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4대 희극 - 개역판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이태주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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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꿈>

 

 짝사랑 하던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샤프로 연습까지 하고 펜으로 꾹꾹 정성껏 적었지만 편지에는 내 감정의 반의반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많이 좋아했거나 머릿속에 든 단어가 적었거나, 아무튼 답답한 와중에 책꽂이의 ‘셰익스피어의 4대 희극’이 눈에 들어 왔다. <한여름밤의 꿈>을 펼치고 나는 몇몇 구절을 무릎을 탁 치며 편지 끄트머리에 옮겨 적었다. 내가 이런 걸 적었다니 정말 미쳤던 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오글거리는 짓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지구에서 가장 진지했다. 내 마음을 표현해 줄 언어를 만들어준 작가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럽게 편지의 대미를 적어 내려갔다. 하지만 편지의 도착을 시작으로 사랑의 꿈은 떠내려갔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사랑이 마법의 꽃물로 이루어지는 위대한 기적은 책 속에만 남았다. 현실은 마법의 꽃물보다는 쓰디쓴 소주였다.

이때 나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글이든 말이든 마음을 표현할 때는 반드시 독자와 청취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독자나 청취자가 될 의향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 상대방이 내 말과 마음을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땐 차라리 조용한 게 낫다. 그래도 표현 못해서 죽을 정도라면, 죽지 않을 만큼 표현해 버리는 게 낫긴 하겠지만. 답답한 마음으로 표현할 말을 도저히 찾지 못할 때 <한여름밤의 꿈>을 본다면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에서 마구 떨어지는 선물 꾸러미를 뜯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꼭 사랑 타령이 아니더라도 <한여름밤의 꿈>은 이야기 자체에 유희가 가득해 언제 읽어도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디미트리어스와 라이센더라는 두 남자가 허미아를 동시에 사랑한다. 또 디미트리어스는 오직 허미아를 사랑하지만, 헬레나는 디미트리어스를 사랑한다. 오직 허미아와 라이센더만이 서로를 사랑한다. 꼬여버린 이들의 사랑은 요정들의 장난으로 한 번 더 꼬인다. 두 남자가 순식간에 허미아가 아닌 헬레나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요정 : 여인을 제 곁에 눕히지도 않고. 요녀석. 단단히 혼 좀 나라, 네 눈에 마술의 꽃물을 발라주마. 네놈이 깨어나면 그때부터 두 번 다시 잘 수 없는 상사병이여. 그때까지는 잠재워 두자.

라이센더 : (깨어나며) 당신을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겠다! 투명한 헬레나! 이것은 자연의 마술이다. 디미트리어스는 어디 있는가? 아, 얼마나 더러운 이름인가, 그 이름은.

헬레나 : 라이센더, 그런 말 마세요, 그런 말 마세요. 그가 당신의 허미아를 사랑한다 해도 상관없잖아요? 여전히 허미아는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니 만족하세요.

라이센더 : 허미아에게 만족하라구? 안 돼, 나는 후회하고 있어. 그녀와 함께 지냈던 지루했던 그 세월을. 내가 사랑하고 있는 여인은 허미아가 아니라 헬레나야. 검은 까마귀를 흰 비둘기와 바꾸는 것은 당연하지 않아?

 

 갑자기 헬레나를 사랑하게 된 라이센더. 그렇게 꼬여버린 사랑 속에 네 사람이 모여 싸우는 장면은 황당하면서도 어쩜 이리 귀여운지.

 

허미아 : 또 작다고 하네! 키와 몸둥이가 작다는 타령뿐이구나. 나를 이토록 업신여기니 가만히 있을 수 없네. 요 계집애 맛 좀 봐라, 덮치자!

라이센더 : 꺼져라, 요 난쟁이야, 땅딸이, 꼬마, 콩알, 도토리.

 

 인간들의 사랑은 요정들의 장난으로 변덕스럽게 뒤바뀐다. 한 여름날 잠시 몽롱하게 다른 사랑에 푹 빠져버렸다가 이내 깨어나 원래의 사랑으로 돌아간다. 그들에겐 어찌되었든 행복한 일이다. 셰익스피어의 꿈같은 이야기 <한여름밤의 꿈>속에서 사랑은 지속된다. 현실도 마찬가지라면 소주 따위는 없어도 될 텐데.

 

디미트리어스 : 확실해? 우리가 깨어 있는 것이? 아직도 자면서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야.

 

 사랑에 대한 감정은 혼자만 생각하면 아주 낭만적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 같기도 하다. 사랑은 누군가와 둘이하기 때문에 굉장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어야 성공적인 사랑이 가능하겠지만, 뭐 어떤가 울적하게 혼자 즐겁게 낭만질 해보는 것도.

 

 ‘세상에도 희한한 광경이었어. 내가 본 꿈 말일세. 그 꿈이 어떤 꿈인지는 인간의 지혜로선 어림도 없다. 이 꿈을 해몽하겠다고 껍적대는 녀석들은 어리석은 당나귀 같은 놈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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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열린책들 세계문학 13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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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적 이야기

 

해적은 아주 질이 안 좋은 놈들이고, 다른 배를 약탈하는 고약한 도둑들이다. 약탈한 보물들은 실컫 쓰고도 너무 많아서 꼭 어느 섬에 숨겨둔다. 까먹을까봐 위치를 적어둔 보물 지도는 미련하게 어디 뒀다가 도둑맞는다. 덕분에 호킨스의 모험 이야기가 시작된다. ‘보물섬’의 시작은 음산한 공포 영화의 첫 장면 같다.

  

‘낡은 여관. 여관 주인의 아들 짐 호킨스. 짐과 가족들이 운영하는 여관에 해적으로 보이는 기괴한 사람이 머물렀다. 항상 화가 난 모습으로 콧김을 식식 뿜어 대는 이 늙은 해적은 무언가에 쫓겨 숨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는 낮에는 늘 초조하게 여관 주변을 살피면서도 밤만 되면 럼주를 미친 듯 퍼마시고는 칼을 뽑아 들어 탁자를 쿡쿡 찍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주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늙은 해적은 어느 날 결국 살해당한다. 틀림없이 또 다른 해적들의 짓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늙은 해적이 지니고 있던 지저분한 궤짝에 든 지도. 그들 몰래 지도를 손에 넣은 호킨스는 이것이 대 해적 플린트가 숨겨 놓은 보물지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친구들과 함께 선원을 모아 이 보물섬을 찾아 떠난다. 그러나 그가 모은 선원들 중에는 보물섬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고 몰래 탄 해적들이 끼어있었다.’

 

허름한 여관에서 시작되는 해적의 죽음. 숨죽이고 방안에 틀어박혀 악랄한 해적들의 잔인한 일대기를 엿보기로 한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 수록 이 악랄한 녀석들이 어딘가 엉뚱하고 멍청한 면을 다분히 보여주는 바람에 해적들이 때론 귀엽게 느껴진다. 단순 무식하게 보물만 밝히는 이 해적 무리들과 짐 호킨스의 용기 있는 한바탕 대결이 볼만하다. 그들은 어쨌든 한 배를 타고 보물섬으로의 모험을 함께 한다.

새로운 곳으로 ‘모험’을 떠난 다는 설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이나 ‘꿈’같은 단어와 결탁하여 그들이 무언가 대단한 일에 도전한다는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 같다. 똑같은 하루, 똑같은 학교생활, 직장생활에 찌들다 보면 마음속에 피로가 계속 쌓인다. 다 때려 치고 떠나고 싶다. 모험을 떠나자! 설사 해적이 될지라도 어쨌든 멀리 ‘큰 한 방’을 위해 떨쳐 나가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는 우리는 열심히 뼈가 빠지게 학점 따고 토익 점수 올리고 힘겹게 취직해서 매일 밤까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직장에 익숙해지고, 연애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모험아 영원히 안녕. 물론 이 ‘평범해 보이는’ 삶의 코스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자유로운 해적이 되어 모험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한번 즈음 품어 봤으리라. 해적 이야기는 그런 마음을 은근히 달래준다.

 

2. ‘보물섬’의 미친 매력자, 키다리 존 실버

 

소설 속 ‘키다리 존 실버’는 온 몸으로 모험을 받아내며 거침없이 살아 온 과거를 숨기는 대 해적으로 그려진다. 평범한 삶은커녕 목숨이라도 붙어 있는 게 다행일 것 같은 사람. 보물섬의 모험은 키다리 존 실버의 등장부터 더욱 숨 막히는 흥미진진함이 쏟아진다. 흔하디흔한 해적 설정의 모태가 된 ‘보물섬’의 실질적인 주인공 ‘키다리 존 실버’는 두말할 것도 없이 미친 매력을 가진 인물이다. 외다리임에도 불구하고 날쌘 몸놀림, 해적이라고 볼 수 없는 깔끔하고 밝은 미소, 물론 그것은 단지 거친 속내를 숨기기 위한 장치에 불과함, 언뜻 보면 착한 놈인지 나쁜 놈인지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최상급 포커페이스, 배와 바다를 훤히 꿰뚫는 전문지식은 기본에 순발력 있게 돌아가는 두뇌와 상대방의 혼을 쏙 빼놓는 교활한 언변까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야비한 꼼수만 쓰는 이 남자가 도대체 왜 매력적일까. 대단한 능력을 가진 자에 대한 단순한 흥미일까. “해적 정신을 갖자!” 이렇게 외치며 일 했다는 스티브 잡스에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과 비슷한 걸까. 아니면 무법자나 약탈자가 되고픈 욕망을 모두들 조금씩 숨기고 있기 때문일까.

내 생각엔 ‘야망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보는 재미인 것 같다. 어떤 대상에 대한 순수한 열망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톰이 저지르는 즐거운 페인트질 같은 연기와 비슷하다고 보면 맞으려나. 그가 보물섬으로 향하는 배에서 펼치는 야망은 배신과 무자비함으로 얼룩져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악당이니 빨리 없애버려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 우아하고 근사한 악당과 함께 어떤 착한 녀석들을 혼쭐 내 줄지 고민하며 럼주라도 잔뜩 퍼마시고픈 생각이 든다. ‘얼씨구 좋다, 럼주가 한 병!’ 나만 그럴까. ‘보물섬’을 읽으면 정말로 술이 확 당긴다. 취한 듯 악당과 함께 모험으로의 몽상에 젖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3. ‘보물섬’을 다녀와서

 

보물섬은 인물들의 상황과 대사들이 위트가 넘친다. 또 독특하고 귀엽게(?) 악랄한 해적들 덕분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짐 호킨스-리브지 의사로 번갈아가며 어른과 아이 두 가지 시각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구조로 그들의 모험을 더욱 다채롭게 맛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키다리 존 실버의 능청스러운 교활함에 호킨스가 분노하는 장면들은 놓치기 아깝다.

 

‘이 지독한 악당들이 내게 늘 해오던 것과 똑같은 사탕발림을 다른 사람에게 하는 걸 들었을 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마음 같아서는 당장 사과 통을 박차고 나가 실버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실버는 누가 엿들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계속 지껄였다.’

 

‘캐리비안의 해적’과 ‘원피스’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인기를 끌었다. 원피스야 원작이 일본이고, 캐리비안의 해적은 특히 일본에서 굉장한 인기를 누렸는데 아주 단순하고 생각했을 때 이건 아마도 영국과 일본이라는 같은 ‘섬나라’가 갖는 동질감과 바다로의 모험에 대한 동경 따위가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꽤 섬나라’이니 내가 이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도 비슷한 이유라고 우겨 본다. 배 멀미 안하는 배가 있다면, 바다로 떠나리라!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주인공 잭 스페로우가 사과를 한입 베어 먹는 장면, 원피스에서 루피가 사과 통을 박차고 등장하는 모습은 분명 ‘보물섬’에서 시작된 모티브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세우고 해적정신을 강조한 연유도 여기서 시작된 것일까. 사과 한입 베어 물면 뭔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다로 모험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배 멀미 안하는 배가 어디 있겠나.

나는 개인적으로 캐리비안의 해적, 원피스, 보물섬 이 세 작품의 열렬한 팬이라 그런지 늘 신비로운 모험에 대한 동경심이 있다. 어딘가에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고 상상하고 그래서 지금 우울한 일들이 그곳에 가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힘을 얻기도 한다. 오늘 ‘보물섬’을 다시 읽으니 또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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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세계사 - 오드리 헵번에서 페리클레스까지, 내 곁에 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세계사'
조한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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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 속 인물들의 짤막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둘러보면 알겠지만 글쓴이의 뚜렷하고 확고한 정치적 성향과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마지막 한 두 문장에서 반드시 감상과 의문을 넣었다. 작고 가벼워 금방 읽힌다. 머리말에서 미리 밝히지만 우리 사회의 비민주적 요인을 꼬집는 것이 책의 한 갈래이다. 한편으론 이렇게 많은 역사 인물들을 보면서도 항상 같은 생각으로 결론지어진다는 느낌을 받아 글쓴이는 지나치게 냉소적인 사람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했다. 세계사의 수많은 역사인물에서 지금 사회의 비민주적요소를 뽑아 비판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피곤하다. 세계사의 인물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하나의 주제로 모이는 과정이라기보다는 한 가지 주제를 위해 세계사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찾아내어 봤지? 얼마나 비민주적인지!’하고 외치는 듯 해 피곤했다. 물론 역시 머리말에 우리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인물을 선정했다고 밝힌다.


 지나친 생각일지 모르지만 세계사의 모든 인물들을 비민주라는 냉소적 주제와 결부시키는 일은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와할랄 네루의 세계사 편력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이라기보다 그 책을 쓰게 된 아버지와 딸의 낭만적인 이야기 자체가 매력적인데 여기서 현 정권의 비판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나에게는 피곤한 일이었다. 그건 그거고, 하여간 세계사 이야기를 곁에 두는 건 매력적이고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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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창비시선 172
신경림 지음 / 창비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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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크기'로 비교하자면 영화나 드라마는 몇 기가바이트가 넘지만, 사진이나 글은 기껏해야 몇 메가바이트 정도거나 1메가바이트가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정말 엄청나게 작은 것이다. 그런데 그 사진 한 장이나 짧은 글 한 두 문장에서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큰 감동을 받을 때가 있으니, 아마도 차지하는 부피가 크다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정도까지 큰 건 아닌가 보다. 듣기보다 말하고 싶을 때나 보기보다 손짓 몸짓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부피가 작은 시를 찾는다. 시집은 듬성듬성 빈 책장과 여유 있는 문장 뒤 공백 덕분에 하고 싶은 말들을 털어 놓기가 한결 수월하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보면, 조금만 세월이 흐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간직하는 '엄마'에 대한 애환을 떠올릴 수 있다. 수록된 작품들은 어려운 수사나 애써 생각해야 떠오르는 은유 같은 게 없어 읽기에 편하다. ‘내게는 이것이 다시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할머니의 기억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수준 높은 요리사였다. 할머니 댁에서 먹는 밥상에는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많은 반찬이 얹혀 나왔다. 모든 반찬은 빠짐없이, 놀랄 만큼 맛있었다. 할머니는 나와 아빠에게는 항상 공기 밥 두 그릇을 내밀었다. 남자는 많이 먹어야지. 할머니는 내가 많이 먹는 것을 참 좋아했다. 밥을 다 먹으면 할머니는 말없이 과일을 깎았다. 제발 와서 같이 먹자고 해도 웬만해선 부엌을 떠나지 않고 웅크리고 앉아 과일을 계속 깎았다. 그 와중에도 더 먹어라, 더 먹어라 했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내게 밥과 반찬 더 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서 같이 먹기나 해요. 그러다 손 베일라.”

 할아버지가 그런 할머니를 계속 불렀다.

그럴 리가 있겠소.”

 어림없다는 듯 할머니는 과일을 계속 깎았다. 할머니가 할 일을 다 하시고, 마침내 과일을 먹을 때에야 할머니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할머니 얼굴에는 주름이 많았다. 주름진 얼굴엔 항상 환한 웃음꽃이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먹고 있는 동안에도 또 먹고 싶은 게 있는지 자꾸만 귀찮게 물었다. 할머니는 부엌일의 장인이었다. 외모조차 작고 소박하셨지만 당신의 하는 일 모두에는 깊이와 감동이 배어있었다.

 내가 군대에서 병장을 달았을 무렵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주신 밥과 반찬들, 과일들과 할머니 목소리와 환한 웃음들이 다 큰 군인을 참 고약하게 울렸다. 장례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철없이 혼자 슬퍼하느라 엄마의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전역을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나는 다 큰 성인이었고 이제는 세상도 꽤 볼 줄 알았다.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에서 할머니는 금방 잊혀졌다.

 어버이날이 다가올 때 즈음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읽었다. 문득 집에 올 때마다 엄마가 과일을 깎아 주던 모습, 반찬을 채워주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엄마 얼굴에는 틀림없이 할머니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나도 엄마와 할머니가 내 세상의 전부가 됨을 느꼈다. 회사에서 머리를 싸매고 작성하는 보고서 따위는 금방 잊혀졌다. 뉴스를 보며 분개하던 세상의 일들이나 책에서 던져 준 고상한 질문들에 대한 고민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주말이면 이어지던 여유 있는 술자리와 친구들도 그 순간 싹 잊혀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엄마는 할머니를 무척 닮았던 것이다. 반찬을 다 먹기도 전에 역시나 귀찮게 시리 자꾸만 다시 또 채워준다. 꼭꼭 씹어 먹는다. 맛있다. 엄마도 수준 높은 요리사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읽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수록된 작품 중에는 시대적 상황 때문인지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해할 수 있는 추억이 많았다. 책장을 덮으니 몸이 맑고 깨끗해진 느낌이다. 시인들의 이야기란 이런 맛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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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차 월든 - 잉여 청춘의 학자금 상환 분투기
켄 일구나스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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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멀쩡한 대학을 졸업한 켄 일구나스는 3만 달러가 넘는 빚과 취업하는데 그 닥 필요치 않은 학위 종이 문서하나가 달랑 남았다.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알래스카의 국립공원에서 모험에 가까운 일을 한다.

 

2. 유명 대학의 대학원에 입학하고 입학과 동시에 다시는 빚을 지지 않기 위해봉고차 생활을 시작한다. 성공적으로 봉고차 생활을 이어 나가며 마침내 그는 빚을 지지 않은 채 대학원을 졸업한다.

 

 그의 행적은 단순하다. 여기저기 모험을 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행동이라면 봉고차에서 살았다는 것. 그리고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무엇보다자유를 얻었다. 정신없는 현대 생활에 찌든 우리에게 일상에서 일탈한,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주제로 하는 책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준다.

이유도 모르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지 말자. 잠깐 생각 좀 하자. 자유가 뭔지

  그리고는 자신의 팔자 좋은또는 위기를 극복한이야기를 마음껏 풀어 놓는다. 보통 이런 위이야기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진중한 문체로 길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켄은 능청스럽게 말한다. 친구와 연인, 그리고 자신의 지저분한 생활모습까지 낱낱이 공개하며.

 

 사실 그가 학자금 대출로 허덕이며 했던 중요한 행동이 대학원 입학이라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어쩔 수 없이 대학이 주는 사회적 굴레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았다. 유명 대학원을 졸업하지 못했다면? 졸업 연설을 하지 않았다면? 이 책이 출판은 되었을까? 봉고차에서 살았던 노숙자의 삶을 누군가 읽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각이 깨어있다는 것은 충분히 느껴진다그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졌다. 그것이 대학원 때문이든 봉고차 생활 때문에 생겼든 중요하지 않다. 단지 이게 부럽다. 청년의 시기에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 그것을 글로 정리해 두었다는 것. 인문학을 배우는 의미, 부와 가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누리는 자신의 위치, 위대한 자연과 비교했을 때 인간의 초라한 모습들. 일종의 자신만의 철학인데, 나는 그의 생각이 좋다. 겸손하고 진지할 것, 하지만 유머를 잃지 말 것. 때로는 밝히며욕망에 휘둘리다가도 다시 돌아올 것, 가난()을 불행이 아닌 불편함정도로 여유롭게 넘길 것 등.

 

 대학에 들어서거나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하루하루를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안한다고 느낀다. 생각을 안 한다. 학교나 회사가 주는 생활대로 그냥 하면 되니까. 회사 업무에 시달리며, 책 보고 글을 쓰고, 웹 서핑 중 우연히 뜨는 살색사진에 침 흘리고, 야식을 먹고, 친구와 술을 마시며 내가 잘난 놈이라고 탁자를 탕탕 치는 내 하루에는- 고민이 정말 없었을까? 내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은 걸까? 아니 많았다. 생각을 잘 안한 게 아니라 생각한 것을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알래스카에 간 게 아니니까, 나는 봉고차에 사는 게 아니고 평범해서(그렇게 생각하니까) 고민을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다. 또는 귀찮다거나. 그래서 책을 출판한다고 생각하고 내 인생(?)을 짤막하게 기록해 보았다. 생각보다 다채롭고 유쾌하며 들춰보니 슬픈 일도 많았다. 물론 나만의 강한 정체성이 생기거나 뭔가 훤히 밝혀 진 것 같지는 않다. 켄 일구나스처럼 봉고차를 사서 최소한의 소비를 해볼까 하는 생각은 더욱 들지 않았다.

 대신 위안을 얻었다. 봉고차 생활을 해보고 느낀 점을 알았으니 나는 봉고차 생활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래도 충분히 대학이 주는 의무와 책임()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직업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하고 있으니 곧 나만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많은 것을 깨달았으니, 내일은 출근할 때 조금은 덜 피곤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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