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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차 월든 - 잉여 청춘의 학자금 상환 분투기
켄 일구나스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1. 멀쩡한 대학을 졸업한 켄 일구나스는 3만 달러가 넘는 빚과 취업하는데 그 닥 필요치 않은 학위 종이 문서하나가 달랑 남았다.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알래스카의 국립공원에서 모험에 가까운 일을 한다.
2. 유명 대학의 대학원에 입학하고 입학과 동시에 ‘다시는 빚을 지지 않기 위해’ 봉고차 생활을 시작한다. 성공적으로 봉고차 생활을 이어 나가며 마침내 그는 빚을 지지 않은 채 대학원을 졸업한다.
그의 행적은 단순하다. 여기저기 모험을 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행동이라면 봉고차에서 살았다는 것. 그리고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무엇보다‘자유’를 얻었다. 정신없는 현대 생활에 찌든 우리에게 ‘일상에서 일탈한,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주제로 하는 책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준다.
‘이유도 모르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지 말자. 잠깐 생각 좀 하자. 자유가 뭔지’
그리고는 자신의 ‘팔자 좋은’또는 ‘위기를 극복한’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 놓는다. 보통 이런 위이야기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진중한 문체로 길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켄은 능청스럽게 말한다. 친구와 연인, 그리고 자신의 지저분한 생활모습까지 낱낱이 공개하며.
사실 그가 학자금 대출로 허덕이며 했던 중요한 행동이 ‘대학원 입학’이라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어쩔 수 없이 대학이 주는 사회적 굴레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았다. 유명 대학원을 졸업하지 못했다면? 졸업 연설을 하지 않았다면? 이 책이 출판은 되었을까? 봉고차에서 살았던 노숙자의 삶을 누군가 읽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각이 깨어있다는 것은 충분히 느껴진다. 그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졌다. 그것이 대학원 때문이든 봉고차 생활 때문에 생겼든 중요하지 않다. 단지 이게 부럽다. 청년의 시기에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 그것을 글로 정리해 두었다는 것. 인문학을 배우는 의미, 부와 가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누리는 자신의 위치, 위대한 자연과 비교했을 때 인간의 초라한 모습들. 일종의 자신만의 철학인데, 나는 그의 생각이 좋다. 겸손하고 진지할 것, 하지만 유머를 잃지 말 것. 때로는 ‘밝히며’ 욕망에 휘둘리다가도 다시 돌아올 것, 가난(빚)을 불행이 아닌 불편함정도로 여유롭게 넘길 것 등.
대학에 들어서거나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하루하루를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안한다고 느낀다. 생각을 안 한다. 학교나 회사가 주는 생활대로 그냥 하면 되니까. 회사 업무에 시달리며, 책 보고 글을 쓰고, 웹 서핑 중 우연히 뜨는 살색사진에 침 흘리고, 야식을 먹고, 친구와 술을 마시며 내가 잘난 놈이라고 탁자를 탕탕 치는 내 하루에는- 고민이 정말 없었을까? 내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은 걸까? 아니 많았다. 생각을 잘 안한 게 아니라 생각한 것을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알래스카에 간 게 아니니까, 나는 봉고차에 사는 게 아니고 평범해서(그렇게 생각하니까) 고민을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다. 또는 귀찮다거나. 그래서 책을 출판한다고 생각하고 내 인생(?)을 짤막하게 기록해 보았다. 생각보다 다채롭고 유쾌하며 들춰보니 슬픈 일도 많았다. 물론 나만의 강한 정체성이 생기거나 뭔가 훤히 밝혀 진 것 같지는 않다. 켄 일구나스처럼 봉고차를 사서 최소한의 소비를 해볼까 하는 생각은 더욱 들지 않았다.
대신 위안을 얻었다. 봉고차 생활을 해보고 느낀 점을 알았으니 나는 봉고차 생활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래도 충분히 대학이 주는 의무와 책임(빚)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직업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하고 있으니 곧 나만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것을 깨달았으니, 내일은 출근할 때 조금은 덜 피곤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