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와 모라
김선재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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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한 가족이 아니었다가 한 가족이 된,

그리고 그 가족이 끝까지 가지 못하고 다시 갈라진 <노라와 모라>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고모를 떠올렸다.

한때 우리 고모도 자녀가 있는 남자와 재혼을 한 적이 있었다.

고모에게는 자녀가 없었고, 나는 고모를 많이 따랐기 때문에

언젠가 고모는 새로 결합한 고모부와 또 그 자녀들과의 여행길에 나를 데려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후 밤이 깊어갈 무렵에

새고모부와 고모는 큰 소리로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등학생이던 새고모부의 쌍둥이 딸들은 중학생이던 나를

숙소 지하에 있는 매점으로 데려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보라고 했다.


"그즈음 모라와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곧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헤어지게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서로의 옷이 뒤섞인 서랍장을 정리하고 언제라도 챙길 수 있도록 꼼꼼히 각자의 책을 구분해 놓았던 건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그건 암묵적으로 합의된 예감이었다." --92쪽


소설에서 위 대목을 읽다가 뜬금없이 그 여행의 기억이 났다.

어쩌면 나는 그 매점에서

고모와 고모부가, 그리고 나와 이 언니들이

끝까지 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우리 딸들 믿어. -- 69쪽

그렇게 엄마는 믿음으로 혼자 구원받았다. -- 89쪽


<노라와 모라>에 나오는 위의 문장들 또한 나를 생각하게 했다.

우선 엄마의 믿음과, 그 믿음을 통한 개인의 구원이 주변 사람(노라)를 구원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아득했다.

나도 기독교인인데. 내 믿음이 다른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기는 커녕

도리어 손가락질만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혹시 다른 사람의 입장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기도를 하면서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라의 계부가 딸들을 "믿는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나는 노라처럼 생각에 잠겼다.

믿는다니, 무엇을.

친딸과 의붓딸이 사이 좋게 지낼 것을?

그들이 부모를 공경하며 훌륭한 사람으로 자랄 것을?

"믿는다"는 말은 정말이지 모호하다.

그래서 기독교와 예수를 믿는 나 또한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때때로 점검하고 의문시하는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도록.

스스로조차 속이는 믿음을 갖지 않도록 말이다.



지금 나에게는 들리고 모라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들이 있다. 모라에게는 보이고 내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 80쪽


나는 이 문장도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이 품고 있는 진실은 꼭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다른 공간에서 다른 곳을 보고 들으며 살아가고,

그러다 만나고,

만나서도 다른 것을 감각하며 각자의 세계를 전개해 나간다.



위 대목을 읽고는

지금은 제목도 잊은 어느 만화가 생각났다.

그 만화 속에서 주인공 여자는 조폭 남편의 아이를 임신하고,

만삭이 된 어느 날 경이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모든 인간이 어머니의 질을 통해 나왔다는 것.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것.

그 깨달음은 주인공에게 커다란 기쁨과 소망이 되는데,

왜 갑자기 이 만화가 떠올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 생각에 <노라와 모라>를 읽으면 좋을 만한 독자들은

상대방의 입장과 시선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소설은 달팽이의 더듬이처럼 연하면서도 예민하게

어떤 사람들의 세계와 그 무늬를 읽는다.

그 감각을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면 <노라와 모라>의 표지를 넘겨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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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모든 걸 걸어본 적 있는가 - 사람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을 속인다
전성민 지음 / 센시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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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을 속인다


이 책의 표지에 적힌 말이다. 재밌게도, 이 책이 도착하기 전날 나는 울면서 남친에게 말했다.

- 난 최선을 다해서 살았단 말이야!

이 말을 하게 된 경위는 이렇다. 번역 일감을 받았는데, 그 일감은 사실 나의 능력으로 소화하기에 벅찬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받고 나서도 극심한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로 인해 밤은 깊어가는데 잠은 안 오고, 다음 날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과연 해 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안색이 좋지 않은 내게 남친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너무 힘들다며 사정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평소 위로보다는 팩폭을 일삼는 남친이 하는 말.

- 그건 네가 그 동안 열심히 살지 않은 대가야.

......물론, 남친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진실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은 엉엉 울면서 아니라고, 난 최선을 다해 살았노라고 혼신을 담아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도착한 <한 번이라도 모든 걸 걸어본 적 있는가>의 표지를 보며 남친은 내게 결정타를 날렸다.

- 여기 네 얘기 쓰여 있다.

이 책과 나의 신기한 관계를 설명하느라 서론이 길었는데, 이 책의 내용은 동기 부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적격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20대에 자신이 실패한 이유는 "여유" 때문이었노라고. 평소 여유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말이었다. 시간적 여유든 경제적 여유든 마음의 여유든, 그 넉넉함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이 대목은 꼭 나에게 하는 말 같다. 번역을 전공하며 유학 생활을 했던 친구들이나 어린 시절을 영미권에서 보낸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지금도 그런 친구들에게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내게 보내는 일침. 이렇게 나의 부족하고 결핍된 부분만 자꾸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영어를 더 잘하고 싶으면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를 위해 만들어 주면 될 것이 아니냐는 말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되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능력 계발을 위한 도구로 만다라트라는 것도 이 책에서 처음 보았는데, 눈여겨 보아 두었다가 나도 한번 스케치북에 그려 보려고 한다. 머릿속에 뒤죽박죽으로 담겨 있는 나의 목표들을 차분히 정리해 보고 중심 목표와 보조 목표들의 순서를 정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리타 엠멋에 따르면 실제 일하는 것보다 일하기를 두려워하느라 소비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더 크다고 한다. - P74

특히 꿈을 시각화, 이미지화하는 것은 꿈을 뇌에 각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비전보드‘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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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돼지의 눈
제시카 앤서니 지음, 최지원 옮김 / 청미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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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돼지의 눈>은 현대의 인물(재선을 기대하고 있는 윌슨이라는 정치인)과 19세기의 인물(다우닝이라는 박제사)을 교차하여 보여 주면서 그들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드러낸다. 서로 동떨어져 보이는 두 인물이 만나는 지점은 바로 "땅돼지"라는 기이한 짐승이다. 다우닝은 이 짐승을 박제한 장본인이고, 윌슨은 훗날 누군가로부터 이 짐승의 박제를 받아 보게 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 짐승이 다우닝에 의해 박제되고 다른 사람들의 손을 거쳐 윌슨에게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사연에는 도돌이표처럼 공통되는 부분과 변주처럼 차이나는 부분이 있다. 그러한 부분들을 비교해 보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저자인 제시카 앤서니는 도축업자로 일을 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 경험이 다우닝이라는 박제사의 작업을 세밀히 묘사하는데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죽은 동물에 생명을 다시 불어 넣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저자는 생생하게 그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미국에 비해 많지 않고, 동물의 박제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자연사 박물관에 가지 않는 한, 거의 드물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박제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소설에서 이렇게 박제에 관한 하나의 관념을 만나게 되고 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그 중에서도 박제되는 동물의 "눈"을 재현하는 문제를 다루는 부분은 꽤 흥미로웠고, 박제사 다우닝이 결국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에는 다소 충격적인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 진실을 접하고 각자 나름의 해석을 해 보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묘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박제란 죽음이 아닌 생을 다루는 일이라는 것이, 다우닝이 기자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이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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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블턴 시의 코비에게 - 2021 문학나눔 선정 도서 파랑새 사과문고 93
임태리 지음, 고정순 그림 / 파랑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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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가 되지 못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는 지금 초등학교 1학생이 된 아들내미를 키우고 있다. 그 친구는 빌라에 산다. 그런데 친구의 말에 의하면, 아파트에 사는 어떤 학부모들은 아파트 외부에 사는 아이가 아파트 내부의 놀이터에서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고 하였다. 아니, 못마땅해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아파트 단지 학부모들의 단톡창에서 아예 외부 아이들이 놀이터로 놀러 오는 것을 금지시키자고 주장했을 정도라고.

이런 학부모들이 웜블턴 시에 살았다면 동화 속 주인공의 엄마처럼 코비 할아버지를 혐오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실에도 코비는 있고 코비를 무조건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다. 빌라에서 산다는 이유로 아이가 차별을 받을까 봐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을 고려하는 나의 친구. 그 친구를 위해서라도 나 역시 내가 무심코 하고 있는 차별이 있다면 얼른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나의 경우, 장애인을 대하는 것이 어렵다. 나도 모르게 경직되고 장애인과 마주하는 것을 피하려는 나 자신을 볼 때가 있다. 이런 내 마음의 근저에 무엇이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보고 천천히 바뀌어 가야 할 것을 다짐해 본다.



위의 그림은 주인공의 엄마가 코비 할아버지에게 삿대질하는 장면이다. 코비 할아버지는 잘못을 하기는 커녕,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으로 어떤 행위를 했는데, 주인공의 엄마는 그것을 오해해 놓고도 미안하다는 말은 커녕, 코비 할아버지에게 면박을 주며 할아버지의 행위를 오해한 자신의 실수마저 코비 할아버지의 탓으로 돌린다. 나는 이 모습에서 나를 확인한다. 가령, 나는 나의 남자친구의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남자친구를 은근히 무시하며 남자친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남자친구의 말이 옳았고 내가 틀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을 때, 그 때조차 나는 남자친구의 탓을 하곤 했다.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고, 나의 심정을 고려하지 않고 말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귀담아 듣지 않은 쪽은 나이며 잘못은 내게 있다. 차별의 주체가 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고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자꾸 상대방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것이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코비 할아버지가 꾸며 놓은 근사한 놀이터가 나온다. 할아버지가 간직한 동심이 그곳에 살아 있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어린 아이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 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누가복음 18:16, 현대인의 성경)

But Jesus called the children to him and said, "Let the little children come to me, and do not hinder them, for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 (Luke 18:16, NIV)

성경 말씀을 믿는다면, 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보이는 광경이야 말로 천국의 광경이다. 그곳에는 어린 아이들이 신나게 놀 수 있는 미로공원, 정글짐, 통나무 구름다리, 짚라인이 있다. 가난하고 차림새가 허술한 코비 할아버지는 사실 더 중요한 것, 그러니까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에 성공했고 결국 천국의 주인이 되었던 것이다.

동화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코비 할아버지의 평생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주인공의 엄마는 주인공을 데려가 행복한 하루를 선사한 코비 할아버지를 납치범으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코비 할아버지는 아무런 혐의도 없었고 심지어 선행만을 했기에 풀려나 버렸다. 그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주인공의 엄마도 변화했다.




웜블턴 시의 코비. 차별 받던 코비 할아버지가 존경의 대상이 된 것은 한 아이와의 우정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우정은 그 아이의 용기 덕분에 생겨났다. 왜 저 사람은 차별 받을까? 라는 의문을 끈질기게 탐구한 아이. 차별 받는 대상에게 또 하나의 돌을 집어 던지는 대신 손을 내민 아이.

나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떠오르는 기억 한 조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내 짝꿍은 아버지가 청소부였다. 그 사실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었지만 그 사실을 입에 담는 친구들은 없었다. 조금은 못된 심보가 있었던 나는, 그 친구와 짝꿍이 되었을 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봤다. "너희 아빠 청소부야?"라는 나의 질문에 "응"이라고 대답하며 약간 얼굴을 붉히던 그 아이의 얼굴이 생각난다.

한번은 그 아이가 나에게 "오늘 우리 가족 고기 먹는다~"라고 설레는 듯이 자랑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자랑을 듣고 '우리 가족은 맨날 고기 먹는데'라고 생각했고 집에 가서는 부모님께 그 이야기를 전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아빠는 크게 웃으셨다. 그 때 아빠의 웃음은 짝꿍의 가난을 비웃는 것이었다기 보다는, 당신께서 우리 가족을 윤택하게 부양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담긴 웃음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 때, 아빠가 활짝 웃는 대신 조금은 조심스럽게, 그 아이의 집안 형편이 우리보다 어렵다고 해서 그 아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사람은 가난하든 부유하든 모두 똑같이 보배로운 존재들이며, 우리 역시 가난을 겪을 수 있는 것이라고 (실제로 IMF 때 우리 집안은 형편이 어려워졌다) 나에게 얘기해 주셨다면, 나는 조금은 더 일찍 가난을 이해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도 생각해 본다.

코비는 멀리 있지 않다. 나 자신이 코비일 수 있다. 비교를 시작하면 누구나 남들보다 못한 점이 있다. 우열을 가려서 열등한 점을 부각시켜 바라보며 그 열등함을 차별의 근거로 삼아 버린다면, 우리는 사실 나치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에서도 그랬다. 미워하는 것은 살인과 같다고. 상대방을 혐오하는 것은 상대방을 죽이는 일이다. 이 점을 기억하게 해 주고 가벼우면서도 섬세하게 일깨워 주는 <웜블턴 시의 코비에게>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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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결 - 당당하게 말하지만 상처 주지 않는
이주리 지음 / 밀리언서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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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고 또 내가 상처받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만났다. 내가 아주 오랫동안 품어 온 문제를 오롯이 담아낸 문장!

몇 년 전의 일이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보고 있었는데, 김제동과 윤도현이 어떤 이야기를 나눈 끝에 윤도현이 이런 말을 했다. 솔직한 게 최고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의문이 생겼다. 솔직한 게 최고라고? 그렇다면 솔직한 말로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줘도 좋은 걸까?

이 의문은 그 후로도 이어졌다. 솔직함과 무례함을 가르는 기준은 뭔지, 솔직하다 못해 무례해지고 무책임해지는 일을 방지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어려웠다. 그런데 <말의 결>에서 그 문제를 다룬다니! 정말 반가웠다.

이 책에서 찾은 요령은 다양한데, 그 중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말하기 전에 생각을 정리하라.

- 상대방에게 공감하더라도 과도하지 않도록 정도를 조절하라.

- 몸에 배어 있는 말습관을 우선 교정하라.

각 요령은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해설되어 있어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이 책 한권으로 나의 "솔직함"에 관한 의문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저자의 권유를 들는 것은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아울러, 이 금언은 처음 듣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귀하다고 생각한다.

침묵하라, 아니면 침묵보다 뛰어난 말을 하라

입을 여는 것보다 입을 닫는 일에 힘을 쓰면, 어쩌면 우리는 더 현명하고 사려 깊은 대화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내가 했던 말이 있다. 너는 말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내가 따라가기 힘들어. 나의 말에 그 친구는 "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나를 해."라고 답해서 함께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웃은 것은 웃은 것이고, 그 친구와의 대화는 항상 힘이 들었다. 친구는 그 뒤로도 말의 속도를 조절해 주지 않았고, 나는 친구의 말 속에 담긴 낯선 세계가 너무 빨리 내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통제할 수 없었고 우리가 말을 점유하는 비중은 친구 8: 나 2 정도로 불균형했다. 그 친구가 침묵의 미덕을 실천해 주었다면 나는 많이 고마웠을 것 같다. 지금은 많이 멀어져서 그냥 한번 해 보는 생각이지만.




위의 <탈무드>에 나오는 험담에 대한 격언은 탁월하다. 험담은 그것을 입에 담는 사람과 듣는 사람, 험담의 대상이 되는 사람까지 한 번에 세 명을 죽인다! 그게 나든 다른 사람이든 험담을 끝내고 나면 밀려오는 껄쩍지근한 느낌이 죽임당한 느낌이었다니. 유의하고 기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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