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창비시선 172
신경림 지음 / 창비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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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크기'로 비교하자면 영화나 드라마는 몇 기가바이트가 넘지만, 사진이나 글은 기껏해야 몇 메가바이트 정도거나 1메가바이트가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정말 엄청나게 작은 것이다. 그런데 그 사진 한 장이나 짧은 글 한 두 문장에서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큰 감동을 받을 때가 있으니, 아마도 차지하는 부피가 크다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정도까지 큰 건 아닌가 보다. 듣기보다 말하고 싶을 때나 보기보다 손짓 몸짓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부피가 작은 시를 찾는다. 시집은 듬성듬성 빈 책장과 여유 있는 문장 뒤 공백 덕분에 하고 싶은 말들을 털어 놓기가 한결 수월하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보면, 조금만 세월이 흐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간직하는 '엄마'에 대한 애환을 떠올릴 수 있다. 수록된 작품들은 어려운 수사나 애써 생각해야 떠오르는 은유 같은 게 없어 읽기에 편하다. ‘내게는 이것이 다시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할머니의 기억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수준 높은 요리사였다. 할머니 댁에서 먹는 밥상에는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많은 반찬이 얹혀 나왔다. 모든 반찬은 빠짐없이, 놀랄 만큼 맛있었다. 할머니는 나와 아빠에게는 항상 공기 밥 두 그릇을 내밀었다. 남자는 많이 먹어야지. 할머니는 내가 많이 먹는 것을 참 좋아했다. 밥을 다 먹으면 할머니는 말없이 과일을 깎았다. 제발 와서 같이 먹자고 해도 웬만해선 부엌을 떠나지 않고 웅크리고 앉아 과일을 계속 깎았다. 그 와중에도 더 먹어라, 더 먹어라 했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내게 밥과 반찬 더 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서 같이 먹기나 해요. 그러다 손 베일라.”

 할아버지가 그런 할머니를 계속 불렀다.

그럴 리가 있겠소.”

 어림없다는 듯 할머니는 과일을 계속 깎았다. 할머니가 할 일을 다 하시고, 마침내 과일을 먹을 때에야 할머니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할머니 얼굴에는 주름이 많았다. 주름진 얼굴엔 항상 환한 웃음꽃이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먹고 있는 동안에도 또 먹고 싶은 게 있는지 자꾸만 귀찮게 물었다. 할머니는 부엌일의 장인이었다. 외모조차 작고 소박하셨지만 당신의 하는 일 모두에는 깊이와 감동이 배어있었다.

 내가 군대에서 병장을 달았을 무렵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주신 밥과 반찬들, 과일들과 할머니 목소리와 환한 웃음들이 다 큰 군인을 참 고약하게 울렸다. 장례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철없이 혼자 슬퍼하느라 엄마의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전역을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나는 다 큰 성인이었고 이제는 세상도 꽤 볼 줄 알았다.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에서 할머니는 금방 잊혀졌다.

 어버이날이 다가올 때 즈음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읽었다. 문득 집에 올 때마다 엄마가 과일을 깎아 주던 모습, 반찬을 채워주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엄마 얼굴에는 틀림없이 할머니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나도 엄마와 할머니가 내 세상의 전부가 됨을 느꼈다. 회사에서 머리를 싸매고 작성하는 보고서 따위는 금방 잊혀졌다. 뉴스를 보며 분개하던 세상의 일들이나 책에서 던져 준 고상한 질문들에 대한 고민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주말이면 이어지던 여유 있는 술자리와 친구들도 그 순간 싹 잊혀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엄마는 할머니를 무척 닮았던 것이다. 반찬을 다 먹기도 전에 역시나 귀찮게 시리 자꾸만 다시 또 채워준다. 꼭꼭 씹어 먹는다. 맛있다. 엄마도 수준 높은 요리사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읽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수록된 작품 중에는 시대적 상황 때문인지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해할 수 있는 추억이 많았다. 책장을 덮으니 몸이 맑고 깨끗해진 느낌이다. 시인들의 이야기란 이런 맛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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