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저널리즘 - 한국 언론의 지형을 바꾼 언론인
정철운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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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17년 가을호 / 통권 45호


책담(冊談)

저널리즘에 시선집중을! 언론자유에 연대를!


《손석희 저널리즘》/정철운/메디치/2017년6월/15,000원


양솔규(편집위원장)


며칠 전 볼 일이 있어 서울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우선 짐을 우체국에서 부치게 되었다. 한참 포장하고 있는데 낯익은 남자가 내 앞에서 자신의 소포에 주소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슬쩍 훔쳐보니, “아! 노/종/면! 기자!”가 아닌가. 쪽팔림을 무릅쓰고 YTN 복직 축하인사를 건네며 사인과 인증샷을 요청했다. 해고된 지 너무 오랜 기간이 지나기도 했고, 사실 작년부터 그에게 불어닥친 수많은 일들, 해직기자들을 다룬 영화 <그들이 없는 7년> 개봉, YTN 사장 공모 등, 감정적으로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작년 연말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딸의 편지를 들으며 담담하게 심경을 밝히던 그의 목소리가 다시 생각나기도 했다.



사실, 나의 아버지 역시도 해직기자 출신이다. 74년 동아일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75년에 해직되었다. 그래서 MB 정권 들어 일어난 기자들의 대량 해직사태가 남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손석희도 학창시절 동아일보 백지광고에 참여했었다고 한다.) 언론계의 거목 故 송건호 선생은 당시 후배 기자들을 자기 손으로 자를 수는 없다며 편집국장을 사퇴하고 스스로 동아일보를 나왔다. 송건호 선생은 후에 “대책 없는 실직은 현기증을 일으키는 공포였다”고 했다. 아마 노종면 기자를 비롯한 수많은 해직기자들의 심정도 그러했으리라. 그들은 9년이라는 시간을 이겨내었고, 드디어 자신의 고향 같은 곳 YTN에 복직했다.(사무실 위치는 상암동으로 달라졌지만) 이들의 복직에는 물론 그들의 꺾이지 않은 양심과 멈추지 않은 투쟁이 있었지만, 박근혜 탄핵 촛불항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겨울을 경과하는 긴 여정의 처음과 중심에 JTBC 뉴스룸, 이를 진두지휘하는 손석희가 있었다.


때는 1989년 또는 1990년. 장소는 경희대학교 크라운관. 서울 지역의 노동조합 노래패들이 모여 연합공연을 시작하고 있었다. 당연히 경찰은 원천봉쇄를 했고, 사람들은 개구멍을 통해 속속 공연장에 들어왔다. 서울지하철 노래패, 서울대학교병원 노조 노래패 등 십여 개의 노래패들이 모였는데,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MBC 노래패 <노래사랑>에 쏠렸다. MBC 노래패를 대표해 손석희 당시 조합원이 마이크를 잡았고, TV에서 매일 듣던 낯익은 목소리로 그가 ‘동지!’들에게 인사를 하는 순간 (나를 포함하여) 관객들은 모두 “꺅!” 소리를 질렀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를 불러주던) 정은임 아나운서도 MBC 노래패의  멤버였다고 한다. 손석희는 이후 1992년 파업투쟁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났고, 후에 함께 구속되었던 정찬형PD(현 tbs 사장)와 손잡고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만들었다.


《손석희 저널리즘》은 언론비평지 <미디어오늘>의 정철운 기자가 썼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미디어오늘>의 또다른 조윤호 기자가 쓴 《나쁜 뉴스의 나라》를 읽었었다. 사실 그 전엔 언론에 대한 책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급속하게 변모한 한국 언론지형의 변화에 대해 알게 되었고, 단순히 MB 정부 등 보수정부의 언론탄압 때문만이 아니라, 언론(노동)운동이, 대중들이 이 변화의 지점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가 이러한 언론지형으로 현상화 되었다는 지적에 대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독자들의 외압”이 언론운동의 버팀목이라는 ‘당연한 생각’의 의미를 깊게 깨닫게 되었다. 그 책을 읽은 지 한달 뒤인 10월24일, 최순실 태블릿 PC 입수 보도가 터져 나왔다. 그전까지는 TV도 없었지만, 손석희가 있다 하더라도 JTBC 뉴스룸을 본 적이 없었다. 이날부터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뉴스룸을 계속 챙겨보면서, 논조뿐만 아니라 다른 지상파 방송과 차별되는 진화된 저널리즘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철운 기자의 《손석희 저널리즘》은 현재의 언론지형과 그 중심에 있는 손석희의 저널리즘에 대해 ‘시선집중’ 했다. 이 책은 손석희 개인에 대한 책이면서, 동시에 손석희 개인을 넘어서 언론개혁운동, 언론노조운동, 저널리즘, 한국사회의 모든 이슈들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손석희는 MBC에서 수많은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고, 때때로 예능과 심지어 <뽀뽀뽀>까지 출연한 바 있다. 사실 나는 허수경과 함께 진행했던 <생방송 아침만들기>에서 손석희의 깨알 같은 재치와 혼을 빼놓는 유머감각에 감탄했었다. (군대 제대 시절 보초를 서면서 허수경의 자서전 《허수경의 미소 한 잔 눈물 두 스푼》을 읽었는데, 그 책에는 허수경이 손석희의 유머 때문에 진행을 못했었다는 일화가 적혀 있다.) 아무튼 손석희에게 MBC는 고향 같은 곳인데, 지금 그의 고향은 초토화가 된 상태다. 그리고 그 싹은 손석희가 MBC에서 그의 분신 같았던 프로그램 <MBC 100분 토론>(2002~2009년), <MBC 라디오 시선집중>(2000~2013년)을 진행할 때도 보였었다. (그는 2006년 이미 MBC를 사직했었다.) 최근 밝혀지고 있듯이 그가 <시선집중>에서 하차하게 된 것 역시 전임정부 MB와 임기를 시작한 박근혜 정부의 입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홍석현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여 MBC를 떠나 JTBC에 둥지를 틀었다.


손석희의 저널리즘은 “중립성”에 기초해 있지 않다. 그의 저널리즘은 기계적 균형을 넘어 진실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의 인터뷰는 매서우며,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것” 역시 권력(MBC, KBS)이지만, 말을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하는 것도 중요한 권력의 자원이다. 그의 저널리즘은 또한 “맥락 저널리즘”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미 사람들은 낮시간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대부분의 언론 콘텐츠를 소비해 버렸고, 그 사람들에게 방송뉴스가 제공해 주는 뉴스는 콘텍스트(맥락)여야 된다. 따라서 기사 하나당 시간이 길 수밖에 없고, 방송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모든 뉴스를 나열하기 보다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이다. JTBC 뉴스룸은 손석희 저널리즘의 핵심인 “맥락 저널리즘”이 구현된 작품이다. 무엇보다 손석희의 저널리즘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치유를 지니고 있다. 박근혜 탄핵과 촛불정국에서 그는 고인이 된 민간 잠수사 김관홍 씨를 불러냈고, “어두운 밤을 함께 걸어갈 수많은 마음들과 함께 새해, 새날이 기다리고 있다”며 시청자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공감과 치유의 언어는 ‘앵커브리핑’을 통해 나왔다. 기계적 중립이 아닌, 앵커 스스로가 뉴스를 분석하고 발언했다. 시청자들을 위한 ‘품격’과 ‘공정성’이 홍석현에게 받아낸 그의 유일한 요구였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시청자들 역시 손석희에게 듣고 싶은 것은 뉴스 그 자체보다는 손석희 “입을 통해 듣는 뉴스”일지도 모른다.


뉴스룸은 여러 가지로 다른 채널의 뉴스와는 차별적이다. 가장 큰 것은 기자들과 앵커 간의 실시간 대화이다. 기자들로서는 피가 마르겠지만 시청자들에겐 보다 생생한 현장을 느낄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자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함은 물론이다. 손석희야말로 생방송의 강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아닌가. 또한, ‘팩트체크’, ‘앵커브리핑’은 손석희 저널리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코너이다. 대선 토론회 당시 홍준표의 볼멘소리를 바로 팩트체크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또한 JTBC 뉴스룸은 달라진 언론환경에 적극 대응했다. 전체 내용을 AOD로 공급하고, 포탈에서 생중계 되며,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소셜라이브를 진행한다. 당연히 급속하게 하락하고 있는 고정형 TV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뉴미디어에 의지하는 20-49 세대들에게 JTBC는 접근성이 좋은 것이다. 자연히 뉴스와 시사코너 뿐만 아니라 예능과 드라마 시청률까지 동반상승한다. 이것이 MB 시절 이후 우리가 경험한 달라진 언론환경이다. 자연히 공영방송(지상파 3사) vs 종편4사 프레임(2009년 미디어법 투쟁 당시 프레임)은 깨졌다. 그리고 ‘엠빙신’이라고 표현되는 지상파 의존도는 점차 하락했다. 손석희가 JTBC로 향할 때 진보운동 쪽에서는 저주에 가까운 말이 터져 나왔다. “개인의 능력에 대한 과신”이라든가, “한계가 뚜렷. 패배할 것”이라든가 하는 말들이 그것이다. JTBC는 패배해야 했다. 손석희도 패배해야 했다. 언론논조는 소유구조에 의해 ‘결정’되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한 것은 반대였다. 모든 방송이 삼성의 문제점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 때 JTBC는 故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를 스튜디오에 초대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이슈를 꾸준히 보도했다. 손석희는 세월호의 어젠다 키퍼가 되었다. 유가족들은 저녁마다 대형 모니터에 JTBC 뉴스룸만 틀었다. 홍석현은 결정적 순간마다 손석희를 지켜냈다. 물론 “홍석현의 신의는 그의 존재를 뛰어넘을 수 없”겠지만, 어쨌거나, 소유구조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선택지들에서 그는 상식을 깼다. 홍석현은 대신 조선일보를 능가하는 의제선점능력을 손석희를 통해 얻었다. 손석희는 공정언론의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간극”을 메꿨다. 형편없는 시청률과 영향력 1%에 머물던 JTBC는 가장 공정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가 되었고, 기자들의 자부심은 다시 취재력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Coldplay의 음악이 엔딩곡으로 나오는 JTBC 뉴스룸의 “도회적 취향”은 20~49세대들을 매료시켰다. 엔딩곡은 뉴스룸이 끝난 후 실검순위에 랭크된다.


여기서 우리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손석희의 JTBC와 tvN에 만족하고 있을 것인가? 사실 그럴 수도 있다. 굳이 지상파를 봐야 될 이유는 없다. 이낙연 총리도 잘 보지 않는다고 답변하지 않았는가? “지상파 뉴스 독점 구조 해체는 지상파가 자초”했다. 그렇다면, 뉴미디어나 새로운 채널에 접근하기 주저하거나 어려운 수많은 저소득층, 고령층, 시골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저 ‘나쁜 뉴스’와 ‘막장 드라마’만 공급받으며 살게 내버려 둘 것인가?


며칠 전 아버지께서 이런 카톡을 보내셨다. “손석희 MBC 사장설 있드만”. 이를 들은 지인들 중 일부는 적극 반대했다. 그가 MBC에 가게 되면 JTBC도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MBC에서도 실패할 위험이 있지 않을까? 하는 논리였다. 글쎄. JTBC 내에서 ‘손석희 없는 손석희 저널리즘’의 시스템화가 지금 충분치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 지상파는 민영방송 JTBC와는 또다른 의미에서 반드시 되찾아야 할 진지이다. 더군다나 내부 구성원들이 눈물겨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석희 사장설은 의미심장하다. 손석희가 JTBC로 옮길 때 ‘개인의 힘’이 지닌 한계를 얘기하며 냉소를 보냈지만, 지금 시점에서 만약 손석희가 MBC 사장을 맡는다면 그런 냉소를 보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손석희는 마지막 시선집중 클로징멘트에서 “최선을 다해서 제가 믿는 정론의 저널리즘을 제 의지로 한번 실천해보고, 훗날 좋은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그는 그의 말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 정철운 기자는 말한다. “손석희가 JTBC를 떠난다면, 종착점은 MBC다”. 손석희 스스로도 자신은 몸이 가볍다고 말한다.

물론 JTBC의 약한 고리인 ‘사주’의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손석희의 저널리즘은 시스템화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노동조합’이다. 손석희 역시 1992년 《말》지 인터뷰에서 “왜 노조를 하는가, 이건 아주 단순한 문제입니다. 노조를 안 할 수 있는 명분이 없습니다.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 소시민적 도덕성을 지키려고만 해도 노조 활동은 불가피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 노동조합은 중앙일보-JTBC 공동의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상급단체가 언론노조가 아니다. 여기서 저자는 언론노조에 대한 고언을 게진한다. 지상파 3사 시대가 저물고 포털과 유튜브, 콘텐츠 중심 체계, 매체로서의 스마트폰 등 변화된 언론환경에도 불구하고 언론노조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만 매달렸다는 것이다. 종편 자체를 원천 부정하면서 노조 조직화 등에는 선을 그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내외부의 힘을 모아 공정방송을 지켜낼 수 있는 진지를 만들어야 한다. 종편 내부투쟁에 연대하고, 노동조합의 설립과 강화를 통해 내부 체질개선을 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종편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결국 길은 이것 밖에 없다는 거다.

또한, 달라진 제작시스템 속에서 방치되어 온 언론 내 비정규직 조직화에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작 외주화 비율이 매우 높은 상황, 언론 내 비정규직이 높은 상황은 당연히 언론노조의 교섭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결국, 민영방송 JTBC의 공정언론 사수와 MBC 공영방송의 공정언론 탈환은 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 시청자들, 시민들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윤호 기자는 《나쁜 뉴스의 나라》에서 “기사 삭제 요구에 시달리는 언론들로 하여금 ‘이러면 독자들한테 욕 먹는다’는 핑계를 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달라는 말이다. 뉴스 소비자들이 뉴스를 제대로 읽을수록 언론은 발전한다. 권력의 정점에 소비자가 있는 것,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검열 아닐까.”라고 말했다. MBC노조 창립선언문은 “국민들은 맑은 물과 공기를 마실 권리가 있듯이 건전한 방송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천명했다. 그런데 국민들이 ‘건전한 방송’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구성원들만 사측과 권력의 탄압에 맞설 수 있을까? 언론자유를 지키는 것은 시민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가 기자는 아니다. 그러나 저널리즘은 기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저널리즘에 시선집중을, 언론자유에 연대를! 그동안 ‘무한도전’을 지켜냈고, ‘PD수첩’을 지켜낸 이들, 숨죽이며 온갖 모멸감을 버텨낸 그들에게 냉소 대신 ‘연대’의 손길이 절실하다. 언론자유는 나의 일이다.


이 책은 짧게는 지난 1년, 길게는 MB 정부 시절부터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놨다. 그리고 우리가 평소 궁금해 하는 문제들, 예컨대 “홍석현이 손석희를 어떻게 꼬셨을까?”, “홍석현은 왜 중앙미디어그룹의 경영에서 물러났을까?”, “향후 손석희의 행보는?” 등등에 대한 답도 들어 있다. 그리고 탄핵국면에서 언론계의 숨은 비화, 예컨대 세월호 인양시 하늘에서 찍은 항공영상을 JTBC에만 판매하지 않은 MBC의 쪼잔함 같은 숨은 뒷 얘기 역시 풍부하다. 궁금하신 분들은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아울러, 아래의 자료도 함께 보기를 권한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영화 스포트라이트> : 보스턴 글로브 내 탐사보도팀에 대한 이야기
-영화 <굿나잇 앤 굿럭> : 메카시즘을 끝장 낸 앵커 에드워드 머로에 대한 이야기
-미국드라마 <뉴스룸>
-임명현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 성공회대 대학원
-임명현 <나는 왜 MBC 잔혹사를 연구했나> (저자인 정철운 기자가 MBC 로비에서 임명현 기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고문피해자처럼 두리번거렸다는 언급을 듣고는 임명현 기자가 일련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초토화된 MBC 내부의 민낯을 드러냈다.)



손석희가 JTBC를 떠난다면, 종착점은 MB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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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 더 가난해지지 않기 위한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지음 / 문예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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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할 수 없는 삶을 위한 사회적 경제

양솔규(회원)

출처 : 평등사회교육원 <함께하는 품> 제30호  2017년7월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우석훈/문예출판사/14,800원/2017년5월



《함께하는 품》이 벌써 30호를 발간한다. 많은 사람들의 땀과 희생이 없었으면 이루지 못했을 결과물이다. 100쪽이 넘는 분량을 유지하면서 한 호 한 호 내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박근혜 시대에 우리의 고민이 오롯이 담겨 있다. 때론 정세를 꿰뚫는 논문이 실리기도 하고, 다양한 주제의 필진들이 세태를 분석해 주기도 하며, 회원들의 일상사가 담겨 있기도 하다.

오랜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대통령도 탄생했다. 지금까지의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거라는 기대감도 상당하다. 그만큼 이전 정부들의 ‘적폐’로 인한 피로감이 상당했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를 둘러싼 환경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한국은 더더욱 ‘불황’의 터널에 막 진입했다는 것이다. 안그래도 작은 한국의 내수경제는 글로벌 불황에 막혀 있고, 수출산업들은 격해진 글로벌 경쟁과 중국의 수정 전략,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인해 압박 받고 있다. 바야흐로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겪었던 ‘장기 불황’ 시대가 막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이러한 외적 조건 때문에 피폐할 수밖에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은 오류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은 1980년대 초 아프리카 대륙을 덮친 가뭄과 대규모 식량부족 사태를 ‘민주주의’의 유무에 따라 분류해 분석했다. 군부독재 하에 있던 에티오피아는 GDP의 46% 국방력에 충원했고 그 결과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아사(餓死)했다. 반면, 보츠와나는 에티오피아보다 더 단위생산량이 낮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굶어 죽지 않았다. 정부가 직접 식량을 통제하고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 줬기 때문이다.
‘장기 불황’이라는 조건은 물론 구조적 제약이기는 하지만,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제약은 아니다. 부동산에 묶이고, 사교육에 묶여 있는 막대한 부(富)는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 5년은 신자유주의가 싸지른 ‘똥’을 치우는 (속죄의) 기간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씨 뿌리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


2015년11월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국제협동조합연맹 총회 및 회의

어찌 되었든,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 모르는 ‘불황’의 ‘터널’로 들어선 지금, 사람들의 불안감에 화답한 책이 있다. 경제학자 우석훈이 쓴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가 그것인데, 이 책의 부제는 ‘더 가난해지지 않기 위한 희망의 경제학’이다. 요약하자면, ‘불황 10년’의 시기에 들어선 한국 경제에서 ‘생존’, 즉 살아 남기 위해, 삶의 조건이 후퇴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경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작년 10월에 발간된 전작  《살아 있는 것의 경제학》(2016년10월)을 통해서는 청년들을 특화해서 ‘생존’의 방법을 제시했다면, 이번에는 좀 더 일반적인 ‘생존 전략’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책 제목의 ‘좌우’를 넘어선다는 언급은 뜬금없다. 오히려, ‘더 가난해지지 않기 위한 사회적 경제’ 라는 식의 제목이 더 어울린다. 아무튼.)



전후 30년 ‘대압축의 시대’, ‘전후 호황’이 지나간 후, 미국의 뉴 이코노미, 동아시아 위기, 한국의 IMF 경제위기, 급기야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고,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뉴 노멀 New Normal’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협동조합도 그랬고, 다른 사회적 경제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어려울 때 이러한 ‘연대’의 ‘경제공동체’를 떠올리곤 했다. 말하자면 ‘가난 위에 피어난 꽃’이 사회적 경제이다. ‘L자형 경제위기’ 상황에서 ‘시장’과 ‘국가’에 기댈 수 없으니,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가 꽃피는 것이다. 물론 ‘시장’과 ‘국가’처럼 익숙하지는 않다. 그러나 점점 더 ‘사회적 경제’는 우리 곁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오고 있다. IMF 경제위기와 함께 시작된 김대중 정권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했고, ‘자활급여’라는 항목이 포함되었다. 많은 실업자가 양산되던 시기, 자활센터들이 생겨났다. 생협법이 제정되면서 생협에 대한 제도적 정비도 이루어졌다.
노무현 정부 때는 ‘사회적 기업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고용 없는 성장이 회자되면서 이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암묵적 동의가 퍼져 나갈 때였다.




 


사기꾼 이명박은 ‘광우병 데모’ 행렬에 자리잡은 ‘생협’의 깃발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 그리고는 바로 세계 금융위기를 맞았다. 그러다 임기 후반, 2011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졌다.

한국 생협 조직의 변천

박근혜 시기, ‘배신자’ 유승민이 발의한 ‘사회적 경제 기본법’은 레이저 광선으로 인해 통과되지 못했다. 유일하게 사회적 경제와 관련해 아무 것도 만들지 않은 정부가 박근혜 정부다. 가만히 있어서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분명하지는 않다.



저자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한 사람들이 ‘무작정 창업’하기보다는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전환의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1%에 불과한 사회적 경제의 비중을 적어도 3% 이상으로 늘리고(유럽은 10%), 커져야 ‘경제 휴머니즘’이 지속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구체적 형태로서 그는 다양한 예를 제시한다. 아파트 협동조합(주택 협동조합)을 통해 값싸고, 실용적인 주택이 만들어 질 수 있다. 매입형 임대주택 정책과 주택협동조합을 연결하는 방식도 제시한다. 반려동물 병원과 반려동물 보험 같은 새로운 영역도 협동조합 형태로 만들 수 있다. 에너지 사업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태양광 시공은 사회적 기업이 맡고, 이를 유지, 관리하는 업무는 협동조합이 맡을 수도 있다. 그밖에 로컬푸드 활성화와 (개신교) 교회 내 생협 매장의 확산 등도 지역경제를 살리는 바람직한 방식이다. 아울러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저임금 일자리’로서의 사회적 경제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서, 그는 조직 내부의 의사결정과정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지속가능한 사회적 경제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사회적 경제’, ‘사람 중심 경제’ 등을 강조해왔다. 박근혜 개인(의 배신감?)으로 인해 막혀 있던 ‘사회적 경제’의 물꼬가 트이면서 법적, 제도적 조건이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시기가 준비기였다면, 도약의 ‘티핑 포인트’는 눈앞에 성큼 와 있다. 민주노총 지역본부별로 1본부 1사회적경제 단위를 주도해 만드는 것은 과도한 욕심일까? IMF 때와 마찬가지로 코너에 몰린 사람들, 특히 청년과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지탱해주는 사회적 보호막이 절실하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사례는 아래를 참고하면 된다.


 

<더 읽어볼 책>
《협동의 경제학》
정태인/레디앙/15,000원/2013년4월


<참고>


사회적 경제에 관한 2009년 2월 19일 유럽의회 결의문
(European Parliament resolution of 19 February 2009 on Social Economy)

*총 48개항 중 일반적인 사항인 1~5항까지 소개한다.

1. 유럽 경제에서 사회적 경제는 사람을 우선에 놓는 민주적 가치를 가진 경제의 하나로 지속 가능한 발전과 사회적, 환경적, 기술적 혁신을 지원하면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익성과 연대의 조화를 이루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적, 경제적, 지역적 결합을 강화하고, 사회적 자본을 생산하고, 시민들의 활동을 촉진한다.
2. 사회적 경제는 산업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를 강화하는데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모두 중요하다.
3. 사회적 경제가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발전할 수 있으려면 사회적 경제 관련 기관의 특수성과 풍부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적절한 정치적, 입법적, 경영적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4. 사회적 경제 기업은 일반 기업처럼 똑같은 경쟁의 규칙을 적용받아서는 안 된다. 사회적 경제 기업이 일반 기업과 동등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특수한 가치를 인정하는 가운데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
5. 현재 경제에는 주주의 감시나 규제 기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는 기업이 존재하며, 이들로 인해 금융시장은 투기에 노출되어 있다. 사회적 경제 기업은 금융시장이 투기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오기오타>

-27쪽 4줄 : 평형 => 평영

-68쪽 8줄 : 4.19 => 5.16

-85쪽 아래서5줄 : 금화을 => 금화를

-169쪽 2줄 : 부모의 뜻와 => 뜻과

-174쪽 14줄 : 협동자합인 => 협동조합인

-225쪽 아래1줄 : OECE => OECD

-282쪽 5줄 : 얼마큼 => 얼만큼


통계가 작성된 지난 6년간, 한국 중산층의 부채 증가율이 109.2퍼센트다. 무시무시한 수치다. 후보 시절에 박근혜가 ‘중산층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그런 희망스러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149쪽

주식회사와 달리 사회적 경제가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바로 이 의사결정의 문제다...의사 겨정은 어렵다. 규모가 커도 어렵고, 규모가 작아도 어렵다.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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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미래,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오는가 - "5년 뒤 당신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선대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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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44호 (2017년6월호)

 

책담(冊談)

 

일과 삶의 미래를 결정할 골든타임이 다가왔다

 

 

일의 미래: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오는가/선대인/인플루엔셜/20173/15,800

 

    

 

양솔규(편집위원장)

 

지난해 10월부터 20176월 오늘까지 정말 숨 가쁜 사건이 줄곧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9년여의 시간, 더 길게는 IMF 경제위기 이후 이어진 20여 년 동안의 지체되거나 거세당했던 일련의 과정들이 복원되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이 이 나라의 시스템을 망쳐놓는 것을 두 눈 뜨고 보면서 잘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마라! 가만히 있어라!”라고 얼마나 외치고 싶었던가! 그렇게 잃어버린, 후퇴해버린 시간 동안, 그러니까 저들의 잔인한 권력욕으로 인한 횡포와 파괴와 싸우고 있는 동안, 우리가 인식하거나 알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고 부지불식간에 변화는 찾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장미대선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었다.

 

촛불정국과 탄핵, 바로 이어진 조기대선으로 인해 각 당의 대표주자가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당의 정책자료집은 발간이 미뤄지기도 했고, 정책자료집의 질 역시 미흡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 선거는 ‘4차 산업혁명이 대중들에게 슬로건화 되어 제시됨으로써 시대적 화두로 각인되는 계기는 되었던 거 같다. 물론,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국 역시 대중들에게 기술변화가 가져올 미래를 상상하게끔 했고, ‘드론‘3()D 프린터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담론이 일반 사람들, 특히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농민들에게, 서민들에게 곧장 피부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술적 변화라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루어져 왔던 것일뿐더러, 정작 대다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산업 변화로 인한 국가 경쟁력 제고한국이 나아갈 길따위의 손에 잡히지 않는 통제불능의 이슈가 아니라, “그래서 우리의 일자리와 먹고 살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중에 이런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탄핵을 앞두고 박근혜가 읽었다는(믿기지는 않지만)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이나, (박근혜한테 한방 먹이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있다며 유승민이 소개한 축적의 시간이 있지만, 너무 기술중심적이거나, 전문적이다. 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읽고 변화의 흐름을 인지하고, 자기 삶에 비추어 사고할 수 있는 책이 없을까 찾아보니, 마침 경제적 이슈들을 개혁적인 시각에서 연구하고 제시하던 선대인이 쓴 책이 있었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변화를 국가나 기업, 나아가 각자 개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을 수정해 나가야 하는지 문제의식을 던져준다. 또한 이를 위해 기존의 (선대인경제연구소 또는 진보진영?) 개혁과제 역시 반복해서 설명한다. 저자의 과거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짧은 분량(270)에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크게 이 책은 두 가지로 나눠진다. 첫 번째는 지금 우리 사회와 세계가 처해 있는 현실로, ‘1부 일의 미래를 전망하다이다. 두 번째는 그래서 우리 개인과 사회,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정리하는 ‘2부 어떤 일을 가질 것인가이다.

 

일의 미래를 바꾸는 네 가지 변화

 

네 가지 변화는 중 첫 번째는 저성장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구조에서는 기존의 한국이 취했던 패스트 팔로워(추격전략)’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은 새로운 단계로 고도화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혁신기업들이 성장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양극화와 국가정책의 잘못으로 소득 정체와 소비절벽이 심화되고 있다.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제로성장 시대가 온다-부키 참조)

두 번째 변화는 인구 마이너스라는 정해진 미래이다.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의 기관지 28호에 소개했던 정해진 미래-북스톤 참조) 올해 2017년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첫 해이다. 2024년이 되면 생산가능인구가 한 해에 38만 명씩 감소하게 된다.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면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주택수요가 줄어드는 현상도 벌어진다. 더군다나 2010~204030년 동안 노인인구 증가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고령화의 충격이 가장 크고, 가장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미 창원의 로템이나 울산 현대자동차 등에는 소위 87년 세대들의 퇴직 행렬이 시작되었다. 정규직,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 민주노총의 조직률을 고려해보면, 조합원수의 감소 역시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평생 동안 벌어들이는 소득, 즉 생애소득이 적은 우리 사회의 현실상 고령화는 소비위축, 나아가 소비절벽을 가져온다.

세 번째는 ‘4차 산업혁명론자들이 얘기하는 기술 빅뱅으로 인한 산업 재편이다. 특히 자율주행차전기자동차는 조만간 전 세계를 거대한 재편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치 스마트폰으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핀란드의 노키아처럼, ‘수소자동차에 몰입하는 현대자동차가 하루아침에 몰락할 수도 있다.

네 번째 변화는 로봇화와 인공지능의 시대이다. 대한민국은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이고 가장 비중이 또한 높은 나라이다. 세계 평균 로봇밀도가 66인데 반해, 한국은 노동자 1만 명당 478대이다. 또한 고급 산업용 로봇 도입으로 인한 인건비 절감률 역시 33%로 로봇 대체율이 가장 많이 예상되는 나라이다. 이를 통해 중급 기술일자리가 가장 먼저 기계로 쉽게 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하급 기술역시 결국 다음 타깃이 될 것이다. 201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크리스토포로스 피사리데스 교수는 현재 820종의 직업 중 34%가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최근 4년 새 핀테크(fintech, 금융과 기술의 결합)로 인해 2,000여 개의 영업점포가 문을 닫았고, 8,000명 이상의 금융 종사자가 직장을 떠났다.

 

기업, 개인,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앞에서 얘기한 변화들은 일면 우울한 디스토피아적 조건들이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기업이 성장하더라도 고용이 창출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래성장동력을 찾고 준비하는 일을 지난 9년 동안 보수정부가 방치하면서 위기는 증폭되고 있다. 재벌독점구조로 인해 경제 생태계의 신진대사도 엉망이다. 혁신의 속도는 느리다. 문재인 정부가 맞이한 5년은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급속하게 줄어들고, 소비지수 감소도 심각해지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의 소비재 시장이 성장하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중국으로 진출한 화장품 사업(일명 K-Beauty)이 대표적이다. 바이오, 제약, 임플란트, 배터리 제조업 등도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자율주행차와 전기자동차 발전과 이와 연동한 콘텐츠, 엔터테인먼트 정보 업체들이 발전할 것이다. 사물인터넷 시장과 중국에게 선점당한 드론 시장 역시 핫하다.

기술 빅뱅 시대에는 기존의 강자가 순식간에약자의 위치로 추락할 수 있다. 또한 SNS와 빅데이터 발달로 수요자 욕구가 다양해지고 변화하며, 틈새시장이 열린다. 장기 저성장 흐름 속에서 스마트 컨수머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기업들은 약자의 전략에 적응해야만 한다.

 

개인 역시 만만치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일자리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기업과 일자리의 수명은 짧아지는 반면 인간의 수명은 길어진다. 창의성과 고차원적 사고능력이 필요한 일자리는 가치가 커진다. 스펙의 효용성, 라이선스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결국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여 소명으로서의 직업을 찾아야 한다.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 생계형 창업이 아니라, ‘혁신형 창업을 준비해야 한다. 일본 쇼핑몰 라쿠텐이나 유니클로, 중국 선전 지역의 글로벌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대규모 홍보를 하지 않아도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조건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인구절벽은 결국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켜 창업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 것이다. 물론, 정부가 창업의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지원해주는 정책을 확충해야 한다. 부동산과 자식의 사교육에 몰입하기보다는 금융소득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개인들의 위험을 분산하고,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본다.

 

사회가 준비해야 할 개혁과제들은 기존 노동조합과 진보정당들이 얘기했던 대책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먼저 재벌 지배구조를 바꿔 한국의 기업 생태계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삼성과 현대차의 최근의 행태 역시 자본에 유리한 합리적 선택이 아니었다. 이재용의 지배권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드론, 로봇, 자율주행차 등 핵심적 기술을 가진 삼성테크윈을 한화로 넘긴 거나, 자율주행차, 전기차 기술 개발에 투입되어야 할 10조원을 한전 부지 매입에 사용한 현대차의 재벌 일가족의 행태는 지배구조 개혁의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복지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다. 저자가 늘 주장해 왔듯이 이를 위한 세금 혁명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복지, 문화, 교육의 근본적 구조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저자는 노인빈곤층 문제와 짧은 생애소득기간 등을 해결하기 위해 퇴직연금제도 활성화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기본소득제 역시 4차 산업혁명과 연관하여 뜨거운 키워드가 되었다. 만성적 총수요부족을 전환하기 위한 기본소득-로봇세에 자본가들이 나서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더 나아가 기본자본(또는 공유자본)’ 도입을 주장한다. 자본도 국민들에게 나눠서 기계의 생산성이 주는 경제적 혜택을 골고루 누리자는 것이다. 세습 자본주의가 고착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가 많은 기업들의 지분을 확보해 이 지분을 한데 섞은 기금 풀을 만들고,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교육개혁을 역설한다. 대다수 중산층과 서민 계층 가정에서 사교육에 대한 몰입은 현명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투자라는 것이다.(약자의 전략이 필요) 또한 이러한 과도한, 사교육, 부동산에 대한 몰입이 내수경제를 꽁꽁 얼어붙게 한다는 것이다. 교육, 복지, 문화에 대한 투자는 현재의 일자리 문제에 대한 좋은 대책임과 동시에 이 나라의 미래 일자리를 만드는 대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공백지점은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의 대응방향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일 것이다. 아마도, 4차 산업혁명 또는 기술적 변화에 대비해서 다른 나라 대표적인 노동조합에서는 이러한 대책을 선언적 수준에서나마 정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규직 중심의, 낮은 조직률을 가진 우리 노동조합이 얼마나 준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녹록치 않은 변화의 물결과 인구절벽, 소비절벽, 고령화의 압박 속에 벌써 진입해 있는 우리의 토대를 생각하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도 산별교섭을 통해 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타 : 187쪽3째줄 - 주머니 사장은 -> 주머니 사정은
94쪽 : 자동차 산업에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확산되면 스마트폰이 몰고 왔던 변화보다 관련 산업과 일자리에 미치는 충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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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가 답하다 - 변방에서 중심으로
홍준표 지음, 김대식 엮음 / 봄봄스토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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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걸 책이라고. 개쓰레기같은 극우 인종주의자의 파쇼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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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 사회 - 냉소주의는 어떻게 우리 사회를 망가뜨렸나
김민하 지음 / 현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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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대와소통> 43호(2017년.3월), 노동사회교육원

 

책담(冊談)

 

냉소사회와의 화해, 정치를 구출하자

 

 

냉소사회/김민하/현암사/201612/15,000

       

 

양솔규(편집위원장)

 

 

   

헌법재판소가 박근혜를 파면한 지 약 9일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통진당 해산,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개성공단 철수, 사드 배치 등 얼마나 많은 시대착오적 행태와 무능력을 보아왔던가. 과거회귀를 넘어 공동체 사회와 국가의 통치능력을 붕괴시키는 정권의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짓으로 인해 위기는 증폭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의 임기를 1년 단축시킨 것은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압도적 다수의 분노와 흔들림 없는 행동으로 사상 초유의 탄핵 인용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 넓고 깊게 드리워져 있던 비관주의의 장막이 전부 거둬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촛불항쟁의 자신감의 근거는 조직되고 교육된 시민의 힘에서 나오기보다는 박근혜 정부의 비상식에 기인하던 바가 컸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이전을 돌이켜보면,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그리고 진보정당운동의 자신감은 그 어느 때보다 떨어져 있었다.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거라는 자괴감과 패배주의는 활동가들의 마음을 짓눌렀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이틀이 지나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가 유서를 쓰고 자결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은 아이들을 우리 사회가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앞으로도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진상을 규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자괴감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민중총궐기 과정에서 백남기 농민이 숨졌다.

 

저자 김민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과 덤프연대 등 노조에서도 활동했고, 지금은 <미디어스 medius>라는 인터넷 언론비평지에서 일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분석 대상이 고리타분(?)한 운동권만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넷 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현상들(오타쿠, ‘오유일베사이트에서의 논쟁, 된장녀 담론과 인터넷 게임, PC통신, 트위터, 페이스북, SNS 분석, 아프리카 TV, 메갈리아, 오디션 프로그램,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 팟캐스트, 브렉시트, 미국 대선, 유럽 극우정치의 부상) 등 무궁무진하다. 어쨌든 저자가 보기에 개인이든, 체제 차원이든, On, Off를 떠나, 우리 사회를 온통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열등감이다. 열등감을 해소하는 방식은 냉소하는 방법 열광하는 방법이다. 첫 번째는 거기엔 아무 것도 없다는 논리로 이어지며, 두 번째는 진정한 무엇은 있다로 이어진다. ‘냉담자열광적 신도는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 속에서도 생겨나고, PC통신 시절에도(귀여니 논쟁) 벌어졌으며, SNS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속에서 실드의 논리가 만들어진다. 모든 사람들은 냉소열광사이를 반복하며 핵심 쟁점(근본적 질문)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기도 한다. (지젝과 비포 등의 철학적 개념을 통해 저자가 설명하는 것은 어려우니 넘어가자.)

 

냉소의 두 가지 버전

 

이러한 냉소소비자적 태도를 강화한다. 소비에 기반한 사회에서 소비자의 지위는 그야말로 절대적인데, 예를 들어 문화 비평에 대해 소비자들은 비평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거나 보고 즐기면 되지 뭐하러 비평을 하느냐며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곤 비평가들을 잘난 척 하고 싶어 하는 족속들로 평가절하 해버린다. 이를 노동조합운동에 비유해서 설명해 보자면, ‘노선사회적 전망을 가진 노동운동의 모색에 대해 조합원들은 단사 내 실용적인 노선이 맞다고 주장하거나 쓸데 없는 거 신경쓰지 말고,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익을 방어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 사회에서 거대한 소비자군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적 존재는 현실에서는 노동계급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으로 기득권에 대항하는 손쉬운 길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손쉬운 방법은 안 산다는 선언이다. 어쩌면 노동조합 내 선거, 또는 정치적 선거에서 많은 투표 행위들이 이러한 논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열등감과 냉소주의에 빠진 진보정치, 진보정치를 냉소하는 대중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을 통해 진보적 원외 정치는 기득권 정치와 접촉면을 형성했다. 그리고 저자가 보기에 이 속에서 진보적 원외 정치론자였던 사람들은 기득권 정치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심리적 방어기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보적 원외 정치에 대한 냉소이다. 저자의 이러한 심리적 분석은 진보신당 창당에도 대입해 볼 수 있을 거 같다. 예를 들면 민주노동당 주류가 된 NL세력에 대한 좌파의 열등감은 진정한 진보정치는 있다노선으로 발현되었으며 진보신당 창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어쨌든 저자가 보기에 기득권 정치에 대한 열등감에 대한 방어기제를 통해, ‘운동이 아닌 정치를 해야 한다는 논리(부당하게 대립시키며)가 진보정당 내(정확히는 정의당 내)에서 득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저자가 보기엔 제공이라기 보다는 약탈당한 것)한 것이 최장집, 박상훈 선생이다.(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현실에서는 막혀버렸다. 안철수가 제3당 노선을 빼앗았고, 노동자정치세력화와 사회운동정당론은 현실의 진보정당에서 부차화되었다.)

과거 독재 vs 민주 공식은 우파 vs 반우파로 대체되었다. 이를 진보정당은 우파 vs 좌파의 대결로 대체해야 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사태는 진보 진영이 도덕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진보 정치가 유권자를 속이고 이용한다는 점 등 진보정치의 부끄러운 민낯을 대중들에게 가감없이 드러내 보였고, 진보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는 사회에 대한 냉소주의를 더욱 심화시켰다.

 

냉소주의와 화해하기 위하여

 

저자가 보기에 만연한 열등감과 냉소주의, 그에 기반한 소비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정치가 이와 싸우면서 스스로를 정립하고 작동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요소(열등감, 냉소주의, 소비주의)극복이나 파괴가 아니라 화해해야 할 요소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개념과 완전히 결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열등감을 극복하자는 말이 자칫 능력주의로 귀결될 수도 있고, ‘정신승리로 귀결될 수도 있다. “열등감을 극복하려다 오히려 열등감을 만나는 악무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경쟁에 몰입하는 것 역시 답은 아니다. 경쟁에서 배제되면 죽음뿐이다. 이를 넘어서는 기술이 필요한데, 바로 이 기술이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합의의 모색, 정치이다. ‘정치라는 수단을 통해 다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냉소주의 때문에 망하는 것은 당위명분의 정치이다. 그런데, 대중들의 냉소주의는 실제로 믿었던 존재로부터 배신당하거나 이용된 경험으로 인해 갖게 된다. 그런 사람들에게 냉소주의의 한계를 말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차라리 냉소주의자들에게 우리는 지금 여기에는 없지만, 진정한 무엇은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냉소주의자의 의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새로운 대답을 제출하고 쟁점을 제기해야하는 것이다. ‘실패의 퇴적속에서 다시 냉소의 논리를 재전유하는 대답을 시작해야 한다.

소비주의는 모든 것을 자본주의의 구매 논리로 평가한다. 소비주의를 활용한 저항 방식은 결국 정치적 맥락은 제거하고 대안 모색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들에게는 판매자가 아닌 생산자의 존재를 고취시켜야 한다. 생산 과정을 단지 상품을 기준으로 상상하는 게 아니라 생산자를 기준으로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노동자가 자신의 작업장을 벗어난 이후의 시간대에 노동자의 정체성을 상기하고 유지하도록 할 방법이 무엇인지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별노조의 지역화, 민중의 집 운동, 협동조합운동이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파훼(破毁)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운동의 현실에서의 효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양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위의 운동들이 효과적으로 잘 작동했다고는 볼 수 없을 거 같다.)

 

정치를 복원하자

 

수많은 사례를 들며 종횡무진 하는 저자가 결국 얘기하고 싶은 것은 체제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를 예외적인 권력으로 볼수록 냉소주의의 수렁은 더욱 깊어진다. 삼성에 특혜를 줬던 것은 박근혜 정부뿐만이 아니라 역대 모든 정권이 그러했다. 우리는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당위명분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상화된 박근혜 정권을 다시 한번 반복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책 머리에 이 책에 대한 세 가지 반응을 예상했다. 첫째는 무관심, 둘째는 미미한 조롱과 조소, 마지막은 무난한 호평이다. 글쎄, 무관심했다면 서평 자체를 쓰지 않았을 테고, 조롱과 조소를 보내기엔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다. 특히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담론들에 대해 정통하지 않는 평자로서는, 매체비평뿐만 아니라 문화비평에도 한 수준하는 저자의 방대한 분석대상을 꿰는 담대함이 놀라울 뿐이다. 서평자가 냉소사회에 대해 냉소할 수는 없고, 마지막 선택지로는 무난한 호평만이 남았는데,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독자의 대열로 들어선 후 책담(冊談)하기로 하자.

 

 

진보 정치와 노동운동은 죽을 날만 기다리는, 혹은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무기력한 사형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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