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13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8.0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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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지사지'

 이 책에서 남는 한 줄.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저.

 

 아주 단순한 진리를 한 권에 걸쳐 수많은 실전 상황을 통해 알려 준다. 소위 '역지사지'라고 불리는 인간 관계의 기본 전술을 와튼 스쿨에서 MBA를 강의 하는 그가 협상에서 실제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 알려주는 책.

 

 수 많은 예시가 있지만 딱히 하나 꼽으라면 '역지사지'가 남는다. (그것만 기억난다.) 사실 왜 베스트셀러였는지 조금 의문이다. 와튼 스쿨 이름으로 치고 올라온거 같기도. 역시 제목과 화려한 백그라운드의 힘일까? 강의는 훨씬 재미있으리라 예상되지만 책은 분량을 위해 지루하게 두꺼워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서점에서 훑어 보기에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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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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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저.

 

 제목만으로 벌써 베스트 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

청춘을 위로하는 최고의 제목. 솔직히 감동적이거나 오랜 여운을 주는 책은 아니다.

흔한 자기 계발서다. 사랑, 시간 관리, 공부 등에 관한 우리의 고민, 그리고 위로와 응원을 담았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교수님들이 좀 더 많아 졌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청춘과 거리가 머니까. (나도 곧 그렇게 될까?)

 전공 서적에 찌든 학생들에게 좋은 휴식과 힘이 될 수 있는 책.

 

 단, 이 책을 미련하게 써서 아픈 것을 애써 정당화 시키지는 말자.

 "No pain, No gain."은 아픔이 필연적으로 다가 왔을 때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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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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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 유시민. TV에서 토론하는 그들을 보면 참 재밌다. 그들의 정치적 입장은 관심 없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난무하는 정치 토론장은 그저 진흙탕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와중에 어딘가 처박혀 있을 진주 하나 건져 올리는 게 정치의 목표겠지만, 그것을 누가 해내는지는 나중에 우리 모두가 판단할 일이다.)

 '말빨'있는 정치인이자 강력한 글쟁이 유시민이 글쓰기 책을 썼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재미있게 읽었다. 그의 글은 '내용이' 재밌다. 말투는 정치적이고 논리적이라 그런 건지 재미없다. 읽다보면 예시로 든 글까지 재미없음. 하긴 뭐 개그맨도 아닌데 안 웃기면 어때.

 

자, 이것은 모두 내 취향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저.

 

취향과 주장을 구별하라.

주장을 한다면 반드시 논증하라.

주제를 명료하게 써라.

간결하게 써라.

...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요약하자면 대강 이정도. 특별히 더 자세한 내용은 없으므로 글쓰기 책 소개말 처럼 '영업 비밀'이라기엔 좀 아쉽다. (사실 많이) 놀랍게도 구체적인 글쓰기 특강은 다음 권에서 알려드립니다...하고 여러분 안녕으로 마무리. (이런 젠장.. 유형,  출판사에 휘둘리지마!)

 

 글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 흥미를 갖도록 유도하는 내용이 주다. 학부형들이 타겟인 모양. 물론 글 쓰기에 누구에게나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단지 좀 더 테크닉(?)적인 면을 더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기대감에는 살짝 못 미친다. 하긴 알려줘도 머리만 아프겠지만. 

 

 - 서두에 '주장'을 한 문장으로 말하기.

 - 불필요한 부사나 형용사 제거.

 - 불필요한 외래어나 한자어 남용 금지.

 - 외래어에서 나온, 피동형 문장 사용 줄이기.

 - '의' 같은 조사의 반복 줄이기.

 - 복문 보다는 단문.

 - 말하듯이 써라. 말해서 어색하면 글도 어색하다.

 

 이와 같은 방법을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소개한다. (생각나는 대로 써보니, 많네.) 이걸 다 꾸준히 지키면서 쓰기란 굉장히 어려워 보인다. 일단 시작도 잘 안하니까. 살면서 글 쓸 일 별로 없다.

 

 저자는 '글쓰기'가 누군가에게 읽혀야 가치가 있는 행위라고 한다. 꼭 그럴까?

 

 개인적으로 글쓰기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는 말은 책에도 나오고,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많이 먹으면 먹은만큼 살이 찐다. 비대해지고 둔해진다. 그래서 운동을 한다. 글 쓰기로 많이 읽고 찐 만큼 땀을 흘려야 건강해 진다. 그래서 글을 써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독자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주장이 아니라 취향만 가득써도 별로 상관없다. 쌓인 지식을 어떻게든 토해내고 풀어내면서 땀이 흘리고 건강해 지려고 쓰니까. 조깅하는 모습을 사람들한테 보여줘서 뭐하나.

 

 물론 '혼자 글쓰기'는 나만의 울타리에 갇히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글을 누가 읽어주기를 바랄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권력자가 아닌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특히 '글'은 글 자체를 권력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보통은 사회 엘리트 층의 글이 읽히기 때문에-이 있어 더욱 그렇다.

 우리가 '다듬어 공들이며 시간 투자한'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은 끽 해야 취업용 자기소개서, 대입 논술,연애 편지가 사실상 끝이다. 권력에 접근하는 일이나 직업-언론인,정치인,작가- 을 갖지 않는 이상 글은 혼자만의 취미요 자기 연애편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어차피 대부분 혼자 쓰는 글이다.

 안 읽혀도 상관없다. (제발 읽어줘, 욕도 좋아!! 댓글 달아줘!! ㅠㅠ) 막 써도, 칼로리는 소모되고 땀나고 살은 빠지면서 건강해 진다. 지금 이렇게 독후감 쓰듯이.

 

 아울러 저자는 <토지> 읽기 도전(?) 의욕을 불러 일으킨다. 읽을 수나 있으려나. 저 긴 걸... 딴 말이 길었다. 아무튼 글쓰기에 관한 기본을 착실히 다지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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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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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 무시무시. 죽음의 수용소에서무슨 에피소드를 들려줄까. 에피소드라기 보다는 '생존기'라 부르는 게 맞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저.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치 집권 시절 유대인을 그린 어떤 영화나 책보다 구체적이고 실감나다. 그의 생생한 스토리를 들을 때는 숨을 죽이고 볼 정도.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이야기만 한다면 책의 가치는 한편의 에세이 정도로 끝날 것이다. 실은 훨씬 높은 가치를 지닌 책이다. 

 그는 로고테라피라는 정신의학의 한 분야를 창시한 정신과 의사로, 이때의 경험과 인간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깨달음과 함께 정신 치료의 훌륭한 실천 방법을 알려 준다. 그는 의사로서의 전문지식만큼 책임감도 투철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편안하게 안락한 의자에 앉아 커피와 함께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고마움과 존경심이 들 뿐이다.

 

  빅터 프랭클은 죽음이 가장 가깝게 다가온 순간의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삶을 포기 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의미'. 참, 지루하고, 뻔하며, 영화에서 항상 나오는 최종 시나리오! 그렇다. 아내에 대한 사랑! 그것이 그가 삶을 버틴 가장 큰 의미다. 지루하고 뻔할수록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아내에 대한 의미, 결국은 사랑을 발견하는 일은 매우 새롭고 위대한 것을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이유는 모르겠다. 읽어 보면 안다.

 

  유대인의 고통을 그린 '영화'들은 그냥 유대인의 고통을 보여주고 땡친다. 아무리 위대한 주제를 갖고 작업을 하더라도 대중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미디어의 특성상 이런 작품에는 잔재주(?)가 섞이기 마련이다인간의 존엄성을 그렸기 때문에 '지나친 선정성, 또는 지나친 표현'이라는 말을 '찍소리'도 못하는 안전장치가 있기도 하거니와.

 실례로 인간의 존엄성이나 애국심을 방패삼아 흥행을 노리는 작품들은 무수히 많다. 진중권 급 말 빨을 보유하지 못한 이상 웬만하면 비판 할 생각도 안하니까, 제작자들은 마음 놓고 감동을 짜낸다.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내 생각이지만, 담백 그 자체다. 감히 추측컨대 그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오로지 누군가에게 정신적 치료에 있어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에서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고 와 닿는다. 이야기가 실제 그의 경험담이라는 사실 때문에 느끼는 것일 지도 모르지만.

 

  결론적으로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가까이 둔 경험이 있다. 실은 지금도 언제나 곁에 두고 있다.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몇 가지 시답잖은 취미들, 그리고 허무한 과거, 어두컴컴한 미래, 극심한 쪼들림들이 복합적으로 나를 자꾸만 생명의 끄트머리로 밀어 넣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사실상 더 우울해 졌었다. 친구들이 싫은 게 아니라, 오히려 친들이 너무 좋아서다. 온 세상이 나와 다르게 느껴지고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세워진 느낌, 결코 울타리를 넘어설 수 없을 듯한 살벌한 상상이 현실처럼 다가왔었다. 지금도 완전히 해방되지는 않았다.

 

  그런 나에게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시기 적절하가 다가와 따뜻한 응원 한마디를 건네준 고마운 책이다. 그렇다고 내 인생의 책이다! 라고 외치기엔 영 재미가 없다. (자 사진도 없고, 실감나는 누구 까대기도 없고, 액션도 없으니, 이것 참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한참 멀지!) 단지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으며, 삶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할 시간을 준 책. 재미없다고 말은 했지만 그 무게감에 비해 쉽게 잘 읽히는 책이다. 한 마디로 강추.

 

  여기서 힘을 받아 그가 쓴 <의미를 향한 소리없는 절규>를 보았다. 절규를 외칠 만큼 어렵고 무슨 말이지 도통 모르겠는 철학적 말들을 쏟아내는 통에 이 책은 추천하지 않는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우리 모두 삶에 대한 정신 무장을 강화시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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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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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세상의 권위와 편견으로 내리찍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감상을 보통 이렇게 정리하지 않을까. 조금 허전하긴 하지만.

 

 주인공 한스의 이야기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성장기 소설로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다. 본인의 괴로움을 극대화시키고 싶었을까. 한스는 끝내 죽는다. ‘나의 괴로움은 떳떳한 것이었어. 똑똑히 봐. 당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한스를 죽게 한 헤세가 원망스럽다. 개빡친다.

 

 한스의 변모하는 모습이 나약한 변절자로 보였다. 그의 죽음은 같은 경험을 겪는 다른 수많은 친구들의 아픔을 비웃는 것 같았다. 한스의 고민과 방황을 받아 줄만큼 소설 속 세상은 여유롭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똑똑한 중산층 자식의 과욕에 불과하다! 배고픔을 모르니까 자유를 갈망하고, 풍요로움 속에 권태나 느끼며 죽음까지 간 거야. 감사한 줄 알고 공부나 계속 열심히 할 것이지. 멍청한 놈. 교장 선생님과 같은 생각일까? 아니, 더 삐뚠 생각인 것 같다. 한참 책의 주제와 별 상관없는 욕을 하며 책장을 덮는다. 그러다 문득 한스가 아직 무딘 소년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맞다, 너 애였구나. 여린 10대 소년. 청년이 되어봤자 사춘기가 막 지난 갓 청년. 한스의 이야기를 되짚는다.

 

 한스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어른들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자란다. 어렵게 입학한 수도원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괴짜 하일너를 만나고 그를 통해 물고기가 수면위로 뛰어올라 바깥세상 구경하듯 '잠깐' 자유를 느껴본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 한스는 다시 깊고 갑갑한 바다 속으로 다시 돌아온다. 한스는 청년이 되어 견습공이 되어서도 세상의 갈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자신의 열망과 의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산다. 사랑과 직업, 그 어느 것에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소년 시절 그가 충실히 살아온 세상의 갈망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었다.

 

 “폭력이란 이름은 물리적인 가해로만 불리는 게 아니다. ‘를 남에게 투영시켜 내 것으로 만드는 시도 자체도 무서운 폭력이며 살인에 이를 수도 있는 일이다.”

 

 헤세의 메시지는 뚜렷하다. 헤세는 분명한 전달을 위해 한스를 비극적인 상황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바보 같이 당하기만 하는 한스를 욕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삶을 얼른 되돌아보니 중산층 자식의 과욕이라는 한스에 대한 힐난도 폭력의 범주에 들어감을 깨달았다. 이해타산과 결론만으로 이야기를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이 폭력이 되어 한스를 평가했다. 헤세의 간교한 장난에 놀아난 것처럼 나 역시 똑같은 생각으로 한스를 강물에 빠뜨린 공범이 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세가 이야기의 어두운 면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여전히 속상한 일이다. (이 얄팍한 이유로 내가 저지른 폭력을 거두어들이고 싶지 않다!)

 

 ‘한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동의 찬가를 듣고 또 이해했다. 그것은 적어도 초보자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고, 산뜻한 매력을 풍기는 것이었다. 한스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존재와 인생이 커다란 선율에 어우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쯤 되면 누구나 희망의 불꽃을 본다. 열렬히 그를 응원하기 시작한다. 그래! 이제 뭔가 하겠어! 보여줘 굳건히 살아남는 모습을! 그러나 한스는 몇 페이지 넘어가서 꽥 하고, 그것도 술에 취해 죽는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헤세? 이왕 쓰는 거 밝게 쓰지 굳이 애를 죽이는 이유가 뭐야. 어렴풋이 예상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묘한 배신감이 느껴진다.

 

 한스의 죽음이 <수레바퀴 아래서>의 맥 빠지는 허전함을 부른 건 아닐까. 무언가 채워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고 그 의무감이 애초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성장이라는 공감대 안에 있다. 결국 의무감은 나를 포함한 세상 모두가 갖는다. 사실은 모두가 짊어져야 했지만 무거워 내팽개쳐버린 짐.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너 대장장이가 된 거니?”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을까. 씨발. 대장장이가 뭐. 엔지니어가 대세인거 몰라? 아이들을 내리찍긴 찍었나 보다. 여전히 허전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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