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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ㅣ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1
나태주 엮음 / &(앤드) / 2020년 10월
평점 :

이 책에 시를 모아 펴낸 나태주 시인을 나는 지하철역 스크린 도어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의 시 <행복>이 거기에 적혀 있었기 때문인데, 그 시를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행복 -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먼저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는가, 라는 물음에 긍정할 수 있어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깨달음과 더불어, 혹여 노숙자가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가 이 시를 읽게 된다면 오히려 그 불행이 가중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이 일었다. 이어서 힘들 때 맘 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나에게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았을 때는 긍정이기도 부정이기도 한 대답이 떠올랐다. 힘들지만 그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고 믿고 맘 속으로 그런 사람을 호출할 때 나는 행복한 사람이지만, 힘든 상황은 오로지 나에게만 있다고 착각하고 소통을 거부하는 동안 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외로울 때 부를 노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는 특별히 그런 노래가 없었지만 앞으로라도 그런 노래 한 소절쯤은 있어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렇게 <행복>이라는 시를 통해 나의 삶을 점검해 보고 나름대로는 다짐까지 하게 한 나태주 시인이 어떤 시들을 담아 선물해 줄까, 하는 기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어렵고 따분하게 느껴지거나 나에게는 별다른 울림이 없는 시들도 있었지만, 가슴 한복판을 울리고 특별히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을 만큼 좋은 시들도 많아 한 자리에 전부 소개하기 버거울 정도였다. 맘 가는 대로 그 중 몇편의 시들만 골라 정리해 보기로 한다.

이 시에서 고양이에 빗대어 노래한 봄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고양이의 털, 눈, 입술, 수염이 하나하나 만져질 듯 생기 있고 봄이라는 계절은 흔해 빠진 꽃이나 잎사귀가 아니라 약동하는 고양이를 통해 나에게 다가왔다. 시인의 기발한 접근법을 통해, 고양이의 몸을 타고 스며드는 봄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나의 눈앞에 열렸다.

한편, <어린것>에 포착된 다람쥐는 너무 귀여웠다. 이 시의 도입부를 읽으면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 있는 새끼 다람쥐의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와 오랫동안 눈맞춤하는 축복을 누릴 수가 있어서 좋았다.

<섬집 아기>의 2절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이 노래를 1절만 부르면 아기가 혼자 잠드는 채로 노래가 끝난다. 난 그간 2절을 모르는 채로 이 노래의 쓸쓸한 정서만을 기억해 왔는데, 알고 보니 2절에서 엄마는 부랴부랴(!) 아기에게로 달려 오고 있었다. 그러니 나태주 시인도 해설에서 강조하듯 노래를 2절까지 불러 엄마와 아기가 만나게 해 주어야 한다.

기독교 사상가이기도 한 함석헌이 지은 시의 마지막 연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구절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선택하는 쉽고 넓은 문과 좀처럼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어렵고 좁은 문 중에, 그래도 좁은 문이 옳다고 말해 줄 누군가가 나에게는 있는가. 아니,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는가, 라고 자문해 보게 되는.
그리고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에 실린 각각의 시에는 나태주 시인이 해설을 덧붙여 놓았는데, 때로는 나태주 시인과 해당 시를 쓴 시인의 개인적인 인간 관계를 소개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 내용을 읽어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리 긴 해설은 아니지만 그 안에 시인들만의 작은 공동체가 담겨 있는 느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