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김동춘 지음 / 창비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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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동춘
제목: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가격: 13000원
출간일: 2004년 11월
출판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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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출처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5년 1월호 통권 127호
http://www.ynlabor.co.kr

이천년대 제국의 모자이크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양솔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redstar@jinbo.net

최근 눈에 두드러질 정도로 미국의 문명과 그에 대한 비판조의 저서들이 봇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번역된 외국 저서들도 많지만 국내의 미국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여럿이 끼어 있을 정도로 미국에 대한 관심과 우려는 하루를 넘기기가 무섭게 증폭되고 있다. 노엄 촘스키의 《불량국가》,《숙명의 트라이앵글》외에도《키신저 재판》,《네오콘 Neo-Con》,《불쌍한 백인들》이 최대의 출판 불황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판매부수를 올릴 수 있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다고나 할까?

최근에는 좀 더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분석서들이 출간되고 있다. 지난《연대와실천》2004년 7월호에도 소개된 바 있던 이매뉴얼 월러스틴의《미국 패권의 몰락》외에, 전세계 동시출판, 동시대박을 일으킨 네그리․하트의《제국》, 토드의《제국의 몰락》, 찰머스 존슨의《제국의 슬픔》이 잇달아 출간되었다.

알다시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미국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되었고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과 국회의 연장안 처리의 과정이 진행되었으며, 이 속에서 한국의 모든 개인과 세력들은 싫든 좋든 자신의 입장을 어떤 논리 하에서든 정리해야만 했다. 참고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중적인 도서들과 학문적인 도서 사이, 압도적 다수인 미국 국적의 저자들과 한국 도서 소비자 사이에는 일정한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 소개하려는 김동춘 교수의《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창비, 2004.11)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간취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적절한 책이 될 듯싶다. 흥미 위주의 가십거리를 모아 놓은 저널리즘적인 책들은 재미는 있으나 미국과 미국 패권 속에 돌아가는 세계의 핵심 동력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반대로 학문적인 책들은 분과 학문적 그리고 이론적 관점은 물론이거니와 사전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만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관심, 미국과 관련한 서적들의 ‘수요’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 특히 격동의 80년대가 지나고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를 지나고 있는 이 시점의 미국에 대해 우리가 무관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운동권의 한 정파로 존재하는 ‘낡은 시각’, 소위 민족해방파 또는 NL의 관점으로는 세계의 중심이자 세계자본주의의 심장부 미국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정치, 군사적 시각으로 한정된, 그것도 좁은 한반도로 한정된 시각, 주의주의적이고 감정적인 시각으로는 미래의 변화 동력을 끌어내기엔 역부족이다.

잘 알다시피 김동춘 선생은 노동운동과 분단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진정성 있는 학자이다. 학문적으로 많은 중요한 저서들을 출간한 바 있고,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학술운동에서 꽤 중요한 발언들을 해 온 분이다. 그런데 이 책의 성격은 김동춘 선생이 이전에 출간한 학문적인 책들과는 사뭇 다르다. 김동춘 선생도 책머리에서 밝혔듯이 선생은 미국 전문가도 아니고, 이론적 해명보다는 시사적인 쟁점을 중심으로, 그리고 비판적 시각에서 미국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데 집필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가 2004년의 학문적 성과 10대 도서로 선정을 한 것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하지만 그러하기 때문에 이 책은 연구소《연대와실천》에 소개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선생이 연구년을 이용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 책은 전쟁 중인 나라에 대한 참여관찰의 결과로서 나온 책이다. 각주의 대부분은 미국 언론의 기사들로 채워져 있다. 소득도 낮을뿐더러 비영어권 국가인 것은 물론, ‘악의축’과 같은 악마의 피가 흐르는 불량국민이기 때문에 미국에 갈 수 있는 비자조차 얻을 수 없는 이 땅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미국 보수언론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고, 세계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알 턱이 없다. 미국 언론들 역시 자국민들에게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만을 공급하는데 수억 만리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는 오죽하랴. 따라서《연대와실천》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이 책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라크전쟁으로 시작한다. 냉전이 끝난 곳에서 군수자본, 금융자본, 석유자본, 신보수주의 정치가들의 이해에 따라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가상의 적, 허깨비 적을 만들어 놓았다. 9.11은 사그러들던 군수자본과 전쟁분위기를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웠다. 중동전체에 대한 독점적 패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 직접 이라크로 건너가 막대한 이윤의 유전에 빨대를 꽂으려는 충동, 한 놈만 열나게 패서 세계를 줄 세우려는 조폭적 의지가 합쳐진 전쟁이 바로 이라크 전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은 20세기 미국 역사에서는 거의 항구적인 상태에 있었다. 전쟁은 평화상태의 짧은 예외가 아니라 반대로 평화는 전쟁상태의 짧은 예외 기간일 뿐이었다. 미국은 냉전 체제하에서도 끊임없이 저강도 전쟁, 작은 전쟁을 벌여 왔다. 작은 나라들은 미국의 밥이었다. 사실은 세계의 많은 국가에 미군이 주둔해 있고, 따라서 미국민들의 안전은 당연히 위협받을 수밖에 없었다. 착한 흥부 미국은 놀부한테 뺨을 내밀고 제발 주걱으로 때려달라고 한다. 마지못해 놀부가 뺨을 살짝 건들면 선한 흥부 미국은 순간 람보가 되고, 코만도가 되고, 터미네이터가 된다. 폭탄을 퍼붓고 총질을 가하는 동안 금고엔 자본이 쌓여 가는 것이다.

이렇게 미국을 조폭으로 이끄는 충동은 바로 군-산-정 복합체에서 시작된다. 냉전 이후 수요가 떨어져야 마땅한 미국 군수자본들은 전쟁을 의도적으로 부추긴다. 덩달아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적 가치, (가짜) 자유, 기독교적 가치를 수출한다는 명목으로, 야만적인 세계를 문명화한다는 명목으로 침략을 합리화한다. 세계 군비지출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에 36%로 5년 전보다 5%나 증가했다. 이라크전쟁의 명분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는 것이었지만 세계 무기시장에서 판매되는 거의 대부분의 무기들은 미국 군수산업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란과 이라크 전쟁 당시 둘은 서로 미국제 무기를 들고 서로를 겨누기도 했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국 내 공공성은 실종되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고, 자국의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 침략전쟁을 일삼는 전쟁광, 자본가 대통령 부시를 왜 미국의 국민들은 재선시켜 주는가? 미국민들은 무엇보다도 정치선전을 일삼는 상업미디어에 포위되어 있다. 90년대 들어 대규모 기업간 M&A는 미디어, 문화산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대 미디어자본들은 광고주들인 거대 산업자본, 금융자본의 이해와 일치될 수밖에 없다. 전쟁이 시작되면 진실은 죽어버린다. 그리곤 거짓말들이 세상을 채운다. 그리고는 세계의 중심엔 미국이 있다고 믿는다. 중심부 밖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이스라엘 국민이 팔레스타인의 공격으로 숨지면 90%가 방송되지만, 팔레스타인 국민이 숨지면 겨우 5%만 방송될까 말까 한다. 미국민 중 20%만이 외국 여행을 했다. 미국민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선택된 백성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일까?

더욱 심각한 것은 평온해 보이는 미국 내에서도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소위 말해서 노동자에 대한 계급전쟁이다. 당연히 승리자는 자본이고, 패배자는 노동자, 특히 비백인인 흑인과 히스패닉계 노동자들, 빈곤 여성들, 동성연애자 등 소수자들이다. 시장은 패배자들에게 자선을 베풀지 않았다.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지도 않는다. 전태일의 청계천 공장이 뉴욕의 스카이라인과 공존하는 나라,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굶어죽는 국민들이 즐비하고 이를 방치하는 정부가 호령하는 나라 그곳이 바로 미국이다. 정부를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던 매카시즘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부시의 친자본정책과 전쟁에 비판적이면 ‘반역자’로 몬다. 미국은 절대로 자유의 나라가 아니다. 사상의 자유는 억압되고, 계급적, 인종적, 성적 차별, 아니 차별보다 심한 분리와 폭압이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포로들을 국제법이든 국내법이든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 안에 기약 없이 가둬두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법치국가는 사전에만 존재한다. 로렌스 브릿에 의하면 히틀러, 무쏠리니, 프랑코 체제 등을 종합하면 14가지의 파시즘의 특징들을 조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중 미국 사회는 현재 11가지의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꿈은 헐리우드에만 존재한다.

미국에 대한 비판적 분석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미국의 패권, 헤게모니는 위기의 상황에 처해 있다고 분석한다. 정치, 경제적 위기, 지도력의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사실은 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유일한 라이벌 유럽의 많은 국가들의 많은 세계시민들은 미국을 우려하며 심지어 미국을 증오한다. 지배의 핵심은 힘과 동의라고 했던가? 힘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제국에 걸맞지 않은 미국의 오만한 지도력은 점점 더 많은 적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땅에서 미국의 표준이 아니라 우리의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을 아는 것은 세계자본주의를 아는 것이며, 바꿔 말하면 한국을 아는 것이기도 하다. 거울을 통해서 우리의 등을 들여다보는 것,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하다. 냉전과 미국의 패권 속에 놓여 있던 한국 땅에서 새로운 흐름을 창출하는 것, 이것이 김동춘 선생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조각조각 흩어진 미국의 단면들을 모아 하나의 모자이크로 만들었다. 비록 추한 모자이크 작품이긴 하지만 한번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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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
앤드루 머리 지음, 오건호 옮김 / 이소출판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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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탈선
지은이: 앤드루 머리
가격: 12000원
발간일: 2003년 2월
출판사: 이소출판사

리뷰 출처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12월호 통권 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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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솔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redstar@jinbo.net


2000년대 거세게 몰아친 신자유주의가 단지 경제적인 궁핍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세상을 자기의 뜻대로 창조하는 인간의 의지를 거세시키고, 모든 행위의 주체, 논리의 출발점을 자본으로 단일화시키는 것. 이것이 신자유주의 위험성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합리성을 중요한 작동논리로 상정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비합리적인 위험에 직면하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합리성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어떤 합리성인가? 경제적 수익을 우선시하는 합리성인가?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둔 합리성인가?


신자유주의를 이끌었던 나라 중 하나인 영국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합리성에 기초해 진행된 철도 사유화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결국 철도를 다시 국유화시키는 쾌거를 거두었다. 물론 아무런 대가 없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영국 국민들은 연이은 열차사고로 인한 불안감을 감내해야만 했고, 자신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사용되어야 할 막대한 부가 사유화의 혜택을 입은 소수의 자본가에게 공적 보조금이라는 이름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또한 안전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달리는 열차는 결국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던 승객들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죽음의 질주, 위험의 증대 속에서 사람들은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영국 철도 기관사 노조(ASLEF)의 공보담당관인 앤드루 머리가 쓴 <탈선>(이소출판사, 오건호 옮김, 2003년)은 영국 철도 사유화의 참혹한 결과와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의 우익 연구소들이 내놓은 철도 사유화 방안은 효율과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보수당 대처 정부의 광신적인 믿음을 배경으로 추진되었다. 노동당이 ‘집권 후 재 국유화’를 주장하는 가운데, 신속하게 추진된 철도 사유화는 영국 철도를 100여 개의 수많은 기업으로 분할시켰다. 화물 철도는 세 개의 기업으로 분할(이후 다국적기업 EWS의 민간독점으로 귀착), 열차운행은 25개의 기업으로, 여객 차량 임대회사는 3개의 기업으로, 선로유지 보수 회사는 3개의 기업으로, 선로, 역, 다리 등 시설은 레일트랙(Rail Track)의 독점으로 귀결되었고, 그 밑에 하청관계에 있는 수많은 분할 구조가 존재하게 된다. 철도산별노조(RMT) 위원장 지미 냅은 철도 안전성 심의 컬런 조사위원회에서 재하청 계약으로 ‘철도와 연계된 기업이 적어도 1,000개는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러한 분할 체계 하에서 기존 고용과 노동조건에 대한 협상을 보장받았던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악화되었고, 기업 간 수많은 계약관계들 속에서 그 누구도 철도 운행과 안전과 관련한 총체적인 책임 속에 있지 않게 되었다.
사유화의 강력한 논리를 살펴보자. 영국 정부와 자본 측은 사유화를 토해 승객 수와 화물 운송량이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과연 사유화를 통해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자연증가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철도의 강력한 경쟁자인 도로운송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경쟁력 없는 노선의 경우 공공적 이익에 반함에도 불구하고 폐쇄되었고 이는 ‘수익성’의 논리 하에 운송량의 억제를 자본 측이 조장했음을 나타낸다. 또 다른 사유화 신앙의 주장은 납세자인 국민의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납세자들의 보조금은 주식 보유자의 은행 계좌로 흘러 들어가고, 레일트랙 등에 대한 보조금의 주요 부담자는 국민들이다.

결국 국유화 시절보다 더 많은 자금이 보조금으로 지급되고 있는데, 국유화 시절에는 보조금이 그나마 철도 부문에 머물면서 쓰이고 있었던 반면, 사유화 이후에는 주주들과 사기업의 금고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 레일트랙은 매년 10억 파운드의 보조금을 받아, 주주들에게 3억 5천만 파운드를 배당금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다. ‘경쟁’ 속에서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정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철도 각 부문은 경쟁 없는 독과점 체제로 출발했으며, 독점 이윤은 안전을 갉아 먹었다.

선로를 복구하라!《탈선》,《네비게이터》



97년 런던 서부 사우스올 사고(7명 사망), 99년 10월 래드브로크 그로브 열차 충돌(31명 사망), 2000년 10월 햇필드 사고(4명 사망) 등 연이은 사고들을 거치면서 사건의 진상은 드러나게 된다. 선로의 균열 또는 자동 보호 장치 미설치와 노동강도 강화로 인한 기관사들의 신호 무시 무단 통과는 바로 이윤을 우선시하는 사유화의 예정된 결말이었던 것이다. 승객과 철도 노동자의 안전은 결박당했다. 유럽의 자동 보호 장치는 재정 문제와 경제성 논리에 따라 도입되지 않았다. 또한, 서비스의 질은 저하되었다. 열차 정시성은 하락하였고, 철도 요금은 물가상승률을 초과했다.

오랫동안 신자유주의 사유화의 폐해에 대해 연구해 왔고 지금은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실에 있는 오건호 씨가 이 책을 번역했다. 역자가 이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밝히고 있지만, 이는 역자 뿐 아니라 우리 철도 노동자를 비롯해 많은 활동가들에게도 똑같은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출간된 지 2년이 다 되 가지만,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지금부터 읽어야 하는 책임이 분명하다.

<탈선>이 책으로 읽는 영국 철도 사유화 보고서라 한다면, 영화 <네비게이터 the Navigators>는 영화로 보는 사유화의 악몽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영국의 좌파 감독 캔 로치(Ken Loach)의 작품으로 철도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면서 겪는 고통과 사유화의 폐해에 대해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들은 철도 사유화 이후, 다른 일터로 쪼개지고 에이전시에 등록되어 비정규직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만다. 이들은 서로가 경쟁 상태에 놓여졌고 이전에 보장받았던 휴가나 수당 등은 사라졌다. 인간적인 애정이 가득했던 일터에는 이제 명령과 복종만이 남았고, 비용절감의 미명하에 안전 장치는 사라졌다.

노동자들 역시 일거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안전은 뒷전이다. 철도 보수 작업 중 다친 동료는 도로에서 차에 치인 것으로 위장된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영화 전반부에는 코믹하고 끈끈한 동료애, 화기애애한 일터의 모습이 나타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하의 영국 국민들의 팍팍한 일상, 고통스런 난관들이 점차 영화를 지배하게 된다.

11월 16일, 의왕역 근처 경부선 선로 철도 침목 교체 작업 중 한 철도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인력 부족 상태에서 6일간 연속 야간 근무 상태에서 고인은 서행 표지판 철거 작업 중이었다고 한다. 올해만 9명의 노동자가 철도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우리는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영국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인간다운 삶을, 공동체적 사회를 ‘탈선’시킨다면 노동자의 사명은, 노동운동의 사명은 ‘탈선’된 열차를 제대로 돌려놓고, 부서진 선로를 복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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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적기업, 세계를 삼키다 - 세계 밖의 세계
존 매들리 지음, 차미경.이양지 옮김 / 창비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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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적기업, 세계를 삼키다
존 매들리/차미경, 이양지
창작과비평사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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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와 민중저항의 승부처 -《초국적기업, 세계를 삼키다》


리뷰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9월호
http://www.ynlabor.net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초국적기업, 세계를 삼키다》, 존 매들리/차미경, 이양지 옮김, 창비(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한창 벌어지던 시기, 제3세계 (아동)노동을 착취하는 이른바 '노동착취공장(sweatshop)'에 반대하는 캠페인이 전세계에서 벌어졌다. ‘깨끗한 옷 캠페인(Clean Clothes Campaign, CCC)’이라는 단체가 벌이는 캠페인에 민주노총과 새사회연대 등 한국의 노동시민단체도 함께 했다. 리복,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등 초국적 유명 스포츠용품 기업들의 생산공장은 대부분 인도네시아, 타이, 중국 등 제3세계 하청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 공장의 노동자들은 70년대 한국의 여성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장시간 노동, 노동권 박탈, 성적학대, 감금과 폭력에 직면해 있고, 소음과 열, 화학약품에 둘러쌓인 채 개선의 여지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민영화, 자유화, 전지구화, 기업화의 물결은 초국적기업들의 제3세계 진출의 결과물이다. 초국적기업들은 일자리 창출, 산업화, 기술이전, 대규모 투자, 외화벌이 등을 내세우며 제3세계 각 국 정부들을 매수, 설득, 강요하며 이들 나라의 노동력을 끌어 모았다. 각 국 정부는 초국적기업 유치말고는 빈곤의 나락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초국적기업이 던지는 '당근'에 암묵적 또는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각종 규제는 철폐되었고, 제3세계의 풍부한 광물, 자연 등 자원은 초국적기업의 수중에 헌납되었고 전통적인 농업은 수출을 위한 농업으로 변모하면서 거대한 초국적 식품기업에 종속되었다. 확대되는 빈곤은 질병을 몰아오고, 다시 초국적 제약기업은 이를 이윤창출의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초국적기업은 개발도상국과 그 국민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이윤뿐이며,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책략과 모험도 감수한다. 강대국과 세계은행, IMF 등 초국적기구들은 이러한 침탈과 착취의 첨병들이다.  

생존의 위협, 생명의 위험

초국적 종자기업들은 인류의 기원만큼이나 오랫동안 보유해 온 농민들의 종자를 소유하고, 특허권을 소유했다. 농민들은 이제 생산의 첫 삽부터 초국적기업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고유한 각 나라의 품종들은 어떠한 보상도 없이 유출되고 있으며, 강도는 '주인'으로 행세한다. 더 나아가 유전자를 조작한 품종들이 점차 세계 농업생산물 시장을 침식해 가고 있다. 세계 인민들의 먹거리는 초국적기업의 손아귀에 놓이게 되었다.

수출을 위한 농업이 확산되었지만, 전세계 농민들은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점증하는 초국적 자본의 장악력에 반비례해서 농민들의 삶의 조건은 해체되어 가고 있다.
제3세계 각 국 농림부와 초국적 담배회사들은 점차 줄어드는 서구의 담배시장을 상쇄하기 위해, 세수 확대를 위해 담배생산과 소비를 늘리려는 공세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 초국적 담배 기업들은 놏촌고용과 외화벌이의 원천으로서 담배 경작을 권유하지만, 얻는 것은 영양의 결핍과 빈곤, 빚뿐이다.

세계적인 식품기업 '네슬레'는 모유(母乳)를 대체하기 위해 막대한 마켓팅 비용을 들이고 있고, 전세계 모유대체물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세계보건총회는 94년 만장일치로 모유수유 강화를 위한 결의를 채택했지만, 초국적기업들은 적어도 28개국에서 정부가 금지한 의료시설에 모유대체물 무료공급을 하고 있다.

자연의 착취와 죽음의 공포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980년대에 약 1억 5400만ha의 열대 밀림이 손실되었으며 이는 연간 1540만ha에 이른다. 필리핀에는 1700만ha의 열대밀림이 있었으나, 89년에는 단지 100만ha만이 남았다. 초국적기업은 벌채를 통해 목재를 얻지만, 그 뒤에는 숲의 일부분인 광산채굴이 기다리고 있다. 전세계 초국적 광업기업들은 규제가 적은 남반구에서 환경과 노동권을 파괴하면 할수록 더 많은 수혜를 얻고 있다. 노동자들은 중금속에 중독되고,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감수하고 있으며, 산림은 파괴되고 강은 폐기물들에 오염된다.

바다에서는 초국적기업들의 트롤어선이 어장을 휘젓고 다닌다. 트롤어선들은 어업협정을 통해 개발도상국 해안의 200마일 내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생선을 잡는다. 남반구 연안 어민들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매년 400만 명의 사람들이 발전용 댐 건설계획으로 인해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이러한 댐건설의 배후에는 초국적 건설회사들과 개발도상국의 부패관료들의 검은 커넥션이 있다. 댐을 통해 생산된 전기는 민영화를 통해 초국적기업의 수중에 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혹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초국적 제약기업들은 개발도상국 정부가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값싼 제네릭 의약품(상표를 부착하지 않은 값싼 의약품)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려고 하면, 강력하고 끈질기게 방해한다. 제약기업들은 방글라데시 정부가 45개 약품에 대해 제네릭 상표로만 제조되고 판매되게 하는 정책을 추진하자, 신문 광고와 미국 대사관을 통해 강력하게 저항했다. '제약기업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들의 정부를 이용하지 않은 적이 없다.'

초국적기업은 가장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 넣고는 야금야금 잡아먹는다. 사상 유례없는 자연과 생산의 사유화를 통해 거대하게 성장하고 있는 초국적기업은 세계를 삼켜버렸다. 그러나, 이에 그대로 숨죽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제3세계의 민중들과 소수 국가들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시도를 서서히 벌여 나가고 있다. 세계 인구 중 압도적 다수인 가난한 사람들은 영속적 가난을 얻은 대신, '연대감'을 획득하고 있다.

이런 '연대감'이 표출되는 진지들은 다음과 같다.

http://www.ran.org/ 우림행동 네트워크(Rainforest Action Network), 캘리포니아 소재.
http://www.jumpstartford.com/home/ 친환경적 운송수단을 위한 사이트,
http://www.rwesa.org/ 동부 및 동남아시아 강 감시 네트워크
http://daga.dhs.org/atnc/ 아시아 초국적기업 감시 네트워크
http://www.antislavery.org/ 강제노동반대 사이트
http://www.maquilasolidarity.org/ 마낄라 연대 네트워크(라틴아메리카 공업지대)
http://www.ibfan.org/국제 아기식품 행동 네트워크(모유대체물에 대한 반대)
http://www.fairolympics.org/en/index.htm(스포츠의류산업에 종사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사이트)
http://www.thailabour.org/(태국노동자 권리 캠페인)
http://www.cleanclothes.org/ 깨끗한 옷 캠페인(제3세계 의류산업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캠페인)

<2004.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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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지음 / 책벌레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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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를 위하여 -실천문학사, 장석준, 황광우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 책벌레, 리오 휴버먼/장상환


잘 만든 교과서 하나, 열 조직 안부럽다 -《레즈를 위하여》,《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뷰 출처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8월호
http://www.ynlabor.net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장상환 역), 책벌레(2000년)


2004년 2월 27일, 미국의 저명한 맑스주의 경제학자 폴 스위지(Paul Marlor Sweezy)가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폴 스위지는 '빨갱이 사냥'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1949년 당시 미국 사회에서 좌파잡지 <먼슬리 리뷰> 창간을 주도했는데,《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의 저자 리오 휴버먼 역시 이에 함께 했다.

휴버먼은 PM이라는 노동자 신문의 편집장으로 활동했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국선원노조의 교육부장을 지내기도 한 미국의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휴버먼은 매우 어려운 급진적인 내용을 쉽게 쓸 수 있는 재주를 지녔으며, 수많은 자료를 원용해 앙상한 가지가 아닌 풍성한 역사의 숲을 그려내는 진지함도 지녔다.

이 책은 1936년도에 나온 책이다. 벌써 68년이 지난 책이다. 그러나 역자도 말하고 있듯이 아직까지도 이 책의 효능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지난 시기 스탈린에 의해 왜곡된 역사발전 5단계설이니, 자본주의 이행의 도식적 설명을 달달 외웠던 경제사 학습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책은 생생한 역사를 증언해주며, 현재를 돌아보게끔 한다.

조사 대상 129가구 가운데 96가구에서 16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일하고 있었으며... 이 어린이들의 절반이 12세 미만이었다. 그 중 34명은 8세 이하였고, 12명은 5세 미만이었다. 2-3세 어린이는 2명이었다... 정말 충격적인 사실이 아닌가? 이 보고서는 선대 제도가 성행하던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상황에 대한 보고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인용문이 묘사한 조건은 언제, 어디의 조건이었을까? 시간: 1934년 8월, 장소: 미국 코네티컷 주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며 출현한' 자본주의의 역사는 현재도 되풀이되고 있다. 저자는 괴물과 같은 자본주의의 역사의 종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이에 대해 동인도 제도의 일화를 통해 설파하고 있다.

원숭이(자본가)는 코코야자 열매에 손을 밀어 넣어 설탕을 쥐고 주먹을 빼려고 애쓴다. 그러나 구멍이 작기 때문에 원숭이의 꽉 쥔 주먹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탐욕 때문에 원숭이는 파멸한다. 왜냐하면 원숭이는 목표물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한편으론 자본주의 이행의 경제사와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전망을 담고 있는 경제사 관련 도서임과 동시에, 중간중간 경제학자들의 이론들을 역사적 맥락과 함께 쉽게 풀어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저작이다.

얼마 전 개봉된 멕시코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의 연인이자, 유명한 멕시코 벽화운동가인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이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데, 이 표지에 실린 그림 안에는 봉건제와 자본주의 이행, 성직자와 정치가, 제국주의자와 식민지 인민 모두가 등장한다. 표지가 책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매우 재미있는 책임에는 틀림없지만, 출판사의 단조로운 편집과 글꼴은 다소 흠이기도 하다.

<2004.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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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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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를 위하여 -실천문학사, 장석준, 황광우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 책벌레, 리오 휴버먼/장상환

 

*리뷰 출처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8월호
http://www.ynlabor.net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레즈를 위하여》, 황광우, 장석준 공저, 실천문학사(2003년)

80년대 중반,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자신의 인생을 '변혁운동의 한 길'에 던지고자 할 때, 그들의 곁에는 두 권의 책이 있었다. 선배들이 물려주었을 수도 있고, 공단과 학교 앞 낯선 사회과학서점에 들어가 구입했을 수도 있는 책 두 권은 이 땅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다수의 '의식화된 활동가'들을 양산했다. '정인'이 쓴《들어라 역사의 외침을》과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가 바로 그것이다.

《레즈를 위하여》공동 저자 중 한 명인 황광우의 필명이 바로 '정인'인데, 그는 저명한 시인 황지우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 책의 또 다른 저자인 장석준은 90년대 초반 진보학생연합의 주요 활동가였고, 현재는 민주노동당 기획부장을 거쳐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학습마당은《공산당선언》과 관련된 내용을 한국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역사와 결합해 읽기 쉬운 수필 형식으로 써내려 갔다. 제1부는 이 책의 주요 부분이기도 하다.
제1부는 80년대적 향수로 가득 차 있다. 서툴지만 비장하고, 순수했으며, 과도하게 단순했지만 명쾌하고 분명했던 그 시대를, 저자는 일종의 반성과 희망적인 전망으로 그려내고 있다. 80년대 (정파를 불문하고) '변혁운동의 시대'를 몸소 체험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분위기가 꽉 들어차 있는 제1부는 그러하기에 90년대 이후의 독자들에게는 '과거의 신선함'과 '역사의 치열함'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비망록이다.

하지만, 보편적인 80년대 정서와는 별개로 황광우 개인의 경험이 짙게 베어 있음으로 해서 나타나는 과거 편향적인 평가들, 진보정당, 민주노동당 전망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는 과거와 미래에 현재를 종속시킨다.

제2부는 맑스의《공산당선언》전문을 다시 번역한 부분이다.

제3부는 (아마도 장석준이 쓴 부분이라 생각되는데), 선언 이후 현재까지 되풀이되는 논쟁에 대해 간략한 요약을 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레즈를 위하여》에서는 장석준의 유려한 필체를 구경할 수 없다. 다소 딱딱한 주제들(자본주의 국가에 대하여, 폭력혁명에 대하여)을 한정된 분량 안에 채워 넣으면서 발생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너무 많은 책들과 이론들을 소개하면서 자칫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개념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내용은 월드컵경기장이지만, 어쨌든 독자의 상상력은 경기장 안에 갇히고 마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이론적 논의보다는 한국 역사에 있어서 공산당선언 내용이 갖는 의미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게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닌가?

소위 '모래시계 세대'인 황광우가 '붉은 세대'인 장석준(동의할까?)과 같이 작업한 것도 흥미롭고, 80년대와 90년대 주요 필진이 만났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한국의 사회운동이 사회적 주도력을 상실하면서, '운동권'은 이 사회에서 가장 '고리타분하고,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며, 공부 더럽게 안하고, 현실을 모르며, 고집 센'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예전의 '운동권'은 현실과는 때때로 멀 때도 있고, 가까울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자신의 사회 내에서 가장 선진적이었고, 변화에 민감했으며 스폰지처럼 자양분을 과감하고 빠르게 흡수했었다.

지금, 책 한 권 달랑 읽고 후배 앞에서 당당하게 5년을 버티는 운동가들과, 상부조직의 문건 외에는(혹은 그것마저도) 읽지 않는 '간 큰 활동가'들에게 천만 노동자의 삶과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각 사회운동의 주요조직들의 임원 선거들이 끝나서 일수도 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공부와 학습, 투입하고자 하는 열망'이 곳곳에서 많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열의가 높은 분들이 그동안 어떻게 참아왔는지 놀라울 정도로 '학습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선배를 바라보고 운동하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후배와 미래를 바라보고 투자하고, 운동하는 것이 현재 우리 노동운동의 긴급한 과제라고 할 때, 후배들에게 '술 한번 사기전에, 책 한 권 사주고 술마시는 풍토가 빨리 확산되어야 한다.

건강한 청년 노동자들의 '웰빙 노동생활'을 위해 선배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레즈를 위하여》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87년 노동자대투쟁 세대'가 '새로운 노동운동의 후속세대'에게 권해줄 수 있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황광우와 장석준, 두 저자들의 작업은 의미있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괜찮은 운동 교과서'들이 있는가 이다. '잘 만든 교과서 하나, 열 조직 안 부럽다.' 현 시기,《공산당선언》이라는 '개취급' 받는 '빨간책'을 대중적인 필치로 한국의 역사와 결부시켜 그렸다는 점에서, 또한 새로운 운동세대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고마운 책'이다.

잘 만든 교과서 하나, 열 조직 안부럽다 -《레즈를 위하여》,《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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