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F코드 이야기 - 우울에 불안, 약간의 강박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하늬 지음 / 심심 / 2020년 10월
평점 :


이하늬 씨의 <나의 F코드 이야기>는 우울증에 대한 과학적/객관적인 정보와 저자 본인의 사적인 경험을 담고 있다. 나는 조울증 환자(양극성 장애 1형)로서 나보다는 가벼운 질병을 지닌, 그러나 그 고통이 결코 덜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한 사람을 "만난다"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책의 초반 저자가 우울증 진단을 받고 병원 치료를 시작하는 부분은 그저 그랬다. 거기까지는 저자의 경험이 특별히 인상 깊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내가 저자와 확 가까워진 느낌을 받은 부분, 책에 빨려들어간 부분은 저자가 상담 치료를 받다가 상담을 종결하게 된 어느 날의 이야기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상담실을 빠져 나온 저자는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는 나는 마치 그 거리에서 소리 내어 울고 있는 저자를 만나버린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너무나 좋아졌고, 저자를 보는 것이 꼭 나를 보는 것 같았고, 외롭지 않았다.
점점 죽어가는 몸, 영원할 수 없는 관계, 불확실한 삶 속에서 어쩌면 눈물은 필수다. 독방에서 울 것인가 광야에서 울 것인가. 어디에서든 울어야 한다면 나는 광야를 선택할 것이다. 적어도 나처럼 울고 있는 누군가가 보이는 곳에서 함께 울고 싶다. (홍승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245쪽
그렇다. 생각해 보면 나도 살면서 두세 번 정도, 혼자 길에서 울고 있는 여자들을 본 적이 있다. 그녀들의 빨개진 얼굴을 보면서,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 주거나 다정하게 말을 걸어 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그녀들의 곁을 스쳐지나간 적이 있다. 그리고 나도 혼자 거리에서 운 적이 있다. 누군가도 나를 보며 마음으로 위로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위로의 온기에 싸여 우리는 그 시간을 버티어 낸 건지도 모른다.
이하늬 씨는 자신이 우울증임을 밝혔을 때 나타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소개하며, 그 반응들에 대한 자신의 느낌도 밝힌다. 가령, 이하늬 씨의 아버지는 우울증이 먹고 살만 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라고 말하며, 또 어떤 사람은 하늬 씨에게 전혀 우울증 같지 않은데? 반문한다. 하늬 씨가 더 선호하는 반응은 아버지의 반응이다. 후자와 같은 반응에 대하여 하늬 씨는 우울증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강화하는 반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실은 나의 경우 반대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우울증, 아니지 조울증은 먹고 살만 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라고 하면 나는 거북할 것 같다. 먹고 살만 한 것과 병과는 관계가 없으며, 그 말은 마치 나에게 속편한 상황에서 병은 왜 걸리니?라는 비아냥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반면, 나의 지인 가운데 한 명도 나에게 "너는 조울증 같지 않아."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말이 듣기 좋았다. 그 말을 통해 나도 소위 "정상생활"과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관리가 가능한 환자라는 인정을 받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F코드 이야기>는 우울증, 불안 장애, 조울증, 강박 장애 등 정신적인 병을 갖고 있는 환자와 그들을 더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우울증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읽으면서 기분이 다운되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저자는 책에서 하소연을 하거나 넋두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짐작컨대 저자는 책을 통해 자신을 돕는 동시에 타인을 돕고 싶었을 테니까 말이다.
또 나는 저자인 이하늬 씨가 책을 더 썼으면 좋겠다. 단정한 문체도 좋고 본인의 다양한 경험을 진솔하게 밝히는 자세도 좋아서이다. 요즘 유행하는 에세이들처럼 너무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딱딱한 이론서처럼 너무 무겁지도 않은 책들을 하늬 씨가 더 써 주었으면 좋겠다. 우울증에 관해서이든, 전혀 다른 어떤 것에 관해서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