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박에스더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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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가치가 공존하는 문화,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문화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저자는 폭탄주 문화를 비난하지만 책의 주장은 폭탄주를 말아 목구멍에 탁 털어 넣듯 화끈하고 강력하다. 여왕개미만 따라다니는 개미 따위는 되지 말란다. 아직도 이러고들 있네. 늬들 개미냐? 이런 뉘앙스. 저자는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사회에 주축이 되면서 오는 수직형 구조, 전통적인 유교관의 장유유서, '하라는 대로만' 했던 독재 정권의 잔재 등이 대한민국의 가치 공존의 다양성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또 외국에서는 한인끼리 뭉치면서 한국 내의 이주민들은 배척하고 동정어린 시선으로 보는 단일 민족을 빙자한 획일적인 가치 문화를 비판하고, 나아가 이런 사고방식으로 삐뚤게 숨겨지는 ‘성’에 대한 위선까지 꼬집는다.

 

 이주민 센터에서 일할 때가 떠올랐다. 많은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동질감을 갖기란 어려웠다. 더구나 대부분 이혼의 아픔, 또는 경제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큰 상처를 안고 있던 사람들이라 그들에게 나도 모르게 동정심을 가졌다. 한국인만 한국에서 잘 살 수 있다는 관념이 내게도 있었다. 어느 날 러시아 국적의 조선족 분이 나에게 물었다. 한국에는 왜 모텔이 이렇게 많으냐고. 물음의 핵심은 한국은 왜 연인간의 애정을 밖에서는 전혀 표현하지 않으면서 모텔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만 표현하느냐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밖에서도 잘 표현 하나요? 라고 물으니 러시아는 공원에서도 자연스레 포옹도 하고 키스도 한단다. 그건 저희도 그래요. 단, 으슥하고 숲이 우거진 공원이라면. 대놓고 드러내면 뭔가 죄를 짓는 것 같다는 이 생각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고민해본 적도 없다. 당연히 맞는 거였다. 도덕적 문제나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애초에 다른 무엇이 들어올 수 없는 철옹성 같은 벽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답답함의 근원도 이와 같으리라. 물론 그 답답함은 오히려 그것들을 당당하고 정확하게 알아야 그 진짜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온다. 피부색이 다르지만 그저 함께 사는 이들이니 특별히 연민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 그냥 같이 살면 된다. 한국이라고 한국인만이 유용한 가치가 아니다. 사랑의 표현은 사랑하는 이들끼리 책임을 갖고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것을 죄 마냥 숨길 필요는 없다. 자꾸 숨기면 성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어려워질 뿐이다. 하나의 가치만을 추구하는 것은 다른 가치들을 숨기고 덮으려하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 그녀는 획일화 속에 얻는 것보다는 이제 그것 때문에 잃을 것이 많은 시대가 왔음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획일적인 가치는 뚜렷한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노력으로 중간이라도 가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하는데, 자신의 꿈이 뭔지​ 모르는 채 토익 공부만 열심히 해도 작은 직장이라도 구할 수 있는 상황이 그렇다. 죽을 때까지 한국인만 상대하는 직종도 토익을 보니까 말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다양한 가치 따위가 기억도 나지 않게 하는 원 스탠다드, 확실한 위아래, 왕권의 환상을 가진 사회구조가 우연히 누군가를 구하기도 하는 것이다. 모두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코스가 없다면 확고한 생각이 없는 개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다른 길로 갈 자신이 없다. 일개미가 여왕개미만 쫓아다니면 적어도 무리에서 떨어지는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획일화에 찬성이다! 저자가 내 말을 듣는다면 비웃겠지. 게릴라전으로는 적군을 괴롭힐 수 있을 뿐 쓰러뜨릴 수는 없으니 정규전을 하라는 저자의 외침이 선명하게 들리지만 모른 척 한다. 훌륭한 일개미인 나도 때로는 여왕개미의 뒷다리를 물어뜯고 싶을 때도 있지만, 감히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여왕개미님. 혹시 땅 파는 일 말고 저도 하늘을 날아볼 수 있을까요?"

 

 "일개미야, 미친 소리를 하는구나. 너는 날개도 없잖니. 열심히 땅을 파야지. 그게 네 일이란다."


 몰라서 묻나. 너무 오래 파니까 지쳐서 그러지. 너, 길가다 개미핥기나 만나라. 정규전에 자신 없는 일개미가 되어 소심하게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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