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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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세상의 권위와 편견으로 내리찍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감상을 보통 이렇게 정리하지 않을까. 조금 허전하긴 하지만.

 

 주인공 한스의 이야기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성장기 소설로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다. 본인의 괴로움을 극대화시키고 싶었을까. 한스는 끝내 죽는다. ‘나의 괴로움은 떳떳한 것이었어. 똑똑히 봐. 당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한스를 죽게 한 헤세가 원망스럽다. 개빡친다.

 

 한스의 변모하는 모습이 나약한 변절자로 보였다. 그의 죽음은 같은 경험을 겪는 다른 수많은 친구들의 아픔을 비웃는 것 같았다. 한스의 고민과 방황을 받아 줄만큼 소설 속 세상은 여유롭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똑똑한 중산층 자식의 과욕에 불과하다! 배고픔을 모르니까 자유를 갈망하고, 풍요로움 속에 권태나 느끼며 죽음까지 간 거야. 감사한 줄 알고 공부나 계속 열심히 할 것이지. 멍청한 놈. 교장 선생님과 같은 생각일까? 아니, 더 삐뚠 생각인 것 같다. 한참 책의 주제와 별 상관없는 욕을 하며 책장을 덮는다. 그러다 문득 한스가 아직 무딘 소년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맞다, 너 애였구나. 여린 10대 소년. 청년이 되어봤자 사춘기가 막 지난 갓 청년. 한스의 이야기를 되짚는다.

 

 한스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어른들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자란다. 어렵게 입학한 수도원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괴짜 하일너를 만나고 그를 통해 물고기가 수면위로 뛰어올라 바깥세상 구경하듯 '잠깐' 자유를 느껴본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 한스는 다시 깊고 갑갑한 바다 속으로 다시 돌아온다. 한스는 청년이 되어 견습공이 되어서도 세상의 갈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자신의 열망과 의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산다. 사랑과 직업, 그 어느 것에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소년 시절 그가 충실히 살아온 세상의 갈망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었다.

 

 “폭력이란 이름은 물리적인 가해로만 불리는 게 아니다. ‘를 남에게 투영시켜 내 것으로 만드는 시도 자체도 무서운 폭력이며 살인에 이를 수도 있는 일이다.”

 

 헤세의 메시지는 뚜렷하다. 헤세는 분명한 전달을 위해 한스를 비극적인 상황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바보 같이 당하기만 하는 한스를 욕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삶을 얼른 되돌아보니 중산층 자식의 과욕이라는 한스에 대한 힐난도 폭력의 범주에 들어감을 깨달았다. 이해타산과 결론만으로 이야기를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이 폭력이 되어 한스를 평가했다. 헤세의 간교한 장난에 놀아난 것처럼 나 역시 똑같은 생각으로 한스를 강물에 빠뜨린 공범이 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세가 이야기의 어두운 면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여전히 속상한 일이다. (이 얄팍한 이유로 내가 저지른 폭력을 거두어들이고 싶지 않다!)

 

 ‘한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동의 찬가를 듣고 또 이해했다. 그것은 적어도 초보자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고, 산뜻한 매력을 풍기는 것이었다. 한스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존재와 인생이 커다란 선율에 어우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쯤 되면 누구나 희망의 불꽃을 본다. 열렬히 그를 응원하기 시작한다. 그래! 이제 뭔가 하겠어! 보여줘 굳건히 살아남는 모습을! 그러나 한스는 몇 페이지 넘어가서 꽥 하고, 그것도 술에 취해 죽는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헤세? 이왕 쓰는 거 밝게 쓰지 굳이 애를 죽이는 이유가 뭐야. 어렴풋이 예상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묘한 배신감이 느껴진다.

 

 한스의 죽음이 <수레바퀴 아래서>의 맥 빠지는 허전함을 부른 건 아닐까. 무언가 채워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고 그 의무감이 애초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성장이라는 공감대 안에 있다. 결국 의무감은 나를 포함한 세상 모두가 갖는다. 사실은 모두가 짊어져야 했지만 무거워 내팽개쳐버린 짐.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너 대장장이가 된 거니?”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을까. 씨발. 대장장이가 뭐. 엔지니어가 대세인거 몰라? 아이들을 내리찍긴 찍었나 보다. 여전히 허전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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