학은 노잼’이었습니다. 자기 합리화를 할 요량으로 동일한 문장으로 구글링을 해보았는데,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게 아니었습니다. ‘직장인에게 권하기 망설여진다’, ‘소설을 빙자한 철학서’, ‘음울함의 문학’, ‘지루한 독일문학’ 등의 날 선 비판글을 보며, 걸작으로 평가받는 소설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실패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때의 실망감 때문인지 그 후로는 고전문학을 읽을 때면 의식적으로 독일 작가의 작품은 피하게 되었고, 발자크, 위고, 뒤마, 플로베르, 졸라 등의 프랑스 고전문학만 읽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이런 습관을 지속하다 문득, 문학이면 장르 불문 읽는다고 (마음속으로만) 자부하고 있던 내가 ‘편독’을 하다니,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과 함께 ‘선택적 독서가’가 되지 말자는 결심을 했었는데, 이런 결심을 하자마자 독일 문학인 ‘밤 풍경’의 서평단에 선정되었다는 것은 좀 과장해서 운명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E.T.A. 호프만은 유럽 후기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거장으로 지금으로 치면 ‘환상과 공포 장르소설’의 대가이며, 에드거 앨런 포, 도스토옙스키, 발자크 등 후대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작가입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그의 작품이 많이 소개되지 않아, 그가 우리에게 익히 유명한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원작 소설을 썼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작금의 ‘독서 힙’ 현상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국내 장르문학의 전성기의 한 가운데에서 장르문학의 시조 격이라 할 수 있는 호프만의 대표 작품 선집의 출간은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서의 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소설의 주요 배경은 ‘밤’입니다. 밤으로부터 환기되는 ‘어둠’과 그 공포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강도, 방화, 주술, 복수와 같은 소위 ‘강력 사건’이 이 소설집의 주된 소재이며, 호프만은 이런 잔인 무도한 사건들 속에서 광기로 파멸하는 인간 군상과 이들을 파멸시키는 비이성적인 ‘어둠의 힘’에 주목합니다. 그는 이 어둠의 힘의 정체를 끝내 명확하게 밝히지 않음으로써, 읽는 이의 불안감을 자극하며 공포심을 이끌어냅니다. 언뜻 무책임해보이는 그의 작품들의 결말은, 그러나 지금까지도 인간 비이성의 근간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역설적으로 ‘이성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설명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죠. 이런 결말로부터 우리는 나름의 이해와 설명을 도출해낼 수 있으며, 이 또한 독자의 즐거움일 것입니다.


어느덧 서늘한 초가을의 밤, 적막한 방에 홀로 앉아 이 책을 읽고 나니 제 마음 역시 차디찬 서늘함의 비수에 꽂힌 듯 시려옵니다. 이 느낌 또한 제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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