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한정판 더블 커버 에디션)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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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연애와 그후의 일상>

 

 무척 어렵고 삐걱거린 사랑이 있었다. 울적한 맘에 친한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웃기지? 사랑이 원래 웃기는 거야.” 이 짧은 말에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맞아, 그냥 사랑이 웃긴 거야!' 그렇게 현실을 사랑이란 단어에 툭 떠밀어 버리니 맘이 한결 후련했다. 하지만 내게 이 웃기는사랑을 추적해 보는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사랑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영역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랑도 모든 방향의 숫자의 합을 맞추는 마방진 풀듯 머리를 쥐어짜 풀어야 한다. 사랑이 웃긴 것도 명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낭만적 연애와 그후의 일상>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한 무의식적인 노력 중 하나였다.

 

  <낭만적 연애와 그후의 일상>은 사랑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인생의 사용설명서다. 연애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 매듭지어지고, 그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여준다. 경험치의 한계 때문일까, 첫 챕터 '매혹'에 관심이 쏠린다. 라비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과학수사를 하듯 그녀를 살피고, 그들의 감정이 쌍방인지를 알아보는 중요한 도전이 이어지고, 그리고 식물원에서의 첫키스. , 알랭드 보통, 좋아, 계속해, 계속해! 라비와 커스틴의 연애가 증폭되는 과정은 재미있다 못해 짜릿하다.

 

 ‘첫 순간을 맞이한 뒤로 3주가 흘렀다. 라비는 손가락으로 커스틴의 머리를 거칠게 훑어 내린다. 그녀는 머릿짓과 여린 신음으로 더 많이, 제발 더 세게 해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친다... 침대에서는-평소에는 그토록 위험한-폭력이 더 이상 위험 요소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약간의 폭력을 안전하게 쓸 수 있고, 그로 인해 어느 쪽도 불행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초고속으로(내가 느끼기엔) 결혼까지 성공한다. 사랑은 지속되고, 아이가 생긴다. 이때부터 지루한 결혼생활과 아이들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루할 만큼 일상적이고, 그래서 성숙해질 시간을 갖게 되는 중간 이야기.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치열함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이야기. 그들은 잘 웃지 않는다. 일에, 사랑에, 아이들에게 치인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그 유명한 아무것도 아냐로 대답하는 라비의 모습이 안쓰럽다. 이 토라짐의 시간들은 성숙함을 부른다. 낭만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상으로 치부된다.

 

 이 후, 일상은 순식간에 외도로 이어진다. 사랑과 철저히 구분되는 욕망, 아니 일부러 구분 짓지 않으려는 욕망으로 얼룩진 외도는 찬성론과 반대론으로 그들의 사랑을 확연하게 긋는다. 이 찬반론으로 알랭드 보통은 일반적이면서도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

 

 낭만주의를 넘은 성숙함에 이르러, 그들은 마침내 결혼할 준비가 된다. 미래를 그리는 마지막 영영에서 알랭 드 보통은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함께라면 인생이 무엇을 요구하든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겠다고 느낀다.’는 완벽히 평범한 진리를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의 러브스토리로 완성시킨다.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낭만적 연애를 넘어 우리에게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향성을 준다. 덩달아 기분이 좋다. 이런 기쁨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나! 마방진의 한 줄이 꿰맞춰진 상쾌한 느낌이다. 저자의 메시지를 다시 둘러본다. 제대로 되짚어 보면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 그래도 여기저기 반짝인다. 사진 속의 반짝이는 작가의 빛나는 머리가 떠오른다. 복잡해하지말지어다. 사랑은 웃기는 거니까. 아무튼 확실한 건 소유 하는 게 아니라니까. 미래를 그리기에 충분한 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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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의 시대 - 새로운 중국의 부, 진실, 믿음
에번 오스노스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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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그에게는 그것이 필생의 사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그럼에도 양극화를 초래했던 문제였으며 이제는 자신이 찾은 해답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p.216

 

타이완에서 중국으로 헤엄친 군인 란이푸의 고민이었다. 그 고민은 중국 전역의 고민이었고, 중국이 변화하는 핵심소재였다. 책은 그 안에서도 벌어지는 나라의 모습을 개인들의 삶의 흔적을 자세히 보여줌으로써 추적해 본다. 사명과 해방이라는 기치아래 중국은 놀랍도록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한편으로 공산당 정권의 무력아래 무차별적인 탄압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 안에서 목소리를 내려고 싸웠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나 작가 한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들의 일대기는 우리나라 독재 정권 시절의 모습(물론 내가 직접 겪었을 리 만무하고 책으로만 경험한)과 비슷해 낯설지만은 않다.

 

중국은 세 사람의 의견에 따라 움직인다는 말처럼 중국은 공산당이라는 막강한 사회주의 체제가 구축되어 있어 무엇이든 대규모로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놀라운 나라라고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개인들이 어떤 소소한 삶의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예상치 못한 억압과 투쟁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야망의 시대>는 단순히 중국이라는 대국의 야망을 조명할 거라 생각하고 삼국지를 집듯 책을 들었던 내게 그런 면에서 매우 신선했다. 책은 삼국지보다는 삼중문이라는 한한의 소설을 소개했다. 교육과 권위에 대한 무명작가의 통렬하고 현실적인 풍자를 그린 소설. 그리고 그것을 국가 차원에서 막으려 했다는 내용은 중국의 야망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글쓴이가 북한에 가서 글을 썼어도 내용은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이라는 절대적인 거대 권력에 순응할 것인가 반항할 것인가를 두고 어쩌면 인생을 건 판단을 해야만 했을 인민들의 모습은 비슷한 체제 안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민들로 이루어진 중국과 북한은 나에게는 지구 반대편의 미국보다 오히려 먼 나라였다. 그런데 이 <야망의 시대>를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도 중국과 북한이 오히려 우리와 아주 가까운 나라이며(실제로 그렇지만), 사실은 거의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솟구쳐 올랐다. 세상일의 전부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최근 내 주변의 일에서만큼은 우리나라도 거대 권력을 향한 순응과 반항을 두고 목숨을 건 모험을 해야 하는 나라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구체적으로 무엇에서 그렇게 느꼈느냐고 묻는다면, 짧은 식견에 대답할 길이 없다는 푸념밖에 할 말은 없다.

 

<야망의 시대>에서 나는 시대보다는 야망이라는 단어에 먼저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한 개인의 야망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의 문제가 시대를 만들어 간다는 믿음으로 발전한 것이며, 이것 또한 글쓴이의 또 다른 지적은 아닐까 한다. ‘개인적인 삶의 고민과 야망이 그 시대의 흐름으로 향한다는 전제를 떠올리고 보니 하찮은내 안의 자잘한 고민들이 싹 뭉개지는 쾌감을 어부지리로 얻기도 했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야망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고, 그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어떠한 대가도 감수할 사람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그가 적절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냉엄한 진실을 남긴 중국의 붐을 이끌어 냈던 원동력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p.480

 

그래서 마지막 챕터 탈출의 맹인이자 독학 변호사인 천광천의 망명을 그린 이야기, 냉엄한 진실바로 직전의 이 구절이 내게는 책의 결말로 느껴졌다. 냉엄한 진실에 담긴 의미와 여기에 희생된 개인들의 묵묵한 뒷받침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겠지만, 어쨌든 국가적 상황이나 정치적 성향 따위를 떠나 나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야망을’, ‘적절한 선택으로’, ‘바로 그런 사람들이이라는 단어들이 퍽 매력적으로 다가와 잔잔하게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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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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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의 대열에서 아줌마의 대열로 마지못해 넘어가고 있는서른아홉의 주인공 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녀의 사랑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시몽과 로제라는 극명한 차이를 가진 남자들과 동시에 사랑에 빠지는 폴의 사랑은 양다리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순수하다. 그런 폴의 모습이 영악함을 넘어 표독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유로운 사랑과 순수한 사랑의 오묘한 경계를 긋는 이 이야기는 사실들만 따지고 보면 사랑과 전쟁의 원본 줄거리로 삼기에 손색없는 막장의 끝을 보여준다.

 

서른아홉의 이혼녀 폴. 그녀의 애인 로제. 그는 폴 몰래 다른 젊은 여자와 잠자리를 즐기는 남자다. 그리고 폴은 자신에게 일을 맡긴 고객의 아들을 알게 되고, 그녀가 스물다섯 된 그 아들 시몽과 서로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폴과 그의 애인 로제, 그리고 폴의 또 다른 애인 시몽. 삼각관계인 그들이 함께 식탁에 모여 식사를 하면서 발레 극을 바라보는 마지막 모습에 이르렀을 때는 마치 작가의 뻔뻔스러운 뚝심을 고스란히 보는 것만 같았다.

 

폴에게 빠진 스물다섯의 청년 시몽이 그녀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쪽지를 남기기 전까지 나는 이야기가 그들만의 로맨틱으로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폴은 로제와의 끈을 놓지 않고 두 남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자유롭지만 순수한사랑을 이어간다. 책을 읽으며 열렬한 사랑을 바치는 불쌍한 시몽을 어쩔 수 없이 응원하게 되는 태도는 뒤로 한 채, 주인공 폴의 감정에 나도 모르게 몰입되곤 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살고 있지 않은가. 마침내 그녀는 나이 차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게 되었다. “십 년 뒤에도 그가 여전히 나를 사랑할까?”라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하지 않았다. 십 년 뒤에 그녀는 혼자가 되거나 로제와 함께 지내게 되리라. 그녀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집요하게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거듭 속삭이고 있었다. 스스로도 속수무책인 그런 이중성을 떠올릴 때면 시몽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배가되었다. “나의 희생양. 나의 사랑스러운 희생양. 나의 귀여운 시몽!” 생전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불가피하게 상처 입히지 않을 수 없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데에서 오는 끔찍한 쾌감을 경험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끝까지 감상하면 이런 폴의 이중적인 애정과 사랑을 비난할 마음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작가의 뚝심에 굴복한 결과라면 조금 억울할 듯 하고, 단지 사랑의 이중성은 누구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라는 게 낫겠다. 순식간에 불타오르는 사랑과 정신적이고 지속적인 사랑의 대비 같은 것이 오락가락해서 마치 누구라도 그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혼란을 겪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 그렇게 폴에 대한 변명을 꽤 유쾌한 기분으로 받아들였다.

 

작품처럼 나이와 결혼의 굴레, 사랑, 또는 섹스라는 단어들이 혼합되고 뒤엉키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닐지라도, 사랑은 우리에게 이중성을 주기에 충분한 재료다. 짝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틀림없이 있었다가도, 어느 날 우연히 지나치는 가게 종업원이 웃음을 한가득 띠면서 나에게 생긋생긋 말하는 모습을 보고 착각에 겨워 가슴이 콩닥거렸을 때 나는 내 초라하고 어이없는 이중성에 치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순간이나마 그때 그 기쁨은 가히 사랑이라 부를 만큼 혼란스럽기에 충분했었다.

 

모든 이들이 이런 감정들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서도 아주 잠시나마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그런 순간으로부터 말이다. 누군가에게 그런 상황조차 전혀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황당하고, 예측 불가능한, 그래서 때로는 덧없기도 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기계적인 퍼즐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너를 사랑해라는 말이 도대체 어떤 과정의 결과로 언제, 어떤 순간에 뱉어 내는 것일지는 사실 경험에 의해 가늠할 뿐이 아닌가.

 

작가가 어딘가 더 멋진 설명이나 실마리를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에 브람스의 콘체르토를 들어본다.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만, 그래도 주인공 폴을 사랑했던 시몽처럼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그 사람이 나를 잠깐이라도 사랑해주는 헛된 상상에 빠지기엔 충분한 곡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비록 비극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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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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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를 암살하는 이야기. 편의점 직원과 이발사가 무섭다. 초코바가 생각이 난다. 너무 진지한 것이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사실적이고 세심한 묘사가 볼만하다. 하지만, 지루하다면 지루할 수도. 작은 것도 장엄하게 만드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이들이 좋아할 만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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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박에스더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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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가치가 공존하는 문화,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문화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저자는 폭탄주 문화를 비난하지만 책의 주장은 폭탄주를 말아 목구멍에 탁 털어 넣듯 화끈하고 강력하다. 여왕개미만 따라다니는 개미 따위는 되지 말란다. 아직도 이러고들 있네. 늬들 개미냐? 이런 뉘앙스. 저자는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사회에 주축이 되면서 오는 수직형 구조, 전통적인 유교관의 장유유서, '하라는 대로만' 했던 독재 정권의 잔재 등이 대한민국의 가치 공존의 다양성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또 외국에서는 한인끼리 뭉치면서 한국 내의 이주민들은 배척하고 동정어린 시선으로 보는 단일 민족을 빙자한 획일적인 가치 문화를 비판하고, 나아가 이런 사고방식으로 삐뚤게 숨겨지는 ‘성’에 대한 위선까지 꼬집는다.

 

 이주민 센터에서 일할 때가 떠올랐다. 많은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동질감을 갖기란 어려웠다. 더구나 대부분 이혼의 아픔, 또는 경제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큰 상처를 안고 있던 사람들이라 그들에게 나도 모르게 동정심을 가졌다. 한국인만 한국에서 잘 살 수 있다는 관념이 내게도 있었다. 어느 날 러시아 국적의 조선족 분이 나에게 물었다. 한국에는 왜 모텔이 이렇게 많으냐고. 물음의 핵심은 한국은 왜 연인간의 애정을 밖에서는 전혀 표현하지 않으면서 모텔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만 표현하느냐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밖에서도 잘 표현 하나요? 라고 물으니 러시아는 공원에서도 자연스레 포옹도 하고 키스도 한단다. 그건 저희도 그래요. 단, 으슥하고 숲이 우거진 공원이라면. 대놓고 드러내면 뭔가 죄를 짓는 것 같다는 이 생각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고민해본 적도 없다. 당연히 맞는 거였다. 도덕적 문제나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애초에 다른 무엇이 들어올 수 없는 철옹성 같은 벽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답답함의 근원도 이와 같으리라. 물론 그 답답함은 오히려 그것들을 당당하고 정확하게 알아야 그 진짜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온다. 피부색이 다르지만 그저 함께 사는 이들이니 특별히 연민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 그냥 같이 살면 된다. 한국이라고 한국인만이 유용한 가치가 아니다. 사랑의 표현은 사랑하는 이들끼리 책임을 갖고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것을 죄 마냥 숨길 필요는 없다. 자꾸 숨기면 성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어려워질 뿐이다. 하나의 가치만을 추구하는 것은 다른 가치들을 숨기고 덮으려하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 그녀는 획일화 속에 얻는 것보다는 이제 그것 때문에 잃을 것이 많은 시대가 왔음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획일적인 가치는 뚜렷한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노력으로 중간이라도 가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하는데, 자신의 꿈이 뭔지​ 모르는 채 토익 공부만 열심히 해도 작은 직장이라도 구할 수 있는 상황이 그렇다. 죽을 때까지 한국인만 상대하는 직종도 토익을 보니까 말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다양한 가치 따위가 기억도 나지 않게 하는 원 스탠다드, 확실한 위아래, 왕권의 환상을 가진 사회구조가 우연히 누군가를 구하기도 하는 것이다. 모두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코스가 없다면 확고한 생각이 없는 개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다른 길로 갈 자신이 없다. 일개미가 여왕개미만 쫓아다니면 적어도 무리에서 떨어지는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획일화에 찬성이다! 저자가 내 말을 듣는다면 비웃겠지. 게릴라전으로는 적군을 괴롭힐 수 있을 뿐 쓰러뜨릴 수는 없으니 정규전을 하라는 저자의 외침이 선명하게 들리지만 모른 척 한다. 훌륭한 일개미인 나도 때로는 여왕개미의 뒷다리를 물어뜯고 싶을 때도 있지만, 감히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여왕개미님. 혹시 땅 파는 일 말고 저도 하늘을 날아볼 수 있을까요?"

 

 "일개미야, 미친 소리를 하는구나. 너는 날개도 없잖니. 열심히 땅을 파야지. 그게 네 일이란다."


 몰라서 묻나. 너무 오래 파니까 지쳐서 그러지. 너, 길가다 개미핥기나 만나라. 정규전에 자신 없는 일개미가 되어 소심하게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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