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의 시대 - 새로운 중국의 부, 진실, 믿음
에번 오스노스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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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그에게는 그것이 필생의 사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그럼에도 양극화를 초래했던 문제였으며 이제는 자신이 찾은 해답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p.216

 

타이완에서 중국으로 헤엄친 군인 란이푸의 고민이었다. 그 고민은 중국 전역의 고민이었고, 중국이 변화하는 핵심소재였다. 책은 그 안에서도 벌어지는 나라의 모습을 개인들의 삶의 흔적을 자세히 보여줌으로써 추적해 본다. 사명과 해방이라는 기치아래 중국은 놀랍도록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한편으로 공산당 정권의 무력아래 무차별적인 탄압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 안에서 목소리를 내려고 싸웠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나 작가 한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들의 일대기는 우리나라 독재 정권 시절의 모습(물론 내가 직접 겪었을 리 만무하고 책으로만 경험한)과 비슷해 낯설지만은 않다.

 

중국은 세 사람의 의견에 따라 움직인다는 말처럼 중국은 공산당이라는 막강한 사회주의 체제가 구축되어 있어 무엇이든 대규모로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놀라운 나라라고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개인들이 어떤 소소한 삶의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예상치 못한 억압과 투쟁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야망의 시대>는 단순히 중국이라는 대국의 야망을 조명할 거라 생각하고 삼국지를 집듯 책을 들었던 내게 그런 면에서 매우 신선했다. 책은 삼국지보다는 삼중문이라는 한한의 소설을 소개했다. 교육과 권위에 대한 무명작가의 통렬하고 현실적인 풍자를 그린 소설. 그리고 그것을 국가 차원에서 막으려 했다는 내용은 중국의 야망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글쓴이가 북한에 가서 글을 썼어도 내용은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이라는 절대적인 거대 권력에 순응할 것인가 반항할 것인가를 두고 어쩌면 인생을 건 판단을 해야만 했을 인민들의 모습은 비슷한 체제 안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민들로 이루어진 중국과 북한은 나에게는 지구 반대편의 미국보다 오히려 먼 나라였다. 그런데 이 <야망의 시대>를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도 중국과 북한이 오히려 우리와 아주 가까운 나라이며(실제로 그렇지만), 사실은 거의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솟구쳐 올랐다. 세상일의 전부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최근 내 주변의 일에서만큼은 우리나라도 거대 권력을 향한 순응과 반항을 두고 목숨을 건 모험을 해야 하는 나라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구체적으로 무엇에서 그렇게 느꼈느냐고 묻는다면, 짧은 식견에 대답할 길이 없다는 푸념밖에 할 말은 없다.

 

<야망의 시대>에서 나는 시대보다는 야망이라는 단어에 먼저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한 개인의 야망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의 문제가 시대를 만들어 간다는 믿음으로 발전한 것이며, 이것 또한 글쓴이의 또 다른 지적은 아닐까 한다. ‘개인적인 삶의 고민과 야망이 그 시대의 흐름으로 향한다는 전제를 떠올리고 보니 하찮은내 안의 자잘한 고민들이 싹 뭉개지는 쾌감을 어부지리로 얻기도 했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야망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고, 그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어떠한 대가도 감수할 사람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그가 적절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냉엄한 진실을 남긴 중국의 붐을 이끌어 냈던 원동력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p.480

 

그래서 마지막 챕터 탈출의 맹인이자 독학 변호사인 천광천의 망명을 그린 이야기, 냉엄한 진실바로 직전의 이 구절이 내게는 책의 결말로 느껴졌다. 냉엄한 진실에 담긴 의미와 여기에 희생된 개인들의 묵묵한 뒷받침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겠지만, 어쨌든 국가적 상황이나 정치적 성향 따위를 떠나 나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야망을’, ‘적절한 선택으로’, ‘바로 그런 사람들이이라는 단어들이 퍽 매력적으로 다가와 잔잔하게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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