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레즈를 위하여 -실천문학사, 장석준, 황광우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 책벌레, 리오 휴버먼/장상환

 

*리뷰 출처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8월호
http://www.ynlabor.net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레즈를 위하여》, 황광우, 장석준 공저, 실천문학사(2003년)

80년대 중반,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자신의 인생을 '변혁운동의 한 길'에 던지고자 할 때, 그들의 곁에는 두 권의 책이 있었다. 선배들이 물려주었을 수도 있고, 공단과 학교 앞 낯선 사회과학서점에 들어가 구입했을 수도 있는 책 두 권은 이 땅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다수의 '의식화된 활동가'들을 양산했다. '정인'이 쓴《들어라 역사의 외침을》과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가 바로 그것이다.

《레즈를 위하여》공동 저자 중 한 명인 황광우의 필명이 바로 '정인'인데, 그는 저명한 시인 황지우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 책의 또 다른 저자인 장석준은 90년대 초반 진보학생연합의 주요 활동가였고, 현재는 민주노동당 기획부장을 거쳐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학습마당은《공산당선언》과 관련된 내용을 한국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역사와 결합해 읽기 쉬운 수필 형식으로 써내려 갔다. 제1부는 이 책의 주요 부분이기도 하다.
제1부는 80년대적 향수로 가득 차 있다. 서툴지만 비장하고, 순수했으며, 과도하게 단순했지만 명쾌하고 분명했던 그 시대를, 저자는 일종의 반성과 희망적인 전망으로 그려내고 있다. 80년대 (정파를 불문하고) '변혁운동의 시대'를 몸소 체험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분위기가 꽉 들어차 있는 제1부는 그러하기에 90년대 이후의 독자들에게는 '과거의 신선함'과 '역사의 치열함'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비망록이다.

하지만, 보편적인 80년대 정서와는 별개로 황광우 개인의 경험이 짙게 베어 있음으로 해서 나타나는 과거 편향적인 평가들, 진보정당, 민주노동당 전망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는 과거와 미래에 현재를 종속시킨다.

제2부는 맑스의《공산당선언》전문을 다시 번역한 부분이다.

제3부는 (아마도 장석준이 쓴 부분이라 생각되는데), 선언 이후 현재까지 되풀이되는 논쟁에 대해 간략한 요약을 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레즈를 위하여》에서는 장석준의 유려한 필체를 구경할 수 없다. 다소 딱딱한 주제들(자본주의 국가에 대하여, 폭력혁명에 대하여)을 한정된 분량 안에 채워 넣으면서 발생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너무 많은 책들과 이론들을 소개하면서 자칫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개념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내용은 월드컵경기장이지만, 어쨌든 독자의 상상력은 경기장 안에 갇히고 마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이론적 논의보다는 한국 역사에 있어서 공산당선언 내용이 갖는 의미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게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닌가?

소위 '모래시계 세대'인 황광우가 '붉은 세대'인 장석준(동의할까?)과 같이 작업한 것도 흥미롭고, 80년대와 90년대 주요 필진이 만났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한국의 사회운동이 사회적 주도력을 상실하면서, '운동권'은 이 사회에서 가장 '고리타분하고,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며, 공부 더럽게 안하고, 현실을 모르며, 고집 센'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예전의 '운동권'은 현실과는 때때로 멀 때도 있고, 가까울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자신의 사회 내에서 가장 선진적이었고, 변화에 민감했으며 스폰지처럼 자양분을 과감하고 빠르게 흡수했었다.

지금, 책 한 권 달랑 읽고 후배 앞에서 당당하게 5년을 버티는 운동가들과, 상부조직의 문건 외에는(혹은 그것마저도) 읽지 않는 '간 큰 활동가'들에게 천만 노동자의 삶과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각 사회운동의 주요조직들의 임원 선거들이 끝나서 일수도 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공부와 학습, 투입하고자 하는 열망'이 곳곳에서 많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열의가 높은 분들이 그동안 어떻게 참아왔는지 놀라울 정도로 '학습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선배를 바라보고 운동하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후배와 미래를 바라보고 투자하고, 운동하는 것이 현재 우리 노동운동의 긴급한 과제라고 할 때, 후배들에게 '술 한번 사기전에, 책 한 권 사주고 술마시는 풍토가 빨리 확산되어야 한다.

건강한 청년 노동자들의 '웰빙 노동생활'을 위해 선배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레즈를 위하여》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87년 노동자대투쟁 세대'가 '새로운 노동운동의 후속세대'에게 권해줄 수 있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황광우와 장석준, 두 저자들의 작업은 의미있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괜찮은 운동 교과서'들이 있는가 이다. '잘 만든 교과서 하나, 열 조직 안 부럽다.' 현 시기,《공산당선언》이라는 '개취급' 받는 '빨간책'을 대중적인 필치로 한국의 역사와 결부시켜 그렸다는 점에서, 또한 새로운 운동세대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고마운 책'이다.

잘 만든 교과서 하나, 열 조직 안부럽다 -《레즈를 위하여》,《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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